노시철 인터로조 대표 / 사진=이승재 기자
노시철 인터로조 대표 / 사진=이승재 기자
대우실업(현 포스코인터내셔널) 해외영업팀 출신 ‘상사맨’ 노시철 대표가 2000년 제조기업인 인터로조를 설립한 건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콘택트렌즈를 사업 아이템으로 잡은 건 기술집약적이면서도 수요가 꾸준한 품목을 찾은 결과다. 그렇게 의료기기 및 헬스케어 분야로 방향을 잡은 그는 회사 지분을 나눠주며 전문 기술진을 끌어모았고 연 매출 1200억 원을 눈앞에 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준비 중이다. 콘택트렌즈에 질병 진단 및 치료 기능을 덧입히면서다. 궁극적으로는 ‘체외진단기기’라는 새로운 영역에도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당뇨·녹내장 진단렌즈 개발 본격화

콘택트 렌즈 브랜드 ‘클라렌’으로 잘 알려진 인터로조가 질병 진단 및 치료가 가능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로조는 2017년 3월, 정부의 ‘월드클래스 300’ 과제 선정을 계기로 포스텍 및 화이바이오메드와 스마트콘택트렌즈 플랫폼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과정에서 스마트콘택트렌즈 구동의 핵심인 반도체 칩(ASIC)과 센서가 탄생했다.

ASIC 칩은 센서와 함께 렌즈 내부에 장착돼 있는데, ASIC 칩이 센서를 작동시키면 이 센서가 눈물의 특정 물질을 바이오마커로 질병을 진단한다. ASIC 칩은 진단 결과를 병원이나 환자의 스마트기기로 전송할 수도 있다. 플랫폼 기술인 만큼 진단 질병 확장도 가능하다. 가장 먼저 개발에 돌입한 건 연속혈당측정(CGM) 스마트 콘택트렌즈다. 렌즈 내부의 센서가 눈물 안에 있는 글루코스(포도당)로 혈당 수치를 측정하고 ASIC 칩은 이 결과를 병원에 전송해 의사가 당뇨병 진단에 활용하도록 한다. 환자가 결과를 직접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혈당측정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인터로조 외에도 여러 기업이 개발 중이다. 눈물의 포도당을 바이오마커로 활용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눈물에서 얻은 포도당으로 혈당 수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눈물량에 따라 포도당 농도가 희석되거나 농축될 수도 있어서다. 눈물량은 날씨와 대기 등 외부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2018년 구글이 같은 기술의 렌즈 개발을 중단한 것은 이런 한계 때문이었다. 인터로조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포도당 외의 또 다른 진단물질을 찾고 있다. 현재 후보군을 찾아내 연구실 실험(랩테스트)을 진행 중이다.

다음 후보는 녹내장 진단용 안압 측정 렌즈다. 녹내장은 안압이 높아지면서 시신경이 눌려 발병한다. 현재 녹내장 여부는 검사 당일 순간적인 안압 수치로 가려낸다.

인터로조는 장기간 착용이 가능한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통해 안압을 오랜 시간 측정, 기존 측정기기의 정확도 및 정밀도 대비 동등 또는 이상의 성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안압 측정 렌즈는 스위스 의료기기 회사 센시메드가 2010년 처음 선보인 시장이다. 센시메드는 안압 변동을 지속 측정하는 모니터링 기기 ‘센시메드 트리거피쉬’를 개발해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품목허가 승인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한독약품이 2010년 센시메드와 트리거피쉬의 마케팅 및 영업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상용화 준비 중이다. 그러나 렌즈 두께가 두껍고 렌즈 외에도 안테나, 측정기 및 이를 잇는 케이블 등 필요한 부수 제품이 많아 착용하기 불편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인터로조는 ASIC칩 하나로 진단이 가능하도록 개발 중이다. 콘택트렌즈 전문기업이 가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편안한 착용감 및 시력 교정 기능도 추가한다. 또 렌즈에 색을 입혀 시각적으로 어색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약물 방출 기능도 탑재한다. 렌즈 안에 약물을 저장해 놓고, 적당량의 약물을 지속 방출해 정상 안압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치료효과까지 거두겠다는 것이다.

제품화가 가시화됐다는 것도 강점이다. 현재 비슷한 진단 렌즈를 개발하는 곳 대부분이 대학 연구실이라는 점에서 단기간 내 제품 상용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회사의 판단이다. 인터로조는 녹내장 진단 및 치료 렌즈로 연내 전임상에 돌입한다. 의료기기는 한 번의 임상으로 품목허가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년에 임상을 신청하고, 2024년 하반기에는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리콘 하이드로겔 렌즈 출시… 2023년 美 판매 기대

최근 인터로조는 오랜 소재 개발의 결실도 거뒀다. 지난해 12월, 각막 산소 전달률을 높인 실리콘 하이드로겔 소재의 1개월용 컬러렌즈 ‘클라렌 오투오투(O2O2) 컬러 M’을 국내 출시했다. 올해 3월에는 같은 소재의 데일리용 컬러렌즈 ‘클라렌 오투오투 컬러 원데이’도 선보였다. 연내 실리콘 하이드로겔 소재의 클리어렌즈(시력교정용)도 국내 및 유럽 시장에 출시한다.

콘택트렌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각막으로의 산소전달량과 렌즈의 습윤성이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게 실리콘 하이드로겔이다. 콘택트렌즈 시장조사기관인 CL스펙트럼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된 세계 클리어렌즈의 70%가 실리콘 하이드로겔 소재로 개발됐다.

실리콘 하이드로겔은 노 대표가 회사 설립 초기부터 관심을 가진 소재다. 노 대표는 이 소재를 직접 개발하기 위해 발로 뛰며 국내외 기술자와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울트라수(UltraSoo)’와 ‘그랩수(GrabSoo)’, ‘데파수(DepaSoo)’라는 자체 특허 기술을 확보했다.

울트라수는 히알루론산을 원료 혼합물에 첨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히알루론산은 체내에도 존재하는 물질로, 독성이 없고 수분결합능력이 뛰어나며 소염 및 상처치유 효과가 있다. 인터로조는 히알루론산을 활용해 눈과 렌즈 간 마찰을 줄여 착용감을 높였다.

그랩수는 친수성 고분자 물질이 블록처럼 서로를 꽉 잡도록 하는 기술이다. 렌즈를 강하게 만들고 단백질 침착을 막아준다. 데파수는 렌즈 표면에 히알루론산을 붙이는 기술로 친수성 층을 만들어 습윤성을 높인다. 인터로조는 이들 기술을 통해 차별화된 실리콘 하이드로겔 렌즈를 만들어냈다.

공장 설비와 공정도 소재 맞춤으로 개발했다. 소재와 설비, 공정 기술 세 가지를 모두 확보한 인터로조는 본격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 일환으로, 올해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하루용과 한 달용 두 가지 실리콘 하이드로겔 렌즈의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신물질 렌즈의 경우 심사기간이 약 2년 걸리는 것을 감안해 이르면 2023년 상반기께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공장 본격 가동으로 2022년 1500억 원 매출 목표

인터로조는 이들 성과를 발판 삼아 올해를 매출 및 영업이익 확대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2분기 인터로조는 매출 267억 원, 영업이익 66억 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6.7%, 43.5%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24.5%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1.2%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올해 신제품 출시 및 해외 거래처 확대 등으로 실적 개선(턴어라운드)에 성공한 인터로조는 연말까지 매출 1200억 원, 영업이익률 25%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터로조는 지난 1월 글로벌 안과 의료기기 기업 알콘과 한국, 중국 및 아시아 7개국에 실리콘 하이드로겔 컬러렌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공급 계약을 맺었다. 연간 1000만 달러(약 118억 원) 규모다.

올 1월에는 연면적 1만3223㎡의 3공장도 준공했다. 자동화 및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팩토리 형태로 구축, 생산수율을 3년 내 90%까지 끌어올리겠단 전략이다. 올해 4분기 본격 가동을 시작해 실리콘 하이드로겔,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 등을 생산한다.

노 대표는 “3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내년 매출 1500억 원, 영업이익률 28%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후 매출이 지속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년 순차적으로 생산설비를 확장하면 3공장에서만 연간 18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2025년 연매출 3000억 원 달성을 위한 핵심공장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이도희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