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결과에 울고 웃은 바이오텍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한 달이었다. 일본 제약사 다케다는 기면증 환자의 낮 졸림증을 치료하기 위한 후보물질 TAK-994 임상 2상시험 중 안정성 문제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이 후보물질은 먹는 오렉신 2형 수용체 작용제다. 환자 투여는 바로 중단됐고 임상 2상도 조기 중단됐다. 소식이 전해진 10월 6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케다 주가(TAK)는 11% 급락했다.
반면 같은 적응증의 기면증 치료제인 자이렘, 제이웹을 보유한 재즈파마슈티컬은 반사이익을 봤다. 같은 날 나스닥시장에서 주가(재즈)가 6.9% 올랐다.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 개발 기업들의 기업가치도 출렁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알로진테라퓨틱스의 CAR-T 치료제인 ALLO-501A의 임상시험을 중단하라고 결정하면서다. 알로진의 ALLO-501A는 항CD19 CAR-T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에게 이를 투여했더니 모든 혈구세포가 줄었다. 투여 환자들에게선 염색체 이상이 생긴 항CD19 CAR-T 세포가 발견됐다.
알로진은 동종 유래 CAR-T 치료제 대표 주자였다. 환자의 혈액에서 뽑아낸 T세포를 가공해 넣어주는 것 대신 다른 사람의 T세포를 이용해 이른바 범용 CAR-T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다. 환자 세포를 이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생산 절차에 드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ALLO-501A를 만들 때 TALEN 편집 기술을 활용했다. 10월 8일 알로진 임상 중단 소식이 전해진 뒤 주가는 46% 하락했다. TALEN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갖고 있는 바이오 기업 셀렉티스 주가도 17% 하락했다. 반면 자가 유래 CAR-T를 개발하는 오토러스테라퓨틱스는 주가가 잠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미 제약회사 버텍스는 1형 당뇨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유래 췌도세포 치료제 후보물질인 VX-880 임상 1·2상에서 긍정적 데이터를 얻었다고 보고했다. 환자 한 명에게 투여한 뒤 90일간 관찰한 효과이기 때문에 평가하기엔 제약이 많은 결과다. 다만 면역억제제와 함께 VX-880을 목표치의 절반 용량으로 주입했더니 환자의 인슐린 생성 기능이 살아났다. 혈당 수치도 개선됐다. 제임스 마크만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이식외과 교수는 “장기기증이 필요 없는 방식으로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버텍스는 중증 저혈당증이 있는 1형 당뇨환자 17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아데노바이러스 파이프라인 늘린 다케다와 화이자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캡시드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이 늘고 있다. 다케다는 셀렉타바이오사이언스(SELB)와 차세대 AAV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 따라 셀렉타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1억2400만 달러다.셀렉타는 2008년 설립된 바이오 회사다. AAV 기반 플랫폼인 ImmTOR을 보유하고 있다. 불필요한 면역반응을 선택적으로 줄여주는 면역억제제를 개발하고 있다. 다케다는 셀렉타와 함께 리소좀 축적 질환(LSD) 분야 두 가지 적응증에 대한 후보물질을 발굴할 계획이다. 제품이 상용화되면 셀렉타는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받게 된다.
지난해 일본 제약사 아스텔라스는 AAV를 활용한 희귀질환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인 AT132 임상시험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이후 유전자 치료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약사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 부작용 사례는 고용량 투여 환자에 집중돼 있다. 셀렉타의 ImmTOR 플랫폼은 면역억제제인 라파마이신을 캡슐화한 생분해성 나노입자를 활용한다. 적은 용량으로도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어 부작용 우려가 낮다는 게 셀렉타 측의 설명이다.
다케다는 포세이다테라퓨틱스(PSTX)와 유전자 치료제를 함께 개발하는 계약도 맺었다. 6~8개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해 이들이 모두 상용화되면 다케다가 지급하는 금액만 36억 달러에 이른다. 포세이다는 piggyBac, Cas-CLOVER 플랫폼 등을 보유하고 있다. DNA와 RNA를 전달하는 생분해성 나노입자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piggyBac은 유전자를 세포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플랫폼이다. Cas-CLOVER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AAV 기술도 활용한다. 유전자를 편집해 정확한 위치에 전달할 수 있는 나노입자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를 이용해 재발·불응성 다발성 골수종 치료를 위한 CAR-T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 파이프라인은 임상 1상 단계다.
화이자는 보이저테라퓨틱스(VYGR)와 AAV 캡시드를 이용해 신경 및 심혈관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3000만 달러, 최대 계약규모는 6억 달러다. 화이자는 두 개의 비공개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보이저는 리보핵산(RNA) 기반 AAV 플랫폼인 트레이서(TRACER)를 보유하고 있다. 트레이서 플랫폼을 활용하면 뇌혈관장벽(BBB) 투과성을 높일 수 있다. 그 덕분에 기존 AAV보다 적은 용량으로도 원하는 세포에 도달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치료제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불필요한 면역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다.
보이저는 트레이서 플랫폼을 활용해 영장류 BBB를 투과할 수 있는 ‘9P801’ 캡시드를 개발했다. 영장류 시험에선 정맥 투여 후 유전자 발현이 기존 AAV9보다 1000배 이상 높았다. 기존 AAV9에 비해 심장근육에 잘 도달한다는 것도 확인됐다. 마이클 히긴스 보이저 최고경영자(CEO)는 “트레이서 플랫폼을 이용해 BBB 침투 기능을 높인 캡시드를 생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조직과 세포 유형에 활용가능한 새 캡시드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미충족 의료 수요에 맞춰 다양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화이자가 트레이서 플랫폼을 이용해 어떤 질환 치료제를 개발할지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화이자는 뒤센근이영양증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의 임상 3상 시험에서 심근염 등 심각한 부작용이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AAV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애브비, 사노피 등과 손잡았던 보이저는 모두 결실을 보지 못하고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앙드레 튜렌 CEO와 오마르 크와자 연구개발 책임자가 나란히 회사를 떠나는 등 안팎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화이자와의 라이선스 계약이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는 이유다.
이중항체 투자 확대하는 존슨앤드존슨
존슨앤드존슨의 제약부분 자회사인 얀센이 이중항체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한 두 건의 계약을 맺었다.첫 계약 상대는 단일클론항체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 기업 젠코(XNCR)다. 얀센이 공동 개발을 위해 젠코에 지급하는 금액은 최대 11억8800만 달러다. 계약금은 1억 달러다.
젠코는 CD28을 타깃으로 하는 이중특이항체 플랫폼인 XmAb를 보유하고 있다. B세포 표면에서 발현되는 종양단백질인 CD20과 T세포 수용체인 CD3을 타깃으로 하는 이중특이항체 치료제인 플라모타맙도 개발하고 있다. 이 후보물질은 CD20 발현 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1상 연구를 마무리했다.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에서 플라모타맙의 완전반응률(CRR)은 28%였다. 고용량 참가자의 3분의 1 이상이 완전반응을 보였다.
얀센과 젠코는 XmAb와 플라모타맙을 활용해 B세포림프종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내년 플라모타맙 임상시험이 본격화되면 얀센은 임상 비용의 80%를, 젠코는 20%를 부담한다.
제약사들은 CD20과 CD3을 결합해 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젠코와 함께 로슈, 리제네론 등이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후기 임상 단계인 로슈와 리제네론에 비해 젠코는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임상 단계에서 심각한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CRS)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가 없어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얀센은 젠코와 함께 플라모타맙을 피하주사제로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두 회사는 CD28 이중특이항체 치료제 후보군도 개발한다. 지난해 말 젠코는 얀센과 공동연구 계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전립선암 치료를 위한 T세포 활성화 후보군을 찾고 있다.
얀센바이오텍은 이중항체 개발사인 에프스타테라퓨틱스(FSTX)와 손을 잡았다. 계약금은 1억7500만 달러, 전체 계약규모는 13억5000만 달러다. 에프스타의 Fcab, mAb2 플랫폼을 활용해 최대 5개의 이중특이항체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에프스타는 2006년 세워진 바이오 기업이다.
Fcab 플랫폼은 항체의 Fc 기능을 유지하면서 두 개의 항원이 추가로 결합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를 이용하면 이중특이항체는 물론 삼중특이항체, 융합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 에프스타가 집중하는 치료 분야는 항암제다.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른 파이프라인은 FS118이다. LAG-3과 PD-L1을 타깃으로 하는 이중항체 치료제 후보물질로 임상 2상 단계다.
에프스타가 대형 제약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7월 아스트라제네카와 STING(인터페론 유전자 자극물질) 저해제를 공동 개발하는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계약규모는 3억 달러였다.
화이자-모더나, 코로나19 백신 예상 매출 932억 달러
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모더나가 내년 이들 백신으로 932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선진국에선 부스터샷(추가 접종)이 확대되고 저소득 국가에서도 서서히 백신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이들 두 백신이 여전히 높은 수요를 유지할 것이란 의미다.의료데이터분석기업 에어피니티는 화이자와 모더나가 내년 중국 외 코로나19 백신 시장의 75.2%를 점유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국 백신을 사용하는 중국을 제외하면 내년 코로나19 백신 시장은 124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코로나19 백신 시장에서 화이자 모더나와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 스푸트니크V 등이 경쟁하고 있다.
에어피니티는 내년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이 545억 달러어치 판매될 것으로 내다봤다. 모더나의 매출 전망치는 387억 달러다. 미국 애널리스트들이 전망한 화이자 백신 매출은 236억 달러, 모더나는 200억 달러다. 시장 전망을 크게 웃도는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라스무스 베흐 한센 에어피니티 CEO는 “이런 매출치는 전례없는 것”이라며 “저소득 국가와 중위소득 국가에서 예방 접종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내년에도 높은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세계 판매 1위 의약품은 애브비의 자가면역치료제 휴미라다. 연 매출은 198억 달러다. 2위인 MSD의 키트루다 연매출은 140억 달러다. 코로나19 확산 후 mRNA 백신이 세계 의약품 판매 순위를 바꿀 가능성이 높다.
에어피니티는 올해 화이자와 모더나가 시장 전망치보다 낮은 313억 달러와 176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지역에서 약값이 달라지면서 예상보다 매출이 떨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쟁자가 줄고 있는 것은 화이자와 모더나엔 호재다. mRNA 백신을 개발하던 독일 큐어백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포기했다. 단백질 재조합백신으로 주목받던 노바백스는 아직 시판 허가를 받지 못했다.
데이비드 다우디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는 “mRNA 백신은 효과가 높기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했다”며 “이 백신이 여전히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수개월 안에 다른 백신이 경쟁에서 이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