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T세포가 아닌 다른 면역세포를 활성화함으로써, 면역항암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여러 그룹에 의해 연구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9일 국제학술지 <면역(immunity)>에는 스테파니 슈프랑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팀이 종양의 크기를 줄이는 데 효과적인 수지상세포의 특성을 발견했다는 연구가 실렸습니다.
스스로 크기가 작아지는 ‘자발성 퇴행 종양’에서 발견된 면역세포
연구진은 쥐에서 자연적으로 크기가 줄어드는 ‘자발성 퇴행 종양(spontaneously regressing tumor)’을 발견했습니다. 드물게 발견되는 이런 종양 세포는 종양 덩어리를 만들면서도 스스로 크기를 줄이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자발성 퇴행 종양과 쥐의 결장에서 발생한 ‘진행성 성장 종양(progressively growing tumor)’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퇴행 종양의 경우 세포독성T세포(CD8+)의 기능이 유지되는 반면, 성장 종양에서는 T세포의 활성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은 각각의 종양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면역세포를 분석했습니다. 특히 암세포를 공격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지상세포에 집중했습니다. 수지상세포는 대식세포, B림프구와 더불어 항원제시세포(APC) 중 하나입니다. 바이러스 등 외부 물질이 침입했을 때 T세포를 활성화합니다.
기존에는 수지상세포의 여러 아형(subtype) 중 DC1 세포가 T세포를 활성화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요. 연구진은 종양이 퇴행하는 과정에서는 DC1 세포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퇴행 종양 근처에서 발견된 수지상세포들의 유전자를 모두 시퀀싱한 결과 ‘인터페론 자극 유전자(ISG)’가 발현된 새로운 유형의 수지상세포 DC2(ISG+DC)를 발견했습니다. 퇴행 종양은 인터페론-Ⅰ(IFN-Ⅰ)을 다량 분비했고, 인터페론-Ⅰ은 DC2를 활성화시켰습니다.
암세포로 위장한 수지상세포, 인터페론-Ⅰ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어
연구진은 DC2의 교차항원제시(cross presentation) 기능이 세포독성T세포를 활성화시켰다고 밝혔습니다. 교차항원제시는 수지상세포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수지상세포를 포함한 APC는 주조직적합성복합체(MHC) Ⅰ과 Ⅱ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MHC Ⅰ은 체내 대부분의 세포가 가지고 있는 분자로 ‘나(self)’임을 증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일종의 ‘ID 카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분자입니다. 만약 ‘내 세포’가 아닌 ‘남의 세포(non-self)’가 제시된다면 세포독성T세포가 활성화돼 non-self 세포를 제거해버립니다.
반면 MHC Ⅱ는 APC만 가지고 있는 분자입니다. APC는 바이러스가 침입한 경우 감염세포를 섭취한 뒤, MHC Ⅱ를 통해 바이러스 조각(외인성 항원)을 제시합니다. 그럼 도움T세포(CD4+)가 활성화됩니다. 수지상세포는 독특하게 외인성 항원을 MHC Ⅰ로 제시하는 교차항원제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리대로라면 MHC Ⅱ를 통해 제시돼야 하지만, MHC Ⅰ으로 항원을 교차 제시할 수 있는 기능이죠. 즉 외인성 항원으로도 세포독성T세포를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 DC2가 교차항원제시 기능을 이용해 암세포를 구성하는 작은 펩타이드 조각을 MHC Ⅰ로 제시했습니다. 자신의 ID 카드를 암세포의 것으로 바꿔치기한 셈입니다. 암세포로 위장한 DC2를 인지한 세포독성T세포는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T세포는 진짜 암세포들을 사멸시키게 됩니다.
연구진은 DC2의 표면에서 CD80, CD86, CD40 등 T세포 활성에 필요한 ‘공동자극분자(costimulatory molecules)’도 많이 발현된 것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여러 방식으로 DC2가 세포독성T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관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행성 성장 종양에서도 DC2가 일부 발견됐지만 비활성화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인터페론-Ⅰ을 투여하자 DC2가 활성화되며 종양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실제 연구진이 DC1 유전자를 제거한 마우스에서 종양을 발생시킨 뒤, 인터페론-Ⅰ을 투여하자 DC2가 활성화되며 종양의 크기가 줄어드는 퇴행 종양의 특성을 보였습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스프랑거 MIT 교수는 “이번 연구는 DC2가 활성화되는 새로운 경로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며 “인터페론-Ⅰ을 생성하는 약물을 종양 조직에만 전달할 수 있다면 유용한 항암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추가 연구를 통해 T세포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인터페론-Ⅰ의 양을 조사할 계획입니다. 스프랑거 교수는 “항암 치료에 인터페론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신에 너무 많이 투여하는 경우 위험할 수 있다”며 “적정한 양을 찾아내 항암 치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