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하의 줌아웃] 새로운 신약 패러다임 ‘미토콘드리아 의학’
<오징어 게임>은 세계 TV드라마에 신선한 충격을 안김과 동시에 K-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특별한 놀이감이 없었기에 땅바닥에 오징어 그림을 그려놓고 하루종일 뛰놀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현재 시점에서 줌아웃(zoom-out)해 바라보는 어린 시절의 오징어 게임은, 필자에게는 추억의 한 편린일 뿐이지만, 재능 있는 사람들의 손을 통해 세계를 놀라게 한 문화 콘텐츠의 소재가 됐다.

수년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켰던 주사형(走査型) 전자현미경으로 본 ‘마이크로의 세계’에서 보듯이, 인간의 시각으로는 평범하고 익숙한 사물의 모습이 전자현미경으로 수십만 배 줌인(zoom-in)해 들여다봤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형태나 패턴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줌인 접근법에 의해 관찰되고 축적, 규명된 노력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주를 줌인할 수 있게 이끈 1990년 허블 망원경 발사는 화성 탐사와 더불어 인간에게 우주를 더 넓은 시각에서 실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우주론적 세계관을 지니게 한 가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바이오 분야의 발전 가져온 줌인 접근법
바이오 분야에서의 줌인 접근법은 분자생물학·생화학·물리화학 등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생명의 바코드인 유전정보가 DNA에서 RNA, RNA에서 단백질로 전달된다는 중심원리(Central Dogma)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중심원리의 발견은 생명의 본질을 파악하고 규명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줌인적 노력과 분석의 결정체다.

최근에는 우주 탐사에 사용했던 NASA의 최첨단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세포 내 소기관인 핵과 소포체, 미토콘드리아, 골지체뿐 아니라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세포질과 세포 골격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2021년의 마지막 주에는 우주 생명체를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위해 허블 망원경보다 100배의 성능을 지닌 차세대 우주 망원경인 ‘제임스 웹’이 발사됐다는 신선한 뉴스가 있었다.

이러한 줌인 접근법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은 더욱 세분화·체계화·고도화되고 있으며 미래의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세기에 걸친 인류의 신약 개발 역사는 줌인 접근법의 핵심적인 결과물인 유전자와 단백질 수준의 분자 타깃을 찾아내어 이들 타깃을 제어하는 저분자화합물, 항체 및 유전자 등을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개발되는 면역항암치료제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다. PD-1, PD-L1에 대한 항체를 이용한 임상시험이 현재 1000건 이상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분자 타깃을 제어하는 질병 치료제 개발의 성공을 가르는 첫 단계는 질병 진행 단계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유전자나 단백질을 찾아내고, 이들의 분자구조와 신호전달 경로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다.

한계점 있는 줌인 접근법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자본과 노력을 들인 신약 개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생명 현상을 핵심적으로 조절하는 대다수의 유전자나 단백질들은, 치료제 개발을 전제로 하지 않은 순수한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발견됐다. 또 이러한 분자 타깃을 제어하는 신약 개발이 현재까지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향후에는 이러한 핵심 분자 타깃의 발견은 확률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또한 분자 타깃을 이용한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은 더욱 낮아지고 비용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측된다. 치료약이 없어 많은 환자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질환에 대한 의학적 수요는 크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질환들은 여러 복합적이고 다양한 병리 기전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분자 타깃이나 신호 경로를 제어하는 약물의 개발은 근원적 한계를 지닌다. 특히 치료약이 거의 없는 퇴행성 뇌질환인 치매, 파킨슨병 및 신경병뿐 아니라 노화-관련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다양한 인자가 복합적으로 상호 의존적으로 병인에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병인 및 병리 기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더불어 다기능 및 다인자의 효능을 지닌 물질들에 대한 개발 전략이 요구된다.

다양하고 복잡한 병인으로 발생하는 질환의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줌인 접근법에 기반한 분자 타깃 중심의 개발 전략을 보완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줌아웃 접근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소위 ‘out-of-the box thinking’, 즉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의 조명할 때다.

줌아웃 접근법이 필요한 이유
줌인 접근법을 벗어나 줌아웃을 통해 세포 밖으로부터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재조명해보자.

세포는 자신에게 전달되는 내부 및 외부의 다양한 수많은 위험 신호를 어떻게 구분하고, 이들 신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적응할까. 시간, 공간 및 물리적·화학적 특성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위험 신호들을 정확히 구분하고 이들 신호에 효율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 각각의 세포는 슈퍼컴퓨터에 준하는 정보 처리 능력을 장착해야 한다.

세포는 이들 정보를 가공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까. 각각의 세포는 다양한 위험 신호와 스트레스에 합목적적으로 반응·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장치, 방어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을까.

질병이란 세포들의 ‘생체에너지 위기(bioenergetic crisis)’로 귀결된다. 세포의 생체에너지 위기는 기능 이상과 염증 및 세포사멸을 유도하며, 이로 인해 병들거나 손상된 세포들은 조직과 장기의 기능 이상을 초래하고 결국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질병을 생체에너지 위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포 내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이상은 다양한 여러 질환의 기저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보편적 병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생체에너지 위기’ 관점, 즉 줌 아웃의 시각으로 다양한 질환의 여러 병인을 통합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위험 신호 및 스트레스를 인지하고 반응하는 합목적적 방어 시스템인 ‘삶과 죽음의 지배자, 미토콘드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저자 소개>

[김순하의 줌아웃] 새로운 신약 패러다임 ‘미토콘드리아 의학’
김순하
연세대에서 생화학으로 학·석사를 마친 뒤 서울대 의과대에서 면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LG화학(옛 LG생명과학) 책임연구원을 거쳐 미토콘드리아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미토이뮨테라퓨틱스를 2018년 설립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