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섭 포스텍 교수와 연구진이 아날로그 반도체 회로 배치 설계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하고 있다.  포스텍  제공
김병섭 포스텍 교수와 연구진이 아날로그 반도체 회로 배치 설계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하고 있다. 포스텍 제공
컴퓨터는 빛과 소리, 온도를 느낄 수 없다. 흔히 ‘아날로그 신호’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이런 신호를 컴퓨터 언어로 바꿔내는 역할을 한다. 시스템반도체의 일종인 아날로그 반도체가 차량이나 무선통신 분야에서 특히 파급력을 인정받는 이유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스마트폰과 TV 등에 탑재되는 전력반도체, 디스플레이 구동칩, 이미지 센서 등 빠지는 데가 없다 보니, 반도체 수출의 공신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다만 높은 난도는 생태계 성장의 장벽이다. 비용은 많이 들고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다수의 전문인력까지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아날로그 반도체다. 특히 각종 회로소자와 도선을 놓는 과정인 ‘배치설계(Layout)’는 수작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생산성까지 떨어진다. 포스텍을 주축으로 금오공대·인하대·UNIST·GIST가 한데 뭉쳐 ‘Layout 자동화 소프트웨어(SW)를 이용한 아날로그 IP 중개연구단(아날로그 IP 중개연구단)’을 발족한 배경에는 회로설계 기술을 자동화해 기업들 ‘숨통’을 틔워주고자 하는 포부가 담겨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공연구성과 활용 촉진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지원하는 아날로그 IP 중개연구단은 지난해 7월 설립됐다. 현재 김병섭 포스텍 교수를 연구단장으로 7명의 교수와 61명의 연구진이 실용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전문인력의 수작업을 자동화 SW로 만드는 것 자체가 상당한 난도고, 공정 방식에 따라 설계가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 있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한 번 제작하면 수정이 거의 불가능한 점도 연구단의 발목을 잡은 요소였다. 그는 “첫 테스트 칩을 만들 때부터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수백만 개 트랜지스터를 배치하는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려움을 뚫고 만들어낸 첫 자동화 SW는 8개월 만에 탄생한 ‘역작’이었다. 수작업으로 한 달 넘게 걸리던 아날로그 회로 설계를 수십 초로 줄였다. 김 교수는 “기간이 짧아 기술이전 사례는 없지만,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SW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며 “최소 수백 배 이상의 아날로그 반도체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반도체업계에는 가치가 더 큰 기술이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해마다 1500명 상당의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김 교수는 “인력은 양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들쭉날쭉한 정책 변화로 대기업조차 심각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며 “연구단이 만든 SW는 이런 인력 공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라고 밝혔다.

연구 분야는 더욱 확장한다. 메모리 모듈에 사용되는 인터페이스, 디스플레이용 인터페이스, 그리고 자율주행차에서 사용하는 라이다(LiDAR) 센서의 회로 기술도 설계 자동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그는 “상당수가 국산화하지 못한 기술”이라며 “해외로부터 칩 공급이 중단될 경우 관련 산업이 멈출 수도 있는 중요한 분야들”이라고 했다. 이어 “배치설계 자동화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개발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