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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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한국의 반도체 특허 경쟁력이 지속해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는 과학기술에 대한 배타적 권리로 장기간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지식재산(IP)이다.

23일 본지가 확인한 2017~2021년 특허 다출원 5개국(IP5: 미국 한국 일본 중국 유럽)의 반도체 특허 동향에 따르면 유럽연합(EU) 등록 특허는 직전 5년(2012~2016년)보다 77%, 중국은 50% 급증했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4.2% 증가에 그쳤다. 등록 특허는 얼마나 ‘쓸 만한’ 기술을 개발했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단순히 내면 되는 출원 특허보다 고급 지표다.

중국 일본에 추월…유럽에도 쫓겨

한국은 지난 5년간 반도체 특허 5만7939건을 등록했다. 20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14만619건)의 41.2%에 불과하다. 유럽은 상승률 1위(77%)였다. 중국은 직전 5년 대비 50% 늘어난 9만2780건을 등록해 일본(6만9670건)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이 같은 반도체 지식재산 약화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유럽 반도체 기업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귀국길에서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시간대를 20년 단위로 넓혀 보면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 하락 추이가 더 두드러진다. 한국은 2002~2006년엔 미국(8만7959건)에 이어 2위(4만2417건)였다. 이후 5년엔 일본에 밀려 2위 자리를 내줬다. 다음 5년엔 중국(6만2162건)에 따라잡히며 4위(5만5600건)로 떨어졌다. 2017~2021년엔 중국의 62% 수준으로 멀찌감치 처졌다. 5개국 가운데 4위를 간신히 수성하고 있지만 전체 등록 특허 수마저 유럽에 쫓기는 판이다.

미래산업 핵심인 시스템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산업 구조가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2020년 기준 5000억달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시스템 반도체다. 데이터를 연산·제어·변환·처리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인공지능(AI) 기기가 폭증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AI 반도체, 센서 반도체, 통신 반도체, 전력 반도체, 동작제어 반도체 등으로 나뉜다. 적용 분야는 AI 두뇌를 비롯해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로봇, 차세대 전지 등 모든 미래 산업에 걸쳐 있다. 로봇의 경우 눈·코·귀 등 감각기관(센서), 근육(액추에이터), 중추신경(컨트롤러)에 시스템 반도체가 대량으로 쓰인다. 자율주행차, 전기자동차, 수소차 등 미래차도 로봇과 마찬가지다.

6대 분야(AI·자동차·IoT·로봇·에너지 등) 시스템 반도체 특허 영향력 분석 결과, 한국은 전 분야에 걸쳐 하위권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반도체는 미국(1.31)과 대만(0.68), 일본(0.49) 등에 한참 뒤떨어진 0.21에 불과했다. IoT 반도체와 로봇 반도체도 각각 0.51, 0.46에 그치며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특허 기반 반도체 개발 전략 세워야”

다수 반도체 특허를 보유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는 선도국 대비 최저 59% 수준의 기술 열위 상태”라고 최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우리 경제의 근간”이라고 강조하며 연일 특단의 인재 양성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다만 인력 늘리기에 앞서 정확한 연구개발(R&D) 방향을 먼저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 세계지도’인 특허를 보면 가야 할 방향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3㎚(나노미터) 이하 극미세 반도체 설계기술인 4차원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관련 IP5의 특허 출원 수는 2016~2020년 연평균 42% 증가했다. 반면 현재 범용 기술인 3차원 핀펫은 특허 출원이 하락세로 전환됐다. 지난해 5월 기준 GAA 최다 출원 기업은 대만의 TSMC로 405건을 출원했다. 2위인 삼성전자(266건)보다 50% 이상 많다. IBM, 글로벌파운드리, 인텔, 도쿄일렉트론 등이 삼성전자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며 “핵심 IP를 보유해 후발주자의 진입을 차단할 수 있느냐가 생존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