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받는데 '2년 6개월' 걸린다…속타는 삼성·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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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리드타임 최대 30개월까지 늘어나
삼성전자 등 시설투자 이미 차질 빚는 중
"장비 국산화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추세"
삼성전자 등 시설투자 이미 차질 빚는 중
"장비 국산화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추세"
반도체 업계의 장비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는 물론이고 대만 TSMC와 미국 인텔, 중국 반도체 업체들까지 공장 증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일부 장비의 경우 최대 2년 6개월가량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반도체 장비 수급이 반도체 업체들의 장·단기 전략 수립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드타임이 이처럼 길어진 이유는 반도체 업체들의 시설 투자 증가로 주문이 급증해서다.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40% 넘게 성장한 125조원을 기록했다.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신규 공장 증설이나 보강 투자를 위해 발주한 장비 양이 증가했다는 얘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에 따른 도시 봉쇄 등의 영향도 반도체 장비 생산 지연을 가중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가세하면서 시장에 공급할 반도체 장비가 부족해졌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공장 초기 투자는 부지와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 장비 도입 비용이 차지한다. 생산라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반도체 장비 비중이 80~90%에 달한다. 인텔의 천문학적 반도체 제조·연구개발(R&D) 투자 비용 중 상당 부분이 반도체 장비 도입에 쓰일 전망이다.
인텔은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공장 확장에 200억달러(한화 약 25조9300억원), 지난달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 구축에 200억달러, 유럽에 330억유로(약 44조6700억원) 규모를 초기 인프라 구축에 쏟는다고 밝혔다.
이같은 인텔의 공격적 반도체 제조 인프라 투자는 글로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하다. 소부장 기업에는 삼성전자와 TSMC에 견줄 대형 고객사가 나타나 신규 시장 창출 기회가 됐지만 리드타임 지연으로 인한 반도체 공급난이 가중된 것이다.
국내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는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생산능력의 90% 이상이 DUV 공정을 채택하고 있다. 파운드리에서도 5나노 이하의 최첨단공정이 아닌 구공정은 대부분 DUV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기존에는 글로벌 파운드리 생산량이 2022년과 2023년 각각 13%, 10%씩 성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 인도 지연을 고려하면 성장률이 8%대로 떨어질 것"이라며 전망치를 조정했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 도입 지연으로 올해 국내 업체들의 시설 투자는 이미 차질을 빚고 있다.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올 1분기(1~3월) 6조6599억원을 반도체 설비 등에 투자해 전년 동기(8조4828억원) 대비 20.5% 감소했다.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시설투자가 4조3510억원에서 4조6930억원으로 7.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장비 확보에 어려움이 생겨 적기에 자금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추정된다. 트렌드포스는 "(장비 인도 지연으로) 반도체 확장 계획은 약 2~9개월 동안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에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전례 없는 부품 부족 현상이 장비 산업을 넘어 반도체 업계 전체를 강타했다"며 "삼성전자와 TSMC 등이 장비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위 경영진을 해외로 파견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달 2년 만에 유럽 출장을 떠났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노광장비 전문 업체인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해 EUV 등의 원활한 조달 방안 등을 논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EUV 장비를 두고 TSMC, 인텔 등과 경쟁해야 하고 DUV 장비의 경우 중국 업체들의 물량 저가 공세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이다.
이 부회장은 유럽 출장에서 귀국해 ASML 방문 사실을 언급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TSMC 역시 위기를 감지하고 협력사들에 생산 장비 확보를 근거로 들어 2023~2024년에 생산량을 필요한 만큼 빠르게 늘리지 못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IT 컨설팅업체 IBS의 핸들 존스 최고경영자(CEO)는 생산장비 부족이 2·3나노 공정 칩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4년과 2025년에 이들 제품의 공급 부족률이 10∼20%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퀄컴은 일부 반도체 생산업체가 일방적으로 공급량 축소를 시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리드타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 예의 주시 중"이라며 "반도체 장비 국산화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완성 업체뿐만 아니라 장비 업체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필수"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이처럼 반도체 장비 수급이 반도체 업체들의 장·단기 전략 수립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장비 리드타임 점점 길어져
5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ASML,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이 제조하는 반도체 장비 리드타임(제품을 생산해 배송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이 최근 18개월에서 30개월까지 늘어났다. 올 초(12~18개월)보다 상황이 더 악화했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3~6개월)과 비교하면 최대 10배 차이까지 난다.리드타임이 이처럼 길어진 이유는 반도체 업체들의 시설 투자 증가로 주문이 급증해서다.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40% 넘게 성장한 125조원을 기록했다.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신규 공장 증설이나 보강 투자를 위해 발주한 장비 양이 증가했다는 얘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에 따른 도시 봉쇄 등의 영향도 반도체 장비 생산 지연을 가중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가세하면서 시장에 공급할 반도체 장비가 부족해졌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공장 초기 투자는 부지와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 장비 도입 비용이 차지한다. 생산라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반도체 장비 비중이 80~90%에 달한다. 인텔의 천문학적 반도체 제조·연구개발(R&D) 투자 비용 중 상당 부분이 반도체 장비 도입에 쓰일 전망이다.
인텔은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공장 확장에 200억달러(한화 약 25조9300억원), 지난달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 구축에 200억달러, 유럽에 330억유로(약 44조6700억원) 규모를 초기 인프라 구축에 쏟는다고 밝혔다.
이같은 인텔의 공격적 반도체 제조 인프라 투자는 글로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하다. 소부장 기업에는 삼성전자와 TSMC에 견줄 대형 고객사가 나타나 신규 시장 창출 기회가 됐지만 리드타임 지연으로 인한 반도체 공급난이 가중된 것이다.
심자외선 노광장비 공급난 심해
반도체 장비 중 가장 심하게 공급난을 겪는 품목은 심자외선(DUV·deep-ultraviolet) 노광장비다. DUV 장비는 빛을 이용해 웨이퍼에 전자회로를 새기는 역할을 한다. 첨단 반도체 장비로 불리는 극자외선(EUV·Extreme ultraviolet) 장비의 구형 버전이다. DUV 장비가 부족해진 건 수년 사이 중국 업체가 DUV 장비 매입에 적극 나선 영향이 크다. 미국 주도로 중국 업체들의 EUV 장비 도입이 금지되면서 이들이 첨단 공정 경쟁에서 구식 공정 개발로 눈을 돌려서다. 연간 생산량이 50대 수준에 불과해 상시적 공급난을 겪고 있는 EUV 장비는 물론 증착(CVD·PVD) 장비와 에칭 장비 등도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국내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는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생산능력의 90% 이상이 DUV 공정을 채택하고 있다. 파운드리에서도 5나노 이하의 최첨단공정이 아닌 구공정은 대부분 DUV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기존에는 글로벌 파운드리 생산량이 2022년과 2023년 각각 13%, 10%씩 성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 인도 지연을 고려하면 성장률이 8%대로 떨어질 것"이라며 전망치를 조정했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 도입 지연으로 올해 국내 업체들의 시설 투자는 이미 차질을 빚고 있다.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올 1분기(1~3월) 6조6599억원을 반도체 설비 등에 투자해 전년 동기(8조4828억원) 대비 20.5% 감소했다.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시설투자가 4조3510억원에서 4조6930억원으로 7.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장비 확보에 어려움이 생겨 적기에 자금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추정된다. 트렌드포스는 "(장비 인도 지연으로) 반도체 확장 계획은 약 2~9개월 동안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WSJ "장비 부족 현상…생산 차질로 이어질 것"
외신들도 반도체 장비 부족 현상을 조망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부족 현상이 첨단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비가 부족해져 수율에 차질이 빚어지고 납품기일을 지킬 수 없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 것. 이에 따른 2024년 이후 첨단 반도체 공급 부족률은 최대 20%에 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지난 4월에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전례 없는 부품 부족 현상이 장비 산업을 넘어 반도체 업계 전체를 강타했다"며 "삼성전자와 TSMC 등이 장비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위 경영진을 해외로 파견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달 2년 만에 유럽 출장을 떠났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노광장비 전문 업체인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해 EUV 등의 원활한 조달 방안 등을 논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EUV 장비를 두고 TSMC, 인텔 등과 경쟁해야 하고 DUV 장비의 경우 중국 업체들의 물량 저가 공세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이다.
이 부회장은 유럽 출장에서 귀국해 ASML 방문 사실을 언급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TSMC 역시 위기를 감지하고 협력사들에 생산 장비 확보를 근거로 들어 2023~2024년에 생산량을 필요한 만큼 빠르게 늘리지 못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IT 컨설팅업체 IBS의 핸들 존스 최고경영자(CEO)는 생산장비 부족이 2·3나노 공정 칩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4년과 2025년에 이들 제품의 공급 부족률이 10∼20%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퀄컴은 일부 반도체 생산업체가 일방적으로 공급량 축소를 시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리드타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 예의 주시 중"이라며 "반도체 장비 국산화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완성 업체뿐만 아니라 장비 업체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필수"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