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랩, 입사 면접자
30만명 영상데이터 분석
"미래 고성과자 파악할 것"
판결문 분석해 형량 예측
로이어드, 적중률 91%↑
스포츠 경기 승패 예상
'이 노래 뜰 것' 판별하는
AI 예측 서비스도 눈길
美·中선 범죄 예측도 활발
"AI가 선입견 심어" 논란도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선 당신,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 회사에서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지 그간 쌓은 역량을 근거로 제시하며 면접위원을 설득한다. 당신의 진심 어린 노력과 달리 회사는 당신을 탈락자로 분류한다. 인공지능(AI)이 ‘당신이 이 회사에 입사하면 3년 내 퇴사할 가능성이 70% 이상’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이들 사례는 먼 미래 얘기거나 소설에나 등장하는 허구가 아닐 수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언자가 범죄자를 예측하는 ‘예방 치안’ 시스템을 선보인 것처럼 ‘AI 예언자’ 시대는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학습하는 AI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AI 예측의 정확도가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활용 분야도 날씨, 생산·수요 예측을 넘어 최근에는 채용, 판결 예측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살인 미수 전과자인 30대 남성이 슈퍼에서 식칼과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를 구매했다. 이 남성은 인터넷에서 시체 유기 방법도 찾아봤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체포됐다. 소비 행태와 인터넷 검색 내용을 분석한 AI가 이 남성의 잠재적 범죄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판단한 것이다.
○면접 볼 때부터…퇴사 예측?
AI 면접 솔루션을 제공하는 제네시스랩은 현재 300만 개 이상의 면접 영상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LG전자 병무청 등 다양한 기업 및 기관의 입사 지원자 약 30만 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그간 대면 면접은 개별 면접위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됐다. 표정과 제스처 등 비언어적 소통이 포함된 만큼 이를 데이터로 저장하기도 어려웠다. 데이터화가 가능한 건 학벌, 시험 성적 등 정량 스펙이 전부였다. 하지만 요즘은 AI 면접 솔루션으로 회사에 필요한 역량을 검증한 뒤 이를 데이터화하는 게 가능해졌다.
제네시스랩은 특정 기업 지원자의 학점, 학벌, 시험 점수 등 수십 년치 데이터를 토대로 고성과자, 퇴사자의 경로를 추적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영복 제네시스랩 대표는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입사 시험 단계에서 유의미한 수준으로 고성과자를 파악하고, 향후 퇴사자까지 예측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AI의 궁극은 ‘예측’으로 통한다
이 대표는 “AI 기술이 싱귤래리티(특이점·AI가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기점)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데 이 기점을 넘어서면 예측이 궁극적인 화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AI 예측 기술은 법률, 스포츠 분야에도 도입되고 있다. 로이어드컴퍼니는 AI 기반 형량 예측 서비스를 제공한다. 형량 예측 적중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단순한 형태의 판결문도 최대 70개까지의 변수로 나눴다. 강제추행이라면 장소, 시간, 신체 부위, 가해 행위 형태 등으로 세분화한다. 이를 토대로 징역, 집행유예, 벌금, 선고유예 등 처벌 수위를 예측한다. 회사 측은 적중도가 91%를 웃돈다고 자신하고 있다.
노래 등 상업용 콘텐츠가 뜰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AI 기술도 확산하고 있다. 웹툰 제작사 오늘의웹툰은 웹툰 작품의 흥행 여부를 제작 극초기 단계에 미리 분석하는 ‘웹툰 애널리틱스’를 작가들에게 제공한다. AI 작곡 스타트업 포자랩스는 역대 인기곡을 토대로 신곡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투수 투구폼 보면 승률 알 수 있다?
해외에서도 AI 예측 서비스 관련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메달리아는 이용자 반응을 수집하는 기업 간 거래(B2B) 서비스가 주요 업무였다. 고객사의 의뢰를 받아 앱스토어 리뷰, 이메일, SNS 등에서 고객 반응을 파악했다. 이 회사는 최근 ‘시그널(사전 신호) 회사’를 표방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이 고객은 3개월 이상 구매 행위를 지속한다’ ‘이 고객은 3주 안에 떠난다’ 등의 행동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다.중국 AI기업 클라우드워크스는 안면 인식 및 행동 패턴을 통해 범죄 여부를 예측한다. 비전 AI 기술로 사람의 복장, 체형, 모발 등을 분석해 행인의 신분을 인식하고 현장 정보와 결합해 추적하거나 탐색해낸다. 구매 내역과 인터넷 검색 내용 등의 데이터를 종합해 범죄 여부를 사전에 파악하는 기술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아일랜드 스타트업인 키트맨랩스는 웨어러블 컴퓨터와 AI를 결합해 스포츠 선수들의 부상 가능성과 성적을 예측한다. 센서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운동경기를 하면 AI가 동작을 분석해 피로도와 신체 부위별 잠재 부상 여부를 감지한다. 동작을 어떻게 교정하는 게 성적을 올리는 데 효율적인지도 파악한다.
○AI 예언자,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AI 예측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논란의 여지는 커질 전망이다. AI가 예측한 결과를 어디까지 공개하고 활용할지 등에 대한 논쟁이 여전하다. 영국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의 AI는 최근 특정 지역의 특정 범죄 가능성을 사건 발생 1주일 전에 90% 확률로 예측했다. 시카고를 일정 구획으로 나눈 뒤 AI에 과거 수년간의 구획별 범죄 데이터를 학습시켰고 이후 각 구획에서 살인, 강도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분석했다. 이 AI의 예측 결과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AI가 시카고 내 20~29세 흑인 남성의 56%를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했기 때문이다.선거 결과 예측을 놓고도 우려의 시선이 있다. 미국 K코어애널리틱스, 이탈리아 엑스퍼트AI 등 AI기업들이 최근 두 차례 미국 대선 결과를 맞혔지만 이 내용을 사전에 공개하자 “유권자 결정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세영 KAIST AI대학원 교수는 “기업과 학계가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는지, 어떤 선입견 및 오류가 생길 수 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특히 범죄 사전 예방 등 민감한 사안은 기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