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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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 몰입>으로 유명한 작가 짐 퀵은 ‘To Do(할 것)’보다 ‘Not to Do(하지 말 것)’를 정해서 지키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스타트업 창업과 경영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찾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실수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거나 회사 자체가 무너지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겪은 스타트업 대표 10명을 인터뷰해 ‘이것만은 하지 마라’를 물었다.

많은 자금을 아무에게나 받지 마라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화상 영어 서비스로 유명한 링글의 이승훈 대표는 사업 초기에 너무 많은 자금을 투자받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업 초기 필요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하는 대표적인 실수가 △대규모 채용 △마케팅 예산 급증 △사무실 확장 이전 등이다. 이 대표는 “6개월 내 망하지 않는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는 게 적정하다”며 “돈이 많아지면 머리를 쓰지 않고 돈을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첫 투자 제의를 너무 빨리 수락하지 말라고도 했다. 투자도 경험이 쌓여야 회사에 맞는 투자자와 투자 조건을 선별하는 시각이 생긴다. 고마운 마음에 이끌려 첫 투자 제의에 덜컥 응하지 말고, 1주일 정도 시간을 가지고 스타트업 선배나 친한 벤처캐피털(VC)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할 것을 추천했다.

콘텐츠 지식재산권(IP) 기반 컴퍼니빌딩을 하는 콘텐츠테크놀로지스의 이장원 대표는 “밸류에이션(기업 평가 가치)에 연연하지 말라”며 “몸값을 높게 쳐주는 VC보다는 회사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VC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혁재 스푼라디오 대표는 “법인 계좌로 투자금이 입금되기 전까지는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 최 대표는 “호의적인 기업설명회(IR) 미팅을 한두 번 하게 되면 많은 창업자가 투자받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며 “구두로 투자 결정이 나도 확신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여러 서류 작업이나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결정이 뒤집어지는 일도 적지 않다.

개발에 너무 오래 집착하지 마라

현물 조각투자 플랫폼 ‘피스’를 운영하는 바이셀스탠다드의 신범준 대표는 “개발에 너무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제품·서비스 시장 적합성(PMF)’을 빨리 검증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른 시간 안에 구현해 창업자가 생각한 사업의 가설을 시장에 ‘던져’ 놓으라고 했다. 그는 “사업모델이 좋으면 개발 수준이 당장 조금 떨어지더라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알람앱 알라미를 만든 신재명 딜라이트룸 대표는 “확장성 없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제품을 고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발적이거나 인력과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관리 유지 업무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홍보와 고객서비스(CS)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 창업자 중엔 엔지니어 출신이 많은데, 제품·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이냅스의 주동원 대표는 “시장은 따라가는 것”이라며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초기 창업가의 반은 자신이 서비스를 내놓으면 사람들이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제론 창업가가 소비자 마음에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이냅스는 지난해 1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음성 합성 기술을 활용한 오디오 성경을 선보였다. 170만 자 분량의 성경 내용을 실제 목사의 음성 데이터에 기반해 만들었다. 주 대표는 “일반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해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일종의 기업 간 거래(B2B)처럼 교회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해답이었다”고 말했다.

창업 멤버에게 같은 권한을 주지 마라

AI 의료 스타트업 포트래이의 이대승 대표는 “창업 멤버 모두에게 똑같은 권한을 주지 말 것”을 강조했다. 보통 공동 창업자들은 각자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는다. 최고경영자(CEO), 최고기술책임자(CTO), 마케팅 담당, 영업 담당 등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회사 업무비 지출, 인사 등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블록체인 관련 회사를 창업했다가 실패한 경험에서 체득한 노하우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확인해 보니 다른 공동 창업자가 채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 대표는 “인사 담당자 없이 운영진의 역할이 겹쳐서 발생한 낭비였다”고 설명했다.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는 “피봇(사업모델 전환)할 때 모든 직원을 다 의리로 끌고 가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에이팀벤처스는 3차원(3D) 프린터 제조업에서 2020년 제조 매칭 플랫폼으로 변신했다. 그는 “피봇 과정에서 초기 멤버들과 함께 가려고 했다”며 “대표로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고 복기했다. 3D 프린터 제조업을 완전히 놓지 못하고 새로운 사업과 병행했던 기간이 3~4년가량 됐다. 플랫폼 사업과 제조업 중간에서 모호하게 걸치고 있다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시간이었다. 고 대표는 “아주 훌륭한 역량을 가진 팀원들이어도 사업모델이 전환되면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의 성과에 조급해하지 마라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김슬아 컬리 대표는 “당장의 성과에 조급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에 서두르다가 실수하는 창업자가 많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엔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라며 “하지만 대표가 흔들리면 회사가 방향을 잃고 표류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 역시 창업 초기엔 힘든 시기를 보냈다. 회사의 더딘 성장을 보는 게 힘들었고 ‘이런 속도로 내가 꿈꾸던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무리한 시도를 한 경우도 있었다. 그는 “당장의 극적인 결과물을 기대하기보다는 멀리 보고 자신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했다.

4050 여성 패션 커머스 ‘퀸잇’ 운영사 라포랩스의 홍주영 공동대표는 “작은 시장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무리 아이템이 좋더라도 시장의 크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세 번이나 스타트업을 차렸다. 경제뉴스를 큐레이팅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인 게 첫 창업이었다. 뉴스레터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추세가 아니어서 회사의 덩치를 불리기가 쉽지 않았다. 흙 없는 화분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사업도 했다. 이 역시 화훼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은 탓에 사업을 접었다.

홍 공동대표는 “첫 아이템이 성공할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팀원들도 ‘우리 팀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으로 모으라고 했다. 홍 공동대표는 “특정 아이템에 꽂혀서 팀원을 모았는데 그 아이템이 실패하면 퇴사자가 속출한다”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망한 뒤 다시 일어서는 것을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김주완/고은이/최다은/김종우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