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기를 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더글로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주인공이 '김밥'을 즐겨 먹는다는 점입니다. 우영우는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김밥을 좋아하고, 문동은은 복수에 집중하기 위해 간편한 김밥을 자주 먹습니다.
K-콘텐츠가 세계적 흥행을 이어가면서 김밥 등 K-푸드의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들도 K-푸드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데요, 색다른 전략으로 가정간편식(HMR) 시장에 접근한 윙잇도 그중 하나입니다.
윙잇은 전통 식품기업도 아니고, 백종원과 같은 성공한 요식업자가 만든 회사도 아닙니다. 대신 데이터를 뽑아 소비자의 입맛을 정밀하게 겨냥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죠. 윙잇의 글로벌 진출사업을 맡은 홍성우 최고전략책임자(CSO)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왼쪽)· '더 글로리' 방송 화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왼쪽)· '더 글로리' 방송 화면
“해외 식품 판매업체로부터 먼저 요청이 왔어요. 저희 김밥을 팔고 싶다고. 해외 진출이 국내 커머스의 한계를 보완할 '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홍성우 CSO)

잘나가던 커머스 기업에 경영 악화, 권고사직 등 부정적인 뉴스가 연달아 나왔다. 투자 업계에서는 커머스를 ‘물 먹는 하마’로 보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8년차 푸드 커머스 스타트업 윙잇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시장 분위기에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흑자 모델로 전환할 방향을 찾아야 할 시점이었다.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기업 간 거래(B2B) 비중을 확대했다. 홍성우 CSO는 "많은 커머스가 B2C를 중심으로 하니 물류비가 많이 든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B2B 비중을 높여야 수익구조가 잡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성우 윙잇 최고전략책임자(CSO). 윙잇 제공
홍성우 윙잇 최고전략책임자(CSO). 윙잇 제공
업체들의 요청이 강했던 해외 B2B 진출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올해 초 회사는 홍 CSO를 필두로 해외사업팀을 조성하고 싱가포르, 베트남, 홍콩, 미국, 코스타리카 5개국의 벤더업체 등과 거래를 시작했다. 국내 B2B 고객도 늘려가는 중이다. 주요 식당과 밀키트 전문점, SMB(소상공인) 사업자 몰 등 370여 곳에 윙잇의 간편식을 납품하고 롯데마트, 오늘의집, 올리브영 등 온라인 판매 채널도 대폭 늘렸다.

46단계 거친 푸드 오디션

해외에서 성공한 식품기업은 흔치 않았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 성경식품의 성경김 등 몇몇 사례가 전부였다. 전통 식품기업이 아닌 윙잇은 이들처럼 '킬러 상품'을 만들기보다 '바텀업' 방식을 활용해 영리하게 풀어갔다. 철저히 이용자 개개인의 선호를 취합해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지난해 ENA 채널에서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지난해 ENA 채널에서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윙잇은 이용자 130만 명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거나, 사람들이 원하지만 시중에 판매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면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홍 CSO는 "형태소 분석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이용자가 짜장면 맛집을 검색하면 여기서 짜장면을 발라내는 기술"이라며 "윙잇만의 차별화된 접근법"이라고 했다.

회사는 상품을 출시하기까지 정량·정성 분석과 상품 기획 가설 및 검증 등 약 46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홍 CSO는 "이 단계에서 하나라도 미끄러지면 상품을 출시하지 않고 있다"며 "출시의 정당성을 가지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곤약 떡볶이에 대한 이용자의 검색 빈도가 높다면, 곤약 떡볶이를 만드는 제조사 10곳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제조사의 상품을 다량으로 매입해 판매한다. 이 제품이 일정 기준의 매출을 달성하면 PB상품으로 개발한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골라 더 나은 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포털의 트렌드 검색, 매달 약 15만 건의 구매자 설문조사, 플랫폼 내부 검색 등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시중의 상품을 업그레이드하는 식이다.

몸집은 가볍게, 타깃은 뾰족하게

윙잇은 상품을 자체 제조하지 않는 대신 4000여 곳의 협력 제조공장에 맡겨 OEM으로 상품을 만든다. 그 상품은 어디든 자유롭게 판매가 가능한 셈이다. 공장을 운영하지 않고 창고 보관비만 내면 되기 때문에 몸집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제품 개발이 신속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난해 초에 1000개였던 제품 수를 한 해 동안 3000여 개로 늘렸다. 16명의 MD가 의기투합해 빠른 속도로 제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 명당 월 6개 이상의 제품을 출시 할 수 있다는 게 윙잇 측 설명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프로틴 등 건강관리식과 비건 라인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걸고 있다. "미국, 동남아 모두 비건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고 한식이 건강식 이미지가 있는 만큼 이런 상품을 먼저 강조할 계획"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윙잇의 랠리곤약김밥 제품 사진.
윙잇의 랠리곤약김밥 제품 사진.
자체 상품인 랠리곤약김밥은 이런 흐름에 맞춰 뜨거운 반응을 얻은 제품이다. 동남아 시장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며 현지에서 김밥에 대한 요구가 급증했다. 여기에 곤약, 야채로 건강까지 챙긴 윙잇의 곤약김밥은 해외 바이어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힙한' 음식이 됐다.
싱가포르 이커머스 라자다에 입점된 윙잇 제품
싱가포르 이커머스 라자다에 입점된 윙잇 제품
곤약김밥은 싱가포르 대표 이커머스 채널인 쇼피(Shopee), 라자다(Lazada), 레드마트(Redmart) 등에 입점했고 홍콩 소고 백화점 등에도 들어가는 등 판매 채널을 지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윙잇 관계자는 "곤약김밥이 주로 관심을 받다가 최근에는 곤약라면, 곤약떡볶이 등도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흑자 커머스 목표로 달린다

윙잇은 최대한 성공 가능성이 높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낸다. HMR 시장 역시 팬데믹을 기점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시장조사업체 얼라이드마켓리서치는 글로벌 HMR 시장 규모가 2018년 907억달러(약 115조8239억원)에서 2023년 1462억달러(약 186조6974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175억원이던 윙잇 매출은 지난해 41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770억원의 매출을 거두는 게 목표다. 지난달 삼일PwC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200억~25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기도 하다.

초창기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반려동물 브랜드, 주방용품 브랜드 등 다양한 품목을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2019년에는 매달 1억원 이상의 적자가 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미수탁 모델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점점 장악력이 줄어들고 외부 알력에 휘둘린다는 걸 체감했던 것 같아요. 음식 한 가지에 집중하고 사입 형태, PB 제작 형태로 사업 모델을 바꿔갔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프로세스가 정교하게 짜진 것 같습니다. "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선 윙잇은 '흑자 내는 커머스'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연내에 기존 5개국 이외에 유럽을 포함한 10개국으로 수출국을 늘리는 게 목표다. 홍 CSO는 "긍정적인 시그널이 보이고 있고, 연말쯤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