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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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직장인 A씨는 업무 중 짬짬이 사용하지 않은 기프티콘(모바일 상품권)을 판매한다. 스타트업 더블엔씨가 내놓은 기프티콘 거래 플랫폼 ‘니콘내콘’을 통해서다. 최근 이틀간 편의점 과자,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디저트, 치킨 등 기프티콘 7개를 팔아 8만6000원을 벌었다. 그는 “정가보다 20% 정도 낮은 가격에 팔지만 거래와 환전이 편리해 쏠쏠한 용돈벌이가 되고 있다”며 “꼭 필요한 기프티콘이 있을 때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물가에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체리슈머’를 노리는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으로 알뜰한 소비를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체리피커’와 ‘컨슈머(소비자)’가 합쳐진 단어다. 자기 잇속만 챙기는 부정적 의미의 체리피커와 달리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개인들 기프티콘 거래 급증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기프티콘 거래 플랫폼 니콘내콘의 작년 거래액은 50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46% 증가한 수치다. 니콘내콘 운영사 더블엔씨 관계자는 “물가 상승에 조금이라도 알뜰하게 소비하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매자는 보유한 기프티콘을 정가보다 약간 할인된 가격에 팔 수 있다. 구매자 역시 플랫폼에 등록된 기프티콘을 정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 플랫폼은 매입한 기프티콘에 이윤을 붙여 판매해 수익을 얻는 구조다.

예컨대 BHC의 ‘뿌링클+콜라 1.25L’ 기프티콘은 정가보다 13% 낮은 1만7500원, 스타벅스의 ‘카페 아메리카노 T’ 기프티콘은 14% 낮은 3890원에 올라와 있다. 니콘내콘과 함께 기프티콘 거래 플랫폼 ‘3대장’으로 꼽히는 팔라고와 기프티스타 등도 인기다. 업계에선 이들 3사 플랫폼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를 합치면 5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공구·비교·N빵 서비스 등도

체리슈머를 사로잡는 ‘공동구매’ 플랫폼도 있다. 기존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최저가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표적인 플랫폼이 스타트업 레브잇이 운영하는 ‘올웨이즈’다. 두 명 이상의 이용자가 모여 플랫폼 안에서 팀을 만들거나 지인들끼리 모여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를 통해 중간 유통 마진을 줄여 기존 온라인 소매가 대비 20~60%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올웨이즈의 누적 거래액은 900억원을 넘어섰다. 신선식품 공동구매 플랫폼 ‘사자마켓’, 지역 기반 공동구매 플랫폼 ‘우동공구’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더 똑똑한 소비를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비교해주는 플랫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 모요는 알뜰폰 요금제 비교 플랫폼을 선보였다. 알뜰폰이나 인터넷 요금제를 사용량에 따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모요 관계자는 “알뜰폰 번호이동 가입자의 10%가 모요를 통해 개통한다”고 했다.

렌털형 가전제품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 ‘렌트리’는 판매자의 견적을 취합해 한 번에 제시하는 ‘역경매 방식’을 내세웠다. 출시 1년 만에 거래액 56억원을 넘겼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계정 공유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피클플러스는 ‘4인 파티 매칭’ ‘월 요금 자동 정산’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넷플릭스를 혼자 사용할 경우 한 달에 1만7000원을 내야 하지만,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4250원으로 75% 절약된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1주일간 매칭 인원은 6000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피치그로브가 출시한 ‘링키드’도 비슷한 공동 구독 서비스를 한다.

○체험형 챌린지도 인기

체험을 주제로 하는 챌린지형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소비자가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료로 체험한 뒤 일종의 인증을 남기면 혜택을 주는 식이다. 소비자는 제품을 미리 체험하고 구매 여부를 결정해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기업은 SNS 등을 통한 제품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스타트업 화이트큐브는 챌린지 플랫폼 ‘챌린저스’를 운영하고 있다. 제휴를 맺은 기업의 체험단 마케팅을 돕는다. 예를 들어 동아오츠카는 지난해 음료 ‘데미소다 청포도’를 홍보하기 위해 챌린저스를 활용했다. 소비자가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달고 게시물을 올리게 하는 마케팅 전략을 짰다. 음료 6캔을 제공하고, 2주 동안 여섯 차례 업로드하면 상금과 상품 등 보상을 해주는 구조다. 1000명이 참여해 팔로어 24만 명에게 브랜드가 노출되는 효과를 거뒀다.

챌린저스는 이 같은 기업 간 거래(B2B) 사업 모델 외에도 1만 걸음 걷기, 미라클 모닝(일찍 기상하기) 등의 일반 이용자 대상 서비스를 통해 160만 명 넘는 회원을 확보했다. 이 회사에 투자한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는 “수요자의 ‘가성비 추구 성향’과 공급자(기업)의 ‘체험형 챌린지 요구’는 명확히 커지고 있다”며 “양쪽의 불확실성을 챌린저스가 중간에서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체험형 콘텐츠를 활용해 수요·공급을 중개하는 다른 플랫폼도 있다. 주로 인플루언서 마케팅 스타트업이 많다. 맛집이나 뷰티 브랜드를 연결하는 퀸즈코퍼레이션(디너의여왕·뷰티의여왕 등), 레뷰코퍼레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돈 몰리는 ‘가성비’ 플랫폼

투자업계도 체리슈머를 겨냥한 스타트업에 주목한다. 공동구매 플랫폼 올웨이즈 운영사 레브잇은 지난해 9월 133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는 설립 이후 누적 투자금이 250억원을 넘어섰다. 미래에셋벤처투자, KB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GS벤처스 등이 주요 투자사다. 알뜰폰 요금제 비교 플랫폼 모요엔 40억원이 몰렸고, 체험형 챌린지 플랫폼 챌린저스 운영사 화이트큐브는 6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가성비’를 특징으로 내세운 플랫폼에 투자금이 몰리는 것은 이 같은 소비 성향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7.5%) 후 최고치였다. 벤처캐피털(VC)업계 관계자는 “통상 기업들은 까다로운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이윤이 줄어들지만 스타트업들이 내세운 플랫폼은 ‘전략 소비’를 하는 이용자의 입맛을 맞춰줘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