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똥이 아닙니다"…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치료제' [남정민의 붐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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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핫이슈 ‘마이크로바이옴’
똥도 약(藥)이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똥 안에 있는 ‘미생물’입니다. 단순히 배변 활동이나 체중 감량을 도와주는 건강기능식품 수준이 아닙니다. 우리 장 안의 미생물로 항암제를 만들고, 또 치매 치료제도 개발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미생물의 기능성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 시대입니다. 사람 장 안에는 38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 종류만 많게는 1000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유익균으로 꼽히는 유산균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미생물들이 장 안에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핵심은 ‘균형’입니다. 학계에서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이 깨질 때, 그리고 미생물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사람이 병에 걸린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 질병의 90%가 장내 미생물 생태계 불균형에서 나온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항생제 복용으로 인한 장염입니다. 잘못 먹은 음식이 없는데 장염에 걸렸다면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을 의심해볼만 합니다. 항생제를 너무 많이 복용한 탓에 장내 유익균이 죽어서 생태계가 깨진 사례입니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은 유해균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과도하게 증식하면서 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입니다. 심한 경우 장이 썩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CDI를 고치는 세계 최초의 미생물 기반 ‘알약’이 다음달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오기업 세라스테라퓨틱스가 개발 중인 ‘SER-109’가 그 주인공인데요. 업계에선 “미생물도 과연 약이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물음표들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결정일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라스테라퓨틱스 전에도 스위스의 페링파마슈티컬즈이라는 회사가 미생물 기반 CDI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분변이식(FMT) 방법의 치료제입니다. 클리닉에 가서 직장에 1회 투여하는 방식인데 치료보다는 ‘처치’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세라스테라퓨틱스의 SER-109는 알약이라 보편적인 치료법 테두리에 들어온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장질환뿐만이 아닙니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장내 미생물로 암, 중추신경계 질환(치매 등), 면역질환, 피부질환 등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장내 다양한 미생물들은 암 공격수인 ‘T-세포’를 활성화시킨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미생물 자체로도 약이 되지만 미생물이 체내 세포와 신호전달물질을 주고 받으며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 몸속 유익균들은 면역세포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체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법을 훈련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은 우리 몸 면역세포의 70%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유익균이 적어지면 면역시스템에도 혼동이 와 자가면역질환이 생길 수 있는거죠.
국내 기업들은 아직 임상단계이긴 하지만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제 ‘GEN-001’을 개발 중입니다. 위암과 담도암 등을 적응증으로 하는데 위암 임상 2상 중간결과를 올 상반기 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회사 관계자는 “세부 데이터는 오는 10월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의 자회사 지아이바이옴은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대장암 및 직장암 신약 후보물질 ‘GB-104’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을 승인받았습니다.
미생물 배양 기술, 유전자 분석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장내 균들이 중추신경계 조절, 지방저장 촉진, 면역체계 발달, 비타민 합성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고바이오랩은 ‘KBL697’을 건선 치료제로 개발 중입니다. 현재 미국과 호주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인데 이외 아토피피부염, 과민성 대장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제들도 개발 중입니다.
장과 뇌가 연결돼있다는 ‘장뇌축’ 이론도 세계적으로 '핫'한 연구 주제입니다. 미생물들이 자기들끼리 만들어내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신경계를 자극해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셀트리온은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벤처인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스와 파킨슨병 치료제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선 마이크로바이옴의 미래가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미생물의 기능성도 하나씩 밝혀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그동안 몰랐던 미생물의 기능성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 시대입니다. 사람 장 안에는 38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 종류만 많게는 1000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유익균으로 꼽히는 유산균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미생물들이 장 안에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핵심은 ‘균형’입니다. 학계에서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이 깨질 때, 그리고 미생물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사람이 병에 걸린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 질병의 90%가 장내 미생물 생태계 불균형에서 나온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항생제 복용으로 인한 장염입니다. 잘못 먹은 음식이 없는데 장염에 걸렸다면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을 의심해볼만 합니다. 항생제를 너무 많이 복용한 탓에 장내 유익균이 죽어서 생태계가 깨진 사례입니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은 유해균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과도하게 증식하면서 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입니다. 심한 경우 장이 썩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CDI를 고치는 세계 최초의 미생물 기반 ‘알약’이 다음달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오기업 세라스테라퓨틱스가 개발 중인 ‘SER-109’가 그 주인공인데요. 업계에선 “미생물도 과연 약이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물음표들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결정일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라스테라퓨틱스 전에도 스위스의 페링파마슈티컬즈이라는 회사가 미생물 기반 CDI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분변이식(FMT) 방법의 치료제입니다. 클리닉에 가서 직장에 1회 투여하는 방식인데 치료보다는 ‘처치’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세라스테라퓨틱스의 SER-109는 알약이라 보편적인 치료법 테두리에 들어온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장질환뿐만이 아닙니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장내 미생물로 암, 중추신경계 질환(치매 등), 면역질환, 피부질환 등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장내 다양한 미생물들은 암 공격수인 ‘T-세포’를 활성화시킨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미생물 자체로도 약이 되지만 미생물이 체내 세포와 신호전달물질을 주고 받으며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 몸속 유익균들은 면역세포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체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법을 훈련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은 우리 몸 면역세포의 70%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유익균이 적어지면 면역시스템에도 혼동이 와 자가면역질환이 생길 수 있는거죠.
국내 기업들은 아직 임상단계이긴 하지만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제 ‘GEN-001’을 개발 중입니다. 위암과 담도암 등을 적응증으로 하는데 위암 임상 2상 중간결과를 올 상반기 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회사 관계자는 “세부 데이터는 오는 10월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의 자회사 지아이바이옴은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대장암 및 직장암 신약 후보물질 ‘GB-104’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을 승인받았습니다.
미생물 배양 기술, 유전자 분석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장내 균들이 중추신경계 조절, 지방저장 촉진, 면역체계 발달, 비타민 합성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고바이오랩은 ‘KBL697’을 건선 치료제로 개발 중입니다. 현재 미국과 호주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인데 이외 아토피피부염, 과민성 대장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제들도 개발 중입니다.
장과 뇌가 연결돼있다는 ‘장뇌축’ 이론도 세계적으로 '핫'한 연구 주제입니다. 미생물들이 자기들끼리 만들어내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신경계를 자극해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셀트리온은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벤처인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스와 파킨슨병 치료제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선 마이크로바이옴의 미래가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미생물의 기능성도 하나씩 밝혀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산업 자체가 ‘뉴 모달리티(modality)’다 보니 가능성은 엄청나죠. 지금 밝혀진 미생물이 절반도 안 되는데 벌써 암, 뇌질환과 관련된 치료제까지 개발 중입니다.
규제기관 허들도 하나씩 넘다보면 기존에 고치지 못했던 질병의 수수께끼들을 미생물에서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
-지놈앤컴퍼니 관계자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