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윤여정' 만든 이 남자…'문송합니다' 출신의 창업 스토리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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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조건 3가지
국문학을 전공한 문과생. 학점은 1점대. 첫 직장은 무역회사. 지금은 인공지능(AI) 버추얼 휴먼을 만드는 스타트업 대표. 3번 창업, 10번 이직 끝에 디오비스튜디오를 창업한 오제욱 대표 이야기입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을 멘토링했던 오 대표의 창업기를 한경 긱스(Geeks)가 소개합니다.최근 TV광고에 20대 신인 시절의 배우 윤여정이 등장했다. 진짜 20대 윤여정이 아니라 당시 윤여정의 사진과 영상을 확보해 AI 머신러닝으로 얼굴 데이터를 뽑아낸 '버추얼 휴먼(가상인간)'이다. 70대인 현재 촬영한 윤여정의 얼굴을 디에이징한 후 AI 데이터와 결합해 20대 윤여정의 얼굴을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이 20대 윤여정을 만든 곳은 버추얼 휴먼 전문 스타트업인 디오비스튜디오다. 2020년 설립된 디오비스튜디오는 실제 인물과 견줘도 쉽게 구별이 안 가는 '루이'를 만들어 주목받았다. 버추얼 인어 '아일라', 배우지망생 인플루언서인 '민지오', 세계 최초 AI 비주얼 챗봇 '강다온' 등이 모두 디오비스튜디오가 제작한 버추얼 휴먼이다. 디오비스튜디오를 세운 오제욱 대표는 AI 전공자도, 개발자 출신도 아니다. 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문과생으로 무역회사인 LG상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업종으로 이직만 10번, 창업은 디오비스튜디오가 세번째다. 그 경험을 살려 수백개 스타트업을 심사하고 멘토링하기도 했다. 자신을 모델로 만든 가상인간 부캐 '할많하마'도 있다.
오 대표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테헤란로 커피클럽'에서 창업 스토리를 풀었다. '창업의 조건' 3가지도 함께 제시했다. 창업자에겐 ①자신의 성향 분석 ②꾸준한 연습 ③팀빌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①MBTI가 중요한 이유: 가장 강한 나의 무기는 '나'
오 대표는 "MBTI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방식이다. 어떤 산업에 어떤 포지션으로 들어가야 가장 효율적일지, 어떤 사업모델을 구축해야 가장 신나게 일할 수 있을지 찾아내는 데 좋은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했다.그는 첫 직장인 LG상사에서 이른바 '무거운 사업'을 했다. 신사업 기획을 하면서 동기들보다 연봉 인상률도 높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더 이상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오 대표는 "재미가 없고 뭔가 마음에 안 들고 불만이 자꾸 나왔다. 회사에서 의사결정을 하시는 분들, 부장님 이사님 이런 분들의 판단이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러다보니 상사들과 자꾸 싸우고 내가 이상한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자신에 대해 돌아보면서 MBTI를 접하게 됐다. '대기업보다는 소규모 팀에서 공통된 목표 의식을 가지고 팀웍으로 일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군 복무 시절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는 "당시 TF 팀장으로 성과를 냈고 3개월만에 장관상을 받았다. 그 때의 성취가 딱 떠올랐다. '맞아, 나는 소규모 팀에서 공동의 목표로 달릴 때 잘하는구나.' 그런데 대기업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컨텐츠 회사인 SBS콘텐츠허브로 이직한 것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컨텐츠업이 자신과 잘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컨텐츠가 좋았다. 콘텐츠는 무료로 보는 것 같지만 VOD로 매출이 발생하고 있고 그게 쌓이니까 엄청난 매출로 발전하고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다뤄야하는 골프존 근무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창업을 하는 분들은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장 강한 무기니까요. 내가 가진 무기를 알아야 어떻게 싸울지 알 수 있습니다."
②문과생이 기술기업을?: 모를 땐 공부와 연습
그는 LG상사의 사장 직속 신사업 기획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오 대표는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 '더 하실 말씀이 없냐'는 질문에 손들고 벌떡 일어나서 준비해온 종이를 면접관들에게 나눠드리고 제가 준비한 사업계획을 소개했다"고 했다. 중어중문, 국어국문 전공으로 대학 시절에 경제 경영을 배운적이 없는 지원자의 패기넘치는 제안이었다. "타당성 검토도 안 들어가 있고, 그냥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사업계획서를 짜서 가져갔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회사는 오 대표의 패기를 높게 사 신사업 기획팀으로 발령을 냈다.하지만 몇달 안돼 자신이 얼마나 준비가 안돼있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 이후 계속 사업계획서를 쓰는 연습을 시작했다. 국회도서관에 점심 시간마다 가서 경제 경영 논문을 읽었다. 업무 관련된 결과나 피드백이 나오면 매일 업무일지를 썼다. 오 대표는 "이면지에다가 이런 상황이 있었을 때 이렇게 판단해서 이렇게 처리를 했고 이렇게 아이디어 냈더니 부장님한테 깨졌다는 식의 내용을 다 메모했다. 그 내용을 다 클리어파일에 넣었다. 1년 반쯤 지나니까 클리어 파일이 한 5권 나왔다"고 했다.
골프존에서 신사업을 개발할 때도 공부부터 시작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웹서비스, 마케팅 모두 공부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만들 수가 없었어요. 공부와 연습을 정말 많이 하면서 쌓아갔습니다." AI기술이 필요한 디오비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AI 관련 논문이나 솔루션이 나오면 굉장히 빠르게 리뷰를 하는 영어권 유튜브들이 있다. 유튜브부터 논문까지 꾸준히 공부했다. 이렇게 사업 계획을 계속 반복하고 훈련 받았던 것들이 노련하게 사업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이 됐다. 연습을 이기는 건 없다."고 말했다.
③팀빌딩의 조건: 비전, 신뢰, 실력
팀을 만들 때는 비전과 신뢰, 실력을 중요시한다고 오 대표는 강조했다. "세 가지가 다 맞아야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느냐, 즉 회사를 성장시켜서 우리 개개인이 성장하는 그런 꿈을 함께 꾸느냐, 또 스타트업은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탐험을 하는데 내 등을 맡길 수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잠재력을 포함한 실력. 생성AI는 지금 전문가를 찾기 힘든데 당장의 실력은 모자랄지 모르지만 빠르게 배우고 성장할 만한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방송·애니메이션·웹툰 등 콘텐츠를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 만들었던 회사 티그라운드 동료들과 아직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오 대표는 "티그라운드를 정리하고 디오비스튜디오를 창업할 때 시드머니를 모으느라 고생했다. 사실은 실패한 창업자였고, 아주 어렵게 1억원을 모았다. 티그라운드 동료들에겐 한때 밀린 월급도 못줬는데 이해해주고 새 창업도 도와줬다"고 말했다.현재 디오비스튜디오의 직원은 44명. 오 대표는 "비전과 신뢰, 실력을 기준으로 한분 한분 어렵게 모신 우리 팀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만큼 높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