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Theogon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계보를 1000여행의 짤막한 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일종의 족보문학이다. 이 책은 최고의 신 제우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제치고 최고 권좌의 지위에 오른 스토리를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전한다.

제우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부인 레아와의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날 때 마다 속속 ‘잡아 먹었다’고 한다.“위대한 크로노스는 아이들이 어머니의 신성한 자궁에서 그녀의 무릎에 이르는 족족 집어 삼켰으니,…자기 말고 다른 자는 어느 누구도 불사신들 사이에서 왕의 명예를 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비록 강력하지만 제 자식에게 제압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게 『신통기』가 전하는 크로노스의 엽기 행각의 이유였다.

하지만 자식을 모두 잃은 레아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고” 결국 크로노스 몰레 제우스를 낳게 된다. 레아는 제우스 대신 큰 돌덩이 하나를 포대기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줬고, 크로노스는 그것을 두손으로 잡고 비정하게도 자신의 뱃속에 집어넣었다. 결국 아버지 몰래 장성한 제우스에게 크로노스는 패하게 되고 자기 자식들을 도로 게워내게 됐다.

이처럼 위대한 신들의 계보학에 등장하는 초기 주인공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엽기행각이 신화에 포함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학자들이 머리를 싸메고 고민했다고 한다. 철학자 김용석 박사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 로마시대 이래 크로노스가 ‘시간’을 상징하는 신이었음에 주목한 해석들이 먼저 제기됐다고 한다.

오비디우스가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tempus edax rerum)”라고 말한 것처럼 자식을 잡아먹는 잔인성은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시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도 크로노스(Kronos)가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크로노스(Chronos)와 발음상 유사점을 들어 ‘시간앞에 장사없고’,‘모든 만물은 결국 죽는다’는 시간의 ‘죽임행위’를 크로노스의 ‘먹어치움’을 이해하는 핵심요소로 봤다고 한다.

자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중세 이후부턴) 머리에서부터 검은 망토를 쓰고 손에 큰 낫을 든 것으로 묘사됐던 크로노스는 이런 이유에서 시간의 신이자 자연스레 파괴와 창조의 신의 대접도 받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나처럼 무식한 사람이 이해하긴 좀 어려운 책을 쓰신) 김용석 박사는 이같은 해석이 크로노스가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불사의 신인 크로노스는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불멸의 신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실제 『신통기』에서도 크로노스가 레아가 낳은 아이들을 집어삼킬 때 “자손들 말고 다른자는 어느 누구도 불사신들 사이에서 왕의 명예를 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분명히 신의 불명성을 서술했다는 점을 지목한다.

결국 이같은 죽지 않는다는 신의 특성을 고려할 때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잡아먹은 것은 “아예 사건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한마디로 크로노스는 사건을 일으켜 이야기를 이뤄갈 수 있는 서사의 주체를 집어삼켜 버렸다는 분석이다.쉽게 풀면 크로노스는 ‘이야기를 독점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자식들을 모두 집어삼킴으로써 자기 대(代)에서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겠다는 게 크로노스의 의도였던 것이다.그렇다면 크로노스는 왜 다른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꺼렸던 것일까?그것은 바로 크로노스가 자신의 이야기로 영원한 삶을 채우기를 바랬기 때문이라고 한다.크로노스는 신화의 독점을 꾀했고, ‘감독,연출,각본,주연,엑스트라’모두 크로노스만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기를 원했던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신화속 스토리는 “권력을 가진자가 세대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담고 있는 게 된다. 이같은 해석에 따르면 크로노스는 오래살기 위해 세대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이야기로만 세상을 가득 채우고 싶었던 ‘욕심쟁이’였던 셈이다.

때로 이런 저런 사람들과 만나고, 접촉하다보면 유독 귀는 닫은 채 자신의 얘기만 쉴새 없이 하는 사람을 만날 경우가 있다.(개인적으로는 몇시간 동안 여러 사람 모아놓고 자기 얘기만 쉴 새 없이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이런 경우와 관련해서 그리스 신화는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얘기만 일방적으로 내뱉는 행위의 엽기적인 측면과 그같은 행위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한 책>

헤시오도스, 신통기, 천병희 옮김, 한길사 2004
김용석, 메두사의 시선, 푸른숲 2010
코우즈 하루시게, 그리이스 로마의 고전문학, 이재호 옮김, 탐구당 1992
Gustav Schwab, Sagen des klassischen Altertums, Insel Verlag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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