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도로,사람과 건물 사이에 일관된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도시인에게는 늘 접하는 평범한 풍경이지만 렌즈로 면밀히 관찰하다보면 생소한 느낌을 받거든요. 책에서 봤던 에펠탑이나 중국의 자금성을 실제 맞닥뜨렸을 때 묘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죠."

서울 청담동 표갤러리 강남점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사진 작가 노세환씨(32)는 도시의 일상에서 생명력을 포착해 일기를 쓰듯 스토리를 기록하는 작가다. '소나무 작가' 배병우씨에게 사진을 배운 그는 중앙미술대전 작가상,송은미술상을 받으면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년에는 스튜디오를 런던으로 옮겨 런던대 스레이드 미술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도시인들에게 바쁜 일상은 단편적인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그들이 지나치듯 바라보는 순간들은 태양광선을 통해 되살아납니다. 사진 작가를 '빛의 노동자'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겁니다. 햇살이 런던 거리를 덮으면 묘한 영기 같은 게 느껴져요. 도심 건물에 태양이 내리쬐면 도시가 마치 원시림 같아 행복감마저 느낍니다. "

그의 시선은 도시의 모든 장면에 닿는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도로 풍경,어두운 밤 도심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불빛 궤적,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렌즈로 잡아낸다. 최근에는 도시인들이 매일 접하는 채소,계란,자동차,커피 등 생활용품을 찍어 특별한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다.

"주로 도시의 건물 숲 사이로 흐르는 생동감을 찍었어요. 요즘엔 런던의 도심을 떠돌고 있죠.일기를 쓰듯 소소한 내면의 감정과 기억들을 끄집어 내 종이에 옮기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

사진 작업에 이야기를 담은 '스토리텔링 사진'(일명 스토리 포토)을 시도한다는 얘기다. 그의 작품들은 도시인들의 잔잔한 공감을 자아낸다. 설탕이 흰눈처럼 뿌려진 이층버스 축소모형,사과와 설탕,식빵과 커피잔을 찍은 '크리스마스에 사과 잼 만들기'(사진)는 성탄 전날 직접 만든 사과 잼을 식빵에 발라 커피를 곁들였던 소박한 성탄 만찬의 기억을 보여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믹스커피를 그냥 마실 순 없다'작품 역시 평범한 커피에 세련된 수공의 노력을 들여 각별한 가치를 부여한 작품이다.

작가는 "커피나 이층버스,자동차와 같은 사물에는 평소 의식하지 못한 색다른 가치가 있는 것 같다"며 "도시 안의 모든 대상을 살아 숨쉬고,요동치고,흐르는 것처럼 되살려내고 싶다"고 말했다. 2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런던에서 작업한 신작 24점을 만날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