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뒤집어 읽기] 창고엔 식량 남아도는데…3억명 굶주리는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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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혁명으로 빈곤 탈출?
1964년 대기근 이후 '녹색혁명' 매진
40년간 인구 2배·식량생산 2.5배 늘어
빈곤층 혜택 못받고 농약·비료 오염만
1964년 대기근 이후 '녹색혁명' 매진
40년간 인구 2배·식량생산 2.5배 늘어
빈곤층 혜택 못받고 농약·비료 오염만
인도는 정말로 특별한 나라다. 20세기 중반,한 세대 만에 기적 같은 농업 혁신을 이루어 한때 외국에 곡물을 수출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청난 기근에 시달렸다. 이 나라에서는 현재도 11억 여명 중 3억명이 굶주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도는 늘 기근 문제에 시달렸다. 그 이유는 식량 생산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다. 사실 식량 생산 총량으로 보면 모든 인도인이 충분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빈곤층의 식량 구매력이 부족해서 이 사람들에게 식량이 돌아가지 못하고 수천만t의 식량이 창고에 쌓인 채 썩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의 기근 문제는 농학적인 문제 이전에 정치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이후 인도는 식량 증산을 국가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그렇지만 인구 증가율이 너무 높아 기근과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64~1965년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네루가 사망하고 파키스탄과 전쟁에 들어가는 동시에 몬순(인도양의 계절풍)이 순조롭지 못해 식량 생산이 20%나 감소한 것이다.
사회적 불균형이 극히 심한 비하르주에서는 10만명이 아사했다. 인도 정부는 급히 1000만t의 쌀과 밀을 수입해 위기를 넘겼다. 그러고 나서 그해부터 전력을 다해 '녹색혁명' 사업에 매진했다.
녹색혁명은 농학과 경제학 두 측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선은 벼와 밀의 생산 증대를 위해 멕시코와 필리핀의 농업연구소에서 선진 농학자들이 개발한 기적의 종자들을 도입했다. 다행히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다. 이렇게 증가한 곡물 수확을 선용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도 펼쳤다. '인도식량법인(Food Corporation of India)'을 설치해 식량의 구매 · 운송 · 보관 · 분배를 관리했다. '공공분배 시스템(Public Distribution System)'이라는 기구를 통해 1억6000만가구,곧 전체 인도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지원했다.
처음에 이런 정책은 위험을 감수하며 고수확 품종을 실험해볼 수 있는 중농층 이상에게만 유리해 오히려 농민 간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는 비판을 받았지만,중장기적으로 농업 생산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1960년부터 2000년까지 40년 만에 밀과 벼 생산량은 8000만t에서 2억900만t으로 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인구는 2배 증가했으므로 전체적으로 식량 사정은 크게 나아졌다.
녹색혁명은 또 다른 혁명들을 동반했다.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하던 메마른 땅에 땅콩,콩,유채,해바라기,아주까리 같은 유지작물(油脂作物 · 기름을 짜기 위해 기르는 농산물)이나 면화 등을 재배해 수익을 개선시킨 '황색혁명',축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1위 우유 생산국이 된 '백색혁명'도 일어났다.
이런 성과는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농업상의 성과가 인도의 빈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회적,환경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거나 혹은 새로 생겨난 것이다. 인도 인구의 3분의 1은 여전히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하는 상태다. 이들은 생산성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 건조지역 주민이거나,경제 발전에서 배제된 하층민들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사정이 더욱 악화했다. 강경한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 각종 보조금 혜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빈곤층의 식량 구입,비료와 종자 구입 보조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정책에 의존한 인도 농업은 그동안 이룩한 성과를 많이 잃어버리고 생산이 급감했다. 그러는 동안 환경 문제도 심각해졌다. 펀자브 같은 곡창지대의 토양에는 비료와 농약 성분이 깊이 스며들어갔고,무리한 관개 방식을 지속하다 보니 세계 최악의 염분화 현상(지하수의 수위가 높아질 때 모세관 현상 때문에 염분기가 지표면에 올라와 쌓임으로써 지력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진행됐다. 국가의 개입이 약해지자 물 관리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농업이 피폐해지자 농민들의 자살이 속출했다. 외국 기업의 국내 진입으로 식용유 제조와 같은 기존 농업 연관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이런 가운데에도 인구는 관성적으로 계속 증가했다. 연 2%의 성장률을 지속하면 35년마다 인구가 2배로 늘어난다. 2025년에는 인도 인구가 15억명이 돼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결국 인도에 사상 최악의 기근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은 새로운 차원의 농업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 생산력이 높은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초녹색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다른 한편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환경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이중 녹색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 유전공학 발전에 힘입어 빈민들의 영양 문제를 해결해주는 종자 개발도 진행 중이다. 아미노산을 강화한 감자,철분을 비롯한 필수영양소들을 두루 갖춘 '황금 벼(golden rice)' 같은 것들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으로 과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3세계의 빈곤 문제는 과학기술에 의존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문제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 여전히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인구 구조가 지속되고,공평치 못한 분배 결과 대량의 곡물이 창고에 쌓여 있는데도 사람들이 굶는 상황인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과학기술의 힘과 정치적 개선이 병행돼야만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역사적으로 인도는 늘 기근 문제에 시달렸다. 그 이유는 식량 생산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다. 사실 식량 생산 총량으로 보면 모든 인도인이 충분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빈곤층의 식량 구매력이 부족해서 이 사람들에게 식량이 돌아가지 못하고 수천만t의 식량이 창고에 쌓인 채 썩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의 기근 문제는 농학적인 문제 이전에 정치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이후 인도는 식량 증산을 국가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그렇지만 인구 증가율이 너무 높아 기근과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64~1965년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네루가 사망하고 파키스탄과 전쟁에 들어가는 동시에 몬순(인도양의 계절풍)이 순조롭지 못해 식량 생산이 20%나 감소한 것이다.
사회적 불균형이 극히 심한 비하르주에서는 10만명이 아사했다. 인도 정부는 급히 1000만t의 쌀과 밀을 수입해 위기를 넘겼다. 그러고 나서 그해부터 전력을 다해 '녹색혁명' 사업에 매진했다.
녹색혁명은 농학과 경제학 두 측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선은 벼와 밀의 생산 증대를 위해 멕시코와 필리핀의 농업연구소에서 선진 농학자들이 개발한 기적의 종자들을 도입했다. 다행히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다. 이렇게 증가한 곡물 수확을 선용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도 펼쳤다. '인도식량법인(Food Corporation of India)'을 설치해 식량의 구매 · 운송 · 보관 · 분배를 관리했다. '공공분배 시스템(Public Distribution System)'이라는 기구를 통해 1억6000만가구,곧 전체 인도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지원했다.
처음에 이런 정책은 위험을 감수하며 고수확 품종을 실험해볼 수 있는 중농층 이상에게만 유리해 오히려 농민 간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는 비판을 받았지만,중장기적으로 농업 생산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1960년부터 2000년까지 40년 만에 밀과 벼 생산량은 8000만t에서 2억900만t으로 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인구는 2배 증가했으므로 전체적으로 식량 사정은 크게 나아졌다.
녹색혁명은 또 다른 혁명들을 동반했다.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하던 메마른 땅에 땅콩,콩,유채,해바라기,아주까리 같은 유지작물(油脂作物 · 기름을 짜기 위해 기르는 농산물)이나 면화 등을 재배해 수익을 개선시킨 '황색혁명',축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1위 우유 생산국이 된 '백색혁명'도 일어났다.
이런 성과는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농업상의 성과가 인도의 빈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회적,환경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거나 혹은 새로 생겨난 것이다. 인도 인구의 3분의 1은 여전히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하는 상태다. 이들은 생산성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 건조지역 주민이거나,경제 발전에서 배제된 하층민들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사정이 더욱 악화했다. 강경한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 각종 보조금 혜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빈곤층의 식량 구입,비료와 종자 구입 보조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정책에 의존한 인도 농업은 그동안 이룩한 성과를 많이 잃어버리고 생산이 급감했다. 그러는 동안 환경 문제도 심각해졌다. 펀자브 같은 곡창지대의 토양에는 비료와 농약 성분이 깊이 스며들어갔고,무리한 관개 방식을 지속하다 보니 세계 최악의 염분화 현상(지하수의 수위가 높아질 때 모세관 현상 때문에 염분기가 지표면에 올라와 쌓임으로써 지력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진행됐다. 국가의 개입이 약해지자 물 관리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농업이 피폐해지자 농민들의 자살이 속출했다. 외국 기업의 국내 진입으로 식용유 제조와 같은 기존 농업 연관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이런 가운데에도 인구는 관성적으로 계속 증가했다. 연 2%의 성장률을 지속하면 35년마다 인구가 2배로 늘어난다. 2025년에는 인도 인구가 15억명이 돼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결국 인도에 사상 최악의 기근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은 새로운 차원의 농업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 생산력이 높은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초녹색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다른 한편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환경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이중 녹색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 유전공학 발전에 힘입어 빈민들의 영양 문제를 해결해주는 종자 개발도 진행 중이다. 아미노산을 강화한 감자,철분을 비롯한 필수영양소들을 두루 갖춘 '황금 벼(golden rice)' 같은 것들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으로 과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3세계의 빈곤 문제는 과학기술에 의존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문제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 여전히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인구 구조가 지속되고,공평치 못한 분배 결과 대량의 곡물이 창고에 쌓여 있는데도 사람들이 굶는 상황인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과학기술의 힘과 정치적 개선이 병행돼야만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