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에 전시된 로니 혼의 ‘유 아 더 웨더, 2부’. 정석범 기자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로니 혼의 ‘유 아 더 웨더, 2부’. 정석범 기자
드럼통 모양의 유리 주조 조각 작품 6개가 전시장 안에 듬성듬성 놓여 있다. 대체 뭘까. 안을 들여다봐도 녹색 톤의 투명한 바닥뿐이다. 그런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여다보자 놀랍게도 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이미지가 피어오른다. 지난여름에 본 바다 풍경이 떠오르고, 창밖의 푸른 하늘이 스쳐 지나간다. 미국의 세계적인 작가 로니 혼의 ‘무제’라는 작품이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6월22일까지 열리는 로니 혼의 개인전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같은 모티프의 반복, 최소한의 묘사로 싱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상은 작가의 미술세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혼의 관심은 요란한 시각적 조형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는 가운데 만들어내는 시적인 아름다움에 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스무 살 때 방문한 아이슬란드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는 그곳의 변덕스러운 일기에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환경이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자연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인간의 초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 아 더 웨더, 2부(You are the Weather, Part 2)’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물질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아이슬란드의 온천과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한 여성의 얼굴을 촬영한 100장의 사진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짧은 시간 동안 얼굴에 나타나는 미묘한 표정과 심리 변화를 포착했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아이슬란드 기후와도 닮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미지들이 관객 눈높이에 맞춰 전시장 사방을 메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자신을 관음증적으로 바라보는 한 여인의 시선에 휩싸인다. 그 속에서 관객은 예기치 못한 당혹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만의 내면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유리 주조 조각 역시 마찬가지다. 드럼통 모양의 형태감은 인위적인 인간의 손길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은 뜻밖에도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02)735-844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