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의 부

요하이 벤클러 지음 / 최은창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 876쪽 / 2만9000원
[책마을] 네트워크로 무장한 개인들,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지구상의 모든 책을 모으라”는 지시를 내려 짓기 시작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공사에는 무수한 인력이 동원됐다. 도서관에는 양피지 두루마리 70만권이 들어찼다. 완공 이후에도 수만명의 필경사가 상주하며 쉴 틈 없이 책을 베껴야 했던 이유다. 오늘날 세계 최대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가상 공간에 구현돼 대규모 공사가 필요 없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정보를 덧붙이고 수정할 수 있으며 그 분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은 경제 구조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대규모 물질적 자본 없이는 시도할 수 없던 다양한 생산 방식이 출현하고 자리 잡기 시작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강력한 대체재가 된 위키피디아뿐이 아니다. 450만여명이 넘는 일반인이 개인 PC와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외계 전파를 분석하는 ‘세티앳홈(SETI@home)’, 리눅스 등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보급은 탈중심화한 비(非)시장 생산 패턴이 전 분야에 걸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마을] 네트워크로 무장한 개인들,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네트워크의 부》에서 공유와 협업을 통해 정보와 문화, 지식을 생산하는 네트워크 정보경제의 도래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저자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통신 규제 등 정보기술(IT)이 발전함에 따라 등장하는 새로운 이슈를 꾸준히 좇아온 법학자다. 영문 초판이 2006년 발행된 이 책은 경제학과 정치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하는 인터넷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파고든다는 평가(브루스 애커먼 예일대 로스쿨 교수)를 받으며 디지털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위키피디아에 정보를 올리는 개인은 특별히 누군가를 위해 수고한다고 의식하지 않는다. 정보를 생산하라고 독촉하는 사람도 없다. 정보를 올리는 개인은 서로 모르지만, 분산된 노력이 빚어낸 결과는 하나로 통합돼 의미있는 정보재가 된다. 네트워크 정보경제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동료 생산’ 방식이다. 벤클러 교수가 처음 만들어낸 이 말은 상사가 지시한 작업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개개인의 행동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내적 동기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이지만 방대한 성과를 쌓아올릴 수 있다.

모두가 이 같은 네트워크 정보경제 시대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한군데 모인 비대칭 정보를 기반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기존 권력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세계적으로 통신사업자들과 콘텐츠 사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망 중립성 이슈가 대표적이다. 인터넷을 전기나 수돗물처럼 공공재로 여길 것이냐(콘텐츠 사업자), 투자가 필요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콘텐츠에 따라 돈을 더 받을 것이냐(통신사업자)에 대해 1980년대부터 열띤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벤클러 교수는 제도적 생태계가 바뀌어야 진정한 네트워크 정보경제로의 전환이 온다고 주장한다. 네트워크 정보경제를 통해 인터넷 시대의 미래가 밝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저자의 낙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소유권을 강화하는 법과 규제를 철폐하고, 동료 생산에 참여하는 개인의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기존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정보경제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바벨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기존 제도를 활용할 필요는 없다고 역설한다. 자율성을 제한하는 지식재산권 강화 대신 네트워크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다양한 필터링 시스템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연방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뉴욕대와 예일대 로스쿨 교수를 지냈다.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와 점심 내기를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유리 감옥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등의 저자인 카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제시하는 미래의 부정적인 단면을 조명해왔다. 돈을 내는 시스템(카)과 자발성에 의존하는 시스템(벤클러) 가운데 어느 것이 인터넷에서 더 효율적인지를 두고 벌인 이 내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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