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 타운', 배꼽 잡는 '레 미제라블' 패러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명장면 중 하나는 1막 후반부에 나오는 ‘삼각 대형 행진’이다. 장발장의 ‘원데이 모어’ 선창으로 시작하는 이 장면은 민중 봉기 전야를 역동적으로 묘사한다. 무대 중앙에는 혁명 대장 앙졸라를 꼭지점으로 학생과 민중이 하나둘씩 합류해 삼각 대형을 이룬다. 이들은 왼발로 시작되는 ‘4박 제자리 팔자 걸음’ 스텝을 함께 밟으며 결의를 다진다. 이와 함께 무대 곳곳에 주요 인물들이 모두 등장해 각자의 내일을 노래하며 웅장한 하모니를 빚어낸다.

서울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유린 타운’의 1막 끝부분은 뮤지컬 사상 최고의 ‘1막 피날레’로 꼽히는 이 장면을 고스란히 흉내 낸다. ‘오줌 마을’에 사는 빈민들은 주인공 바비 스트롱을 꼭짓점으로 삼각 대형으로 서서 ‘제자리 팔자 걸음’ 스텝을 밟는다. ‘오줌 눌 권리’를 되찾기 위해 들고일어선 것이다.

극중 해설자인 록스타 순경이 예고한 것처럼 모든 출연자들이 끼어들어 한마디씩 거든다. ‘레 미제라블’에선 가슴을 뛰게 하는 벅찬 감동을 주는 장면인데 여기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리틀 샐리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붉은 깃발을 흔들며 봉기 장면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이룰 때 일부 관객은 자지러진다.

이 정도면 패러디도 예술이다. 서사 구조와 이야기 구성부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본떴다.대사와 가사, 춤, 음악, 장면 연출 등에 ‘햄릿’‘로미오와 줄리엣’,영화 ‘시스터액트’ 등 어디선가 보고 들은 듯한 패러디가 쉴새없이 이어지며 웃음을 유발한다. 이런 웃음들은 헛헛하게 흩어지지 않는다. 잘짜인 극본과 연출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어 가상의 ‘오줌 마을’을 배경으로 한 강도높은 세태풍자 우화극을 완성한다. 2002년 미국 토니상에서 연출·극본·작곡상을 받은 작품으로 패러디 풍자 희극의 교본으로 삼을 만하다.

비극보다 희극 연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최정원 이경미 성기윤 이동근 김대종 등 베테랑 배우들과 김승대 아이비 최소연 등 젊은 배우들이 코믹 연기와 군무를 뻔뻔하고 천연덕스럽게 해낸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이끄는 7인조 밴드의 훌륭한 연주에 맞춰 고난도의 넘버(삽입곡)들도 무난하게 소화한다. 미국 브로드웨이 예술가들의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창작물이 한국 최고 수준의 배우들과 밴드의 멋진 퍼포먼스로 완성도 높게 구현되는 무대다.

커튼콜이 끝난 후 바로 일어나지 말고 밴드의 마무리 연주까지 감상하면 극적 여운이 길게 남을 법하다. 객석 양쪽 모니터에 비치는 김문정 감독의 열정과 생동감 넘치는 피아노 연주와 지휘 모습을 보면서 들으면 더 좋다. 오는 8월2일까지, 4만~10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