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가 된 지우펀의 아메이차주관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가 된 지우펀의 아메이차주관
일본과의 경제전쟁 이후 타이베이는 각광받는 대체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과 거리도 가깝고 면적에 비해 볼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동북부에 있는 관광지인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예스진지)은 소도시이면서도 특색이 뚜렷해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버스 투어가 활발하지 않던 때도 전 세계에서 온 타이베이 여행자들은 예류를 포함한 동북부 여행을 즐겼다. 예류의 바위를 보고, 스펀에서 천등을 날리기 위해 버스와 기차에 몸을 구겨 넣었다. 지우펀의 불 켜진 홍등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떠밀고 사람들에게 떠밀렸다. 예나 지금이나 인기 만점인 예스진지를 다시 찾았다. 어찌 된 일인지 쉴 새 없이 들리던 중국어가 잠잠하다.

내년 1월 11일에는 대만 총통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민진당은 차이잉원 현 총통을, 국민당은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후보로 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1일부터 중국인의 대만 여행을 자제시키고 있다. 선거 운동 기간 ‘하나의 중국’에 반대하는 민진당 정부에 상처를 주려는 의도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미어터질 것 같던 예스진지가 한결 한산하다. 짧은 시간에 핵심 볼거리를 섭렵할 수 있는 예스진지 버스투어를 따라 가을 타이베이 여행을 떠나보자.

기묘한 암석이 만든 환상 풍경 예류

예류 여왕바위
예류 여왕바위
시먼과 타이베이역에서 출발해 버스로 1시간. 짧다면 짧은 거리를 달려 도착한 예류에는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를 지나 걸으면 바다를 마주한 곶이 나오고, 여기에는 기기묘묘한 형태의 바위들이 줄을 잇는다. 멀고 먼 옛날, 한 덩어리였을 이 바위들은 바람과 파도라는 기나긴 세월을 온몸으로 맞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예류 지질공원 입구에서 곶의 끝까지는 약 1.7㎞. 곶 사이의 너비는 300m가 채 되지 않는다. 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규모다. 곶에는 외계의 행성에서 뚝 떨어졌다고 해도 믿을 만한 기묘한 형태의 암석이 가득하다.

가장 많은 것은 180여 개의 버섯바위. 동그란 갓에 잘 빠진 몸통이 송이버섯을 닮았다. 버섯바위의 틈으로 길을 이으면 기암괴석이 이룬 숲에 온 듯한 기묘한 착각이 든다. 버섯바위는 바위 층의 균열이 해수의 침식을 받아 세월을 보내고, 사암 중의 단단한 부분만 점차 노출되며 형성됐다. 세월을 품은 바람 또한 버섯바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여왕의 머리라 불리는 뉘왕터우(女王頭)는 버섯바위이자 예류를 대표하는 바위다. 왕관을 쓴 가녀린 목의 여왕은 기품 있는 매력을 발한다. 예류를 찾은 여행자들은 여왕바위로 난 데크에 줄을 서서 기다려 기념사진을 남긴다.
스펀의 선로는 광물 운송을 위해 설치됐고 선로를 따라 촌락이 형성됐다.
스펀의 선로는 광물 운송을 위해 설치됐고 선로를 따라 촌락이 형성됐다.
예류 지질공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입구를 기준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제1 구역에는 버섯바위, 생강바위가 밀집돼 있다. 촛대바위와 아이스크림바위도 이곳에 자리했다. 제2 구역에도 역시 버섯바위와 생강바위가 주를 이룬다. 여왕의 머리가 이곳에 자리하며 해변 쪽에는 코끼리바위, 선녀신발바위라 불리는 특이한 형태의 바위가 있다. 제3 구역은 해식대다. 예류 지질공원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 보호구역으로 손꼽히지만 버섯바위처럼 눈길을 끄는 바위가 적은 터라 여행자들의 관심은 덜하다. 땅에 박힌 화석도 볼거리다. 언제 묻혔을지 모를 갖가지 조개들이 제 모습 그대로 바위에 박혀 있다.

핑시선 타고 스펀 천등 축제 속으로

다양한 소원을 써놓은 천등을 날리는 관광객
다양한 소원을 써놓은 천등을 날리는 관광객
버스는 사람들을 스펀으로 데리고 간다. 스펀은 1921년 지룽허구(基隆河谷)에 광업이 발달하며 조성된 핑시선(平溪線)의 역 중 하나다. 선로는 광물의 운송을 위해 골짜기와 하천을 따라 설치됐고, 선로를 따라 생겨난 역에는 촌락이 형성됐다.

‘스펀의 작은 집’이라는 뜻의 스펀랴오(十分寮)로도 알려진 이곳. 스펀역에 서면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된다. 스펀역은 핑시선의 역 중에서 유일하게 복선 선로를 지닌 최대 규모의 역이다. 역 주변 스펀라오제에 자리한 집과 상점들은 역을 동경이라도 하듯 선로 가까이에 붙어 있다. 아슬아슬하게 집과 상점을 피해 선로를 달리는 기차 소리가 집 밖처럼 집 안에서도 똑같이 들릴 것만 같다. 집과 선로의 거리만큼 스펀에 터를 일군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활은 기차와 떼려야 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다.

버스와 기차가 토해낸 여행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철길 옆 천등 가게로 향한다. 매년 음력 정월 15일, 핑시선의 스펀과 핑시, 징퉁 일대에서는 천등 축제가 열린다. 건강과 사랑, 재물 등 각자의 소원을 적은 천등이 밤하늘을 날면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진다. 축제의 장관을 재현하기는 역부족이지만 스펀의 하늘은 1년 내내 천등이 수놓는다. 스펀라오제에서 파는 천등에 파도처럼 밀려온 여행자들은 소원을 적는다. 건강과 사랑 그리고 ‘로또 당첨(win the lottery)’. 국적은 달라도 소원은 같다. 천등의 가격은 단색이 150대만달러(약 5748원), 컬러가 200대만달러(약 7664원)다. 여러 명이 더불어 천등 하나를 날리는 걸 고려하면 정말 싸다. 천등 가게의 직원들은 소원을 적은 천등의 사면을 돌려가며 일일이 사진을 찍어준다.

박물관으로 거듭난 폐광촌 진과스

대만 최고의 일본식 목조건물인 타이쯔빈관
대만 최고의 일본식 목조건물인 타이쯔빈관
진과스는 지우펀과 더불어 대만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금광촌이다. 대만금속광업공사가 철수해 폐광으로 남은 이곳을 대만 정부는 황금박물원구(黃金博物園區)라는 현대적인 전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산책하듯 천천히 건축물을 감상하고, 광차가 지나던 철로를 걷자 과거에 놓인 듯한 착각이 든다.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타이쯔빈관(太子賓館)과 황금박물관이다. 대만 최고(最古)의 일본식 목조 건물인 타이쯔빈관은 일본 태자의 대만 방문에 맞춰 건립됐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나무와 삼나무로 고급스럽게 지었는데 정작 태자는 이곳을 찾지 않았다. 황금박물관은 박물원구의 가장 마지막 코스이자 가장 인기 있는 전시관이다. 인기의 비결은 금괴. 전시관 2층에는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금괴가 놓여 있다.

인파 가득한 홍등 거리 지우펀

금괴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진과스의 황금박물관
금괴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진과스의 황금박물관
대만 북동쪽에 자리한 산촌, 지우펀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육지에 길이 나기 전인 옛날 옛적, 이 마을은 육지는 육지로되 바다를 통해서만 다른 지역과 소통이 가능하던 오지 중 오지였다. 당시 지우펀의 가구 수는 아홉. 육지에 이르는 길이 없으니 육지에서 물건을 배로 날라야 했는데, 아홉 가구의 주민들은 물건을 사서 사이좋게 아홉 등분으로 나눴다. 지우펀(九) 즉 ‘아홉으로 나눈다’는 마을 이름의 유래다. 아홉 가구의 작은 마을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마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골드러시를 겪으며 4000여 가구의 거대한 마을로 성장한 지우펀은 ‘금의 도시’ 혹은 ‘작은 상하이’ ‘작은 홍콩’ 등으로 불리며 호황을 맞는다. 지우펀라오제(九彬老街)는 그렇게 탄생했다.

대만에는 라오제(老街)라 불리는 옛 거리가 많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금광촌과 탄광촌의 상가로 조성된 거리다. 라오제의 고샅길을 따라서는 식당과 술집, 극장 등이 들어섰다. 광부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함이었다. 광부가 교사보다 수십 배의 임금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우펀라오제는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오제다. 밤이 되면 일본 나막신 게다를 신고 지우펀라오제를 활보하던 광부들의 자리를 지금은 여행자가 채우고 있다. 특히 분주한 시간은 일몰 무렵이다. 아메이(阿妹) 찻집의 홍등에 불이 들어온 풍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몸을 부대끼며 라오제를 걷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장소다.

타이베이=이진경 여행작가 jingy21@hanmail.net

여행정보

예스진지 버스투어는 대중교통으로는 하루에 보기 힘든 볼거리를 하루 만에 돌아볼 수 있어 인기다. 저렴한 가격은 덤.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차례대로 방문하는 버스투어가 기본 프로그램이며 스펀 폭포 혹은 고양이 마을 허우퉁을 포함한 프로그램이 있다. 와그, 클룩 등 여행 액티비티 플랫폼에서 손쉽게 예약할 수 있다. 식사 및 예류 입장료 80대만달러(약 3065원), 진과스 황금박물관 입장료 80대만달러는 불포함.

대만의 먹거리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스펀의 닭날개 구이는 버스 투어에서도 반드시 챙기는 인기 먹거리다. 스펀역 바로 앞에 있는 원조집의 닭날개 구이가 한국인 입맛에는 제격이다. 여러 재료를 넣은 닭 날개를 그릴에 구운 요리로 ‘김치 초두부 맛’과 ‘볶음밥 맛’이 있다. 진과스의 광부도시락도 인기있는 먹거리다. 갱에 들어가는 광부가 챙겼을 법한 비주얼의 도시락이자 진과스의 명물이다. 도시락을 시키면 도시락통과 도시락을 싸는 보자기, 젓가락까지 통째로 준다. 대만식 돼지갈비 덮밥과 음료로 구성되며, 도시락통이 포함되지 않은 도시락은 ‘대만 돼지갈비 밥’으로 판매한다.

후식으로는 지우펀의 땅콩 아이스크림이 인기 있다. 둥근 밀전병에 커다란 땅콩엿을 대패로 갈아 넣고 아이스크림을 얹어 만든다. 샹차이는 입맛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스펀에도 땅콩 아이스크림을 파는 집이 몇 군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