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관점에서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꽃과 나비에게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일상이자 분투의 현장이다.
꽃도 나비도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자 화려한 꽃을 피우고 날갯짓하지 않는다.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문성식 개인전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은 이러한 자연 섭리를 드러낸다.
멀찌감치 떨어져 전시장 벽면을 채운 그림을 보면 매혹적인 장미가 시선을 사로잡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시 출발점이 된 장미 연작 제목은 '그냥 삶'이다.
문성식은 장미 넝쿨이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꽃, 새, 벌레가 저마다 본성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임을 직시한다.
작가는 꽃에 매혹돼 직접 장미를 길렀다.
나비와 벌레, 새들이 찾아왔고 그 속에서 작가는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닌 세상을 봤다.
작가는 꽃을 식물의 '성기'라고 표현했다.
장미는 번식을 위해 꽃을 벌린다.
벌레는 나뭇잎을 갉아 먹고, 나비도 먹이를 찾아 꽃밭을 뒤진다.
하나의 작은 정글인 셈이다.
그림은 아름다움과 추함,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을 환기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장미 그림은 내가 생각하는 세계의 축소판"이라며 "모두 자기 욕망대로, 자기 의지대로 사는 상태"라고 말했다.
4년 만의 개인전에서 작가는 '그냥 삶' 연작을 비롯한 다양한 신작을 선보인다.
전체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끌림이다.
사람이나 곤충이 꽃에 이끌리는 근원적 끌림에 대한 관심에서 장미 연작이 시작됐다.
10여점으로 구성된 '끌림' 연작은 이산가족 이별 장면, 그중에서도 손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이다.
24점으로 구성된 과슈 드로잉 연작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본능에 이끌려 뒤엉킨 남녀의 신체를 묘사한다.
신작은 구도나 표현에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특성을 동시에 살려냈다.
드로잉과 페인팅을 합치하는 방식으로 선을 강조했다.
작가는 스크래치 기법을 사용해 차가운 금속성과 벽화처럼 거친 질감을 냈다.
검은 바탕에 젯소를 바르고 날카로운 도구를 이를 긁어 떼어내고 과슈로 채색해 완성했다.
1980년생인 문성식은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하며 일찌감치 주목받은 작가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너무 빨리 알려져 내적으로는 괴로웠고 위태위태하게 여기까지 왔다"며 "그동안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