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스스로 봄길이 되어…아! 강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남 강진으로 떠나기로 했다고 말하자 누군가 정호승의 시 '봄길'을 보내줬다.
요즘 시기에 딱 맞는 시였다.
끝이 없을 것처럼 환란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요즘, 땅끝 강진을 다녀온 것이 우연이 아닌 듯 느껴졌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중략)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정호승)
◇ 후두두 떨어진 백련사 동백꽃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의 백련사로 차를 몰았다.
이맘때쯤이면 백련사 산문으로 향하는 길에 온통 동백꽃이 만발해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비는 밉지만 이번 봄비는 그렇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바닥에 떨어진 동백 꽃송이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백련사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차도에서 만난 가로수도 동백나무다.
잠시 차에서 내려 동백꽃을 감상하다 보니 저 멀리 바다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코로나19로 갑갑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백련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는 길 바닥에 누군가 장식해 둔 동백꽃 하트가 보였다.
백련사 남쪽과 서쪽에 수령 500∼800년이나 되는 동백나무 8천여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다.
사람들은 숲에서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백련사로 향했다.
백련사는 만경루(萬景樓) 아래쪽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돼 있다.
등지고 섰던 만경루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으로 향하는 순간 강진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수려한 전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백련사 대웅보전 왼편에는 온갖 색의 매화가 활짝 피어있다.
진한 매화향에 취해 비 오는 강진 바닷가를 내려다봤다.
◇ 강진에서 만난 다산의 발자취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1801년부터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와 읍내에 도착했다.
다산의 딱한 사정을 알고 한 주모가 골방 하나를 내어줬다고 한다.
다산은 '네 가지(생각, 용모, 언어, 행동)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으로 사의재(四宜齋)라는 당호를 걸었다.
다산은 이곳에서 6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다산은 이후 거처를 옮기다 다산초당(茶山草堂)에 자리를 잡았다.
백련사를 나서며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이 오솔길은 다산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기왕 왔으니 들르지 않을 수 없다.
동백꽃 가득 핀 산길 800m를 30여분 걸어가면 작은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도 강진 앞바다가 눈앞에 훤하게 들어온다.
정자에서 내려서 조금 더 가니 곧바로 다산초당이다.
다산초당 옆의 작은 연못에는 동백꽃 한송이가 떨어져 있다.
금붕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인사하고 내려간다.
다산초당은 다산이 1808년부터 귀양이 풀릴 때까지 10년 동안 기거하던 곳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곳 강진이 다산 실학사상의 산실이 된 셈이다.
다산은 차나무가 지천에 펼쳐진 이곳 만덕산 자락을 사랑했다.
다산이라는 호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강진군은 다산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수년 전 사의재 저잣거리를 복원했다.
특히 주막은 예스러운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어 매력적이다.
이 밖에 숙박시설, 다산의 정신을 배우는 다산 강학당, 볼거리와 체험 거리를 제공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 영랑 생가에서 만난 동백
강진은 물컵을 엎어놓은 모양이다.
가운데가 강진만이고, 그 왼편 아래쪽에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있다.
강진읍은 중앙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읍내는 매력적인 곳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김영랑의 생가인데 군에서 초가집 생가를 잘 복원해 놓았다.
별생각 없이 들어섰는데 뒤뜰에서 우거진 동백 군락을 또 만났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에서 후두두 떨어진 동백꽃이 초가지붕과 뒤뜰에 잔뜩 떨어져 있다.
관리소에 물어보니 동백나무의 수령은 300년이라고 한다.
김영랑 생가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맛보고 나오는 길에 관리소 직원이 한마디 던진다.
모란공원을 가보시라고. 김영랑 생가의 돌담을 왼쪽에 끼고 언덕 위로 올라서니 모란공원이 나온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이름을 따온 공원이다.
공원 안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강진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저기에 갖가지 꽃들이 앞다퉈 피어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도 볼 수 있다.
작은 온실이 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모란이 벌써 활짝 펴 있다.
5월이 되면 공원 곳곳이 모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다고 한다.
이 공원 하나 때문에라도 강진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매일 저녁밥을 먹고 이렇게 모란이 활짝 핀 공원에서 강진 읍내를 내려다볼 수 있으면 정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읍내를 지나 강진만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내려가는 중이었다.
가우도 인근 해안가에 작은 데크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이 눈에 띈다.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캠핑장이다.
캠핑장 개수대와 화장실 등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아놓았다.
데크 위에 잠시 피크닉 정도는 괜찮아 보였다.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텐트를 폈다.
버너를 꺼내 간단한 조리도 하기로 했다.
간단한 볶음밥이었지만 대면 접촉 없이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으니 유행병 시대의 여행 방법이 아닌가.
식사 뒤 마량항으로 내려가다 고바우공원 전망대를 만났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전망대에는 통유리 너머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찻집이 있다.
강진군에서 소개하는 관광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인스타그램 명소가 됐다고 한다.
◇ 백운동 원림과 강진 다원
물컵 위쪽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강진군의 북쪽을 빼놓을 수 없다.
영암군과 월출산국립공원을 공유하는 성전면에는 백운동 원림(白雲洞 園林)이 있다.
원림은 집에 딸린 숲이나 정원을 뜻한다.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 자락에 있는 정원으로, 17세기 문인이었던 이담로(1627∼1701)가 별장과 함께 조성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차 문화의 산실 역할을 했다.
원림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들인 구불구불한 물길에 술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흔적이 있다.
시냇물이 담 바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도록 설계돼 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원림으로 들어서니 매화 향기가 코를 찌른다.
잠시 툇마루에 앉아 봄을 만끽했다.
인근에는 태평양그룹에서 운영하는 다원이 있다.
이곳은 다른 지역의 유명 다원과 달리 입장료가 없다.
저 뒤로 월출산이 병풍처럼 올려다보이는 근사한 전망을 선사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보니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좋았다.
다원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목포에서 왔다는 젊은 커플이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다.
집 안에 있기가 너무 갑갑해서 나들이 삼아 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푸른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을 보고 마스크를 벗고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 내려갔다.
그들 뒤로 저 멀리 죽 뻗은 길이 보였다.
땅끝 강진에서 발견한 새로운 길이었다.
돌아와 글을 마감하는 도중 거짓말처럼 누군가 또 다른 시를 보내줬다.
혹독한 꽃샘추위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에는 이미 희망이 들어와 있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또 다른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길이 끝나면/박노해)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
요즘 시기에 딱 맞는 시였다.
끝이 없을 것처럼 환란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요즘, 땅끝 강진을 다녀온 것이 우연이 아닌 듯 느껴졌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중략)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정호승)
◇ 후두두 떨어진 백련사 동백꽃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의 백련사로 차를 몰았다.
이맘때쯤이면 백련사 산문으로 향하는 길에 온통 동백꽃이 만발해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비는 밉지만 이번 봄비는 그렇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바닥에 떨어진 동백 꽃송이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백련사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차도에서 만난 가로수도 동백나무다.
잠시 차에서 내려 동백꽃을 감상하다 보니 저 멀리 바다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코로나19로 갑갑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백련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는 길 바닥에 누군가 장식해 둔 동백꽃 하트가 보였다.
백련사 남쪽과 서쪽에 수령 500∼800년이나 되는 동백나무 8천여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다.
사람들은 숲에서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백련사로 향했다.
백련사는 만경루(萬景樓) 아래쪽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돼 있다.
등지고 섰던 만경루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으로 향하는 순간 강진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수려한 전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백련사 대웅보전 왼편에는 온갖 색의 매화가 활짝 피어있다.
진한 매화향에 취해 비 오는 강진 바닷가를 내려다봤다.
◇ 강진에서 만난 다산의 발자취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1801년부터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와 읍내에 도착했다.
다산의 딱한 사정을 알고 한 주모가 골방 하나를 내어줬다고 한다.
다산은 '네 가지(생각, 용모, 언어, 행동)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으로 사의재(四宜齋)라는 당호를 걸었다.
다산은 이곳에서 6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다산은 이후 거처를 옮기다 다산초당(茶山草堂)에 자리를 잡았다.
백련사를 나서며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이 오솔길은 다산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기왕 왔으니 들르지 않을 수 없다.
동백꽃 가득 핀 산길 800m를 30여분 걸어가면 작은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도 강진 앞바다가 눈앞에 훤하게 들어온다.
정자에서 내려서 조금 더 가니 곧바로 다산초당이다.
다산초당 옆의 작은 연못에는 동백꽃 한송이가 떨어져 있다.
금붕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인사하고 내려간다.
다산초당은 다산이 1808년부터 귀양이 풀릴 때까지 10년 동안 기거하던 곳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곳 강진이 다산 실학사상의 산실이 된 셈이다.
다산은 차나무가 지천에 펼쳐진 이곳 만덕산 자락을 사랑했다.
다산이라는 호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강진군은 다산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수년 전 사의재 저잣거리를 복원했다.
특히 주막은 예스러운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어 매력적이다.
이 밖에 숙박시설, 다산의 정신을 배우는 다산 강학당, 볼거리와 체험 거리를 제공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 영랑 생가에서 만난 동백
강진은 물컵을 엎어놓은 모양이다.
가운데가 강진만이고, 그 왼편 아래쪽에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있다.
강진읍은 중앙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읍내는 매력적인 곳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김영랑의 생가인데 군에서 초가집 생가를 잘 복원해 놓았다.
별생각 없이 들어섰는데 뒤뜰에서 우거진 동백 군락을 또 만났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에서 후두두 떨어진 동백꽃이 초가지붕과 뒤뜰에 잔뜩 떨어져 있다.
관리소에 물어보니 동백나무의 수령은 300년이라고 한다.
김영랑 생가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맛보고 나오는 길에 관리소 직원이 한마디 던진다.
모란공원을 가보시라고. 김영랑 생가의 돌담을 왼쪽에 끼고 언덕 위로 올라서니 모란공원이 나온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이름을 따온 공원이다.
공원 안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강진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저기에 갖가지 꽃들이 앞다퉈 피어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도 볼 수 있다.
작은 온실이 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모란이 벌써 활짝 펴 있다.
5월이 되면 공원 곳곳이 모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다고 한다.
이 공원 하나 때문에라도 강진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매일 저녁밥을 먹고 이렇게 모란이 활짝 핀 공원에서 강진 읍내를 내려다볼 수 있으면 정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읍내를 지나 강진만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내려가는 중이었다.
가우도 인근 해안가에 작은 데크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이 눈에 띈다.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캠핑장이다.
캠핑장 개수대와 화장실 등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아놓았다.
데크 위에 잠시 피크닉 정도는 괜찮아 보였다.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텐트를 폈다.
버너를 꺼내 간단한 조리도 하기로 했다.
간단한 볶음밥이었지만 대면 접촉 없이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으니 유행병 시대의 여행 방법이 아닌가.
식사 뒤 마량항으로 내려가다 고바우공원 전망대를 만났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전망대에는 통유리 너머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찻집이 있다.
강진군에서 소개하는 관광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인스타그램 명소가 됐다고 한다.
◇ 백운동 원림과 강진 다원
물컵 위쪽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강진군의 북쪽을 빼놓을 수 없다.
영암군과 월출산국립공원을 공유하는 성전면에는 백운동 원림(白雲洞 園林)이 있다.
원림은 집에 딸린 숲이나 정원을 뜻한다.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 자락에 있는 정원으로, 17세기 문인이었던 이담로(1627∼1701)가 별장과 함께 조성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차 문화의 산실 역할을 했다.
원림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들인 구불구불한 물길에 술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흔적이 있다.
시냇물이 담 바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도록 설계돼 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원림으로 들어서니 매화 향기가 코를 찌른다.
잠시 툇마루에 앉아 봄을 만끽했다.
인근에는 태평양그룹에서 운영하는 다원이 있다.
이곳은 다른 지역의 유명 다원과 달리 입장료가 없다.
저 뒤로 월출산이 병풍처럼 올려다보이는 근사한 전망을 선사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보니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좋았다.
다원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목포에서 왔다는 젊은 커플이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다.
집 안에 있기가 너무 갑갑해서 나들이 삼아 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푸른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을 보고 마스크를 벗고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 내려갔다.
그들 뒤로 저 멀리 죽 뻗은 길이 보였다.
땅끝 강진에서 발견한 새로운 길이었다.
돌아와 글을 마감하는 도중 거짓말처럼 누군가 또 다른 시를 보내줬다.
혹독한 꽃샘추위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에는 이미 희망이 들어와 있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또 다른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길이 끝나면/박노해)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