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과 엉겨붙어 뇌간 손상
숨만 쉬어도 퇴행성 뇌질환↑
바버라 마허 영국 랭커스터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환경연구회보’ 9월 2일자에 생후 11개월 된 영아부터 27세 사이 청년 186명의 뇌간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간은 뇌 뒤쪽에서 척수와 이어지는 부위다. 퇴행성 뇌질환이 생기는 부분이다.
연구진은 이들의 뇌간에서 철과 알루미늄, 티타늄 등 금속 나노 입자를 다수 발견했다. 이 입자는 바늘과 비슷한 독특한 모양이었다. 자동차 엔진에서 발견되는 입자와 상당히 비슷했다. 연구진은 이 입자를 조사 대상자의 내장에서도 확인했다. 오염 물질이 호흡기관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온 뒤 장으로 이동해 장과 뇌를 연결하는 신경세포를 따라 뇌로 전달됐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런 입자가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과 엉겨 붙어 뇌간의 흑질을 망가뜨린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흑질이 망가지면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이 생기기 쉽다. 대표적인 질환이 파킨슨병이다. 금속 입자의 모양이 자동차 엔진에 생기는 입자와 비슷하다는 점, 연구 대상자가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서 살았다는 점 등을 토대로 뇌간의 금속 입자는 대기에서 유래했다고 판단했다.
연구진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사 대상과 같은 연령대지만 공해가 없는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뇌간도 대조군으로 조사했다. 대조군의 뇌에서는 금속 나노 입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대기 중 오염 물질을 많이 마시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퇴행성 뇌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허 교수는 “뇌에서 금속 입자가 많이 발견된 실험 참가자는 이미 뇌신경이 일부 손상됐다”며 “공기 중 미세먼지를 제어하는 것은 미래의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미세먼지가 미치는 영향은 이뿐만이 아니다. 암 진단을 받은 뒤 5년 넘게 생존해 완치 판정을 받은 암 경험자가 초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되면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있다. 초미세먼지는 지름이 2.5㎛ 이하인 대기 부유물이다.
박상민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은 2006년 암 진단을 받은 서울 부산 인천의 암 경험자 4만899명을 추적 관찰해 올해 5월 ‘국제환경연구 및 공중보건저널’에 논문을 발표했다. 암 경험자를 5개 그룹으로 나눠 조사했더니 초미세먼지에 가장 많이 노출된 그룹은 가장 적게 노출된 그룹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이 31%,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47% 높았다. 방광암과 유방암 환자가 초미세먼지에 가장 취약했다.
김계형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교수는 “암 경험자는 진단 후 심장에 무리를 주는 항암제를 복용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받기 때문에 심혈관질환에 더 취약하다”며 “암 경험자 사망의 11%는 심혈관질환 때문”이라고 했다. 암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도 암 경험자는 심혈관질환 예방과 미세먼지 노출 예방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2024년까지 초미세먼지 농도를 2016년 대비 35% 이상 줄이는 범부처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을 차질없이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또 12~3월 고농도 시기에 시행하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올겨울부터 강화해 추진할 예정이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