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미용의학 이끄는 한국, 美·日처럼 미용외과 전문의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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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학 한국미용외과의학회 이사장
"과거에는 미용 성형기술로 아시아 최고 나라가 일본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중국, 필리핀, 태국 등서도 한국은 미용 수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오고 싶은 나라가 됐죠."
국내·외 회원만 3000여명에 이르는 학회다. 학회는 매년 봄 아시아국제미용의학포럼을, 가을에 한국미용외과의학회 학술대회를 열었다. 매년 500~1000명 정도가 참석한다. 서울시 마이스(MICE) 사업을 통해 정식 지원을 받는 하나뿐인 미용의학학술대회다. 한국관광공사도 후원하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두 학회를 합쳐 지난 17~18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한 차례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임 이사장은 "올해는 해외 200여명의 의사가 온라인을 이용해 자국에서 동영상으로 시청했다"며 "현장은 2m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300명 정도로 인원을 제한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의사면허도 갖고 있다. 일본에서 성형외과·피부과 전문의 자격도 얻었다. 그는 1983년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한국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서다.
"당시 군인 생활을 광주통합병원에서 했어요. 병원에 근무하던 때 518이 일어났죠. 당시 다친 시민과 군인이 통합병원에 실려오면 병실을 나눠서 치료했습니다. 첫날 총소리가 난 뒤 군인들이 트럭으로 학생들을 싣고 왔는데 너무 맞아서 등이 다 휠 정도였죠. 군 생활을 마친 뒤 '당분간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에는 전문의도 땄다. 일본은 전문의 면허를 위해서는 일정 시간 주요한 수술 건수를 채우고 학술지에 논문도 내야 한다. 임 이사장은 일본에서 피부암 환자가 가장 많은 오사카대에서 성형수술을 익혔다. 구순구개열 등 선천성 기형 수술을 익히고 싶어 고베에 있는 어린이병원에서도 수련을 받았다.
긴 수련 기간을 끝내고 임 이사장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1993년이다. 처음에는 호텔 안 클리닉에서 피부진료 등을 하다가 1994년 지금의 카이로스클리닉 자리로 옮겼다. 국내에는 아직 성형수술 시장이 완전히 자리잡지 않았던 시기다. 일본에서 막 시작되던 매몰식 쌍커플 수술법을 한국에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시에 국내서는 티나는 수술을 많이 했지만 일본은 티나지 않는 수술이 유행이었다"며 "두 나라의 유행 방식을 조합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수술을 했다"고 했다.
국내서 보툴리눔 톡신 시술을 처음한 것도 임 원장이다. 당시에는 보툴리눔 톡신 시술에 대한 개념도 없어 불법 진료를 한다고 고발도 당했다. 하지만 이후 국내에 보툴리눔 톡신 시술 붐이 일었다. 처짐을 줄인 실리프팅 수술, 귀에서 연골을 떼지 않는 코끝 수술 등도 도입했다.
그는 "성형은 해부학적 지식이 중요해 매년 두세번씩 외국에 나가 해부학 실습을 한다"며 "모여서 공부하는 모임을 시작하다보니 어느새 대규모 미용외과 학회로 성장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성형과 미용은 다른 분야라고 했다. 성형은 재건수술에 좀 더 집중된 분야지만 미용은 피부미용, 레이저 등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중국, 미국은 이 때문에 성형외과와 미용외과가 구분돼 있다"며 "국내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성형외과와 미용외과가 서로 반대로 갈 것이 아니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518 충격에 한국 대신 일본서 연수
임종학 한국미용외과의학회 이사장(사진)은 "국내 의사들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은 물론 독일 동남아시아에서도 찾아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양대 의대를 나온 임 이사장은 2012년부터 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국내·외 회원만 3000여명에 이르는 학회다. 학회는 매년 봄 아시아국제미용의학포럼을, 가을에 한국미용외과의학회 학술대회를 열었다. 매년 500~1000명 정도가 참석한다. 서울시 마이스(MICE) 사업을 통해 정식 지원을 받는 하나뿐인 미용의학학술대회다. 한국관광공사도 후원하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두 학회를 합쳐 지난 17~18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한 차례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임 이사장은 "올해는 해외 200여명의 의사가 온라인을 이용해 자국에서 동영상으로 시청했다"며 "현장은 2m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300명 정도로 인원을 제한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의사면허도 갖고 있다. 일본에서 성형외과·피부과 전문의 자격도 얻었다. 그는 1983년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한국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서다.
"당시 군인 생활을 광주통합병원에서 했어요. 병원에 근무하던 때 518이 일어났죠. 당시 다친 시민과 군인이 통합병원에 실려오면 병실을 나눠서 치료했습니다. 첫날 총소리가 난 뒤 군인들이 트럭으로 학생들을 싣고 왔는데 너무 맞아서 등이 다 휠 정도였죠. 군 생활을 마친 뒤 '당분간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툴리툼 톡신 등 국내 첫 시술 열어
국내 의사 면허시험 합격률은 90%를 넘지만 일본은 의사 면허 합격률이 70% 정도다. 단순히 연수받는 수준으로는 부족하겠다고 판단해 틈틈이 의사 시험 공부를 했다.이후에는 전문의도 땄다. 일본은 전문의 면허를 위해서는 일정 시간 주요한 수술 건수를 채우고 학술지에 논문도 내야 한다. 임 이사장은 일본에서 피부암 환자가 가장 많은 오사카대에서 성형수술을 익혔다. 구순구개열 등 선천성 기형 수술을 익히고 싶어 고베에 있는 어린이병원에서도 수련을 받았다.
긴 수련 기간을 끝내고 임 이사장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1993년이다. 처음에는 호텔 안 클리닉에서 피부진료 등을 하다가 1994년 지금의 카이로스클리닉 자리로 옮겼다. 국내에는 아직 성형수술 시장이 완전히 자리잡지 않았던 시기다. 일본에서 막 시작되던 매몰식 쌍커플 수술법을 한국에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시에 국내서는 티나는 수술을 많이 했지만 일본은 티나지 않는 수술이 유행이었다"며 "두 나라의 유행 방식을 조합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수술을 했다"고 했다.
국내서 보툴리눔 톡신 시술을 처음한 것도 임 원장이다. 당시에는 보툴리눔 톡신 시술에 대한 개념도 없어 불법 진료를 한다고 고발도 당했다. 하지만 이후 국내에 보툴리눔 톡신 시술 붐이 일었다. 처짐을 줄인 실리프팅 수술, 귀에서 연골을 떼지 않는 코끝 수술 등도 도입했다.
○학회 만들어 직접 학술교류
졸린 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검하수를 매몰법으로 하는 수술도 도입했는데, 첫 수술 환자는 그의 딸이었다. 하지만 새 수술법을 개발해도 국내 학계와 교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국내 전문의들만 학술모임 등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 이사장이 직접 학회를 만들고 학술 교류의 장을 연 이유다.그는 "성형은 해부학적 지식이 중요해 매년 두세번씩 외국에 나가 해부학 실습을 한다"며 "모여서 공부하는 모임을 시작하다보니 어느새 대규모 미용외과 학회로 성장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성형과 미용은 다른 분야라고 했다. 성형은 재건수술에 좀 더 집중된 분야지만 미용은 피부미용, 레이저 등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중국, 미국은 이 때문에 성형외과와 미용외과가 구분돼 있다"며 "국내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성형외과와 미용외과가 서로 반대로 갈 것이 아니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