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태양의 후예', '이태원 클라쓰', '조선구마사'/사진=NEW, 쇼박스, 롯데컬처웍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태양의 후예', '이태원 클라쓰', '조선구마사'/사진=NEW, 쇼박스, 롯데컬처웍스
롯데까지 드라마에 뛰어들었다. 방송사를 소유해 일찍이 드라마 제작을 해왔던 CJ ENM을 제외하고, 영화 외길을 걸어오던 영화 투자배급사들이 앞다퉈 드라마 사업에 손을 뻗기 시작한 것.

롯데컬처웍스는 지난 1일 곽정환 PD를 드라마사업부문장으로 영입했다. 곽정환 PD는 '추노', '보좌관', '날아라 개천용' 등을 연출한 인물. 롯데는 이와 함께 올해 상반기 SBS '조선구마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드라마 제작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각오다.

롯데에 앞서 '태양의 후예'로 드라마 제작의 재미를 본 NEW, 지난해 성공적으로 1호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론칭한 쇼박스 등 국내 4대 투자배급사로 불리는 영화계 큰손들이 드라마 제작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드라마와 경계가 허물어 지면서 인력 이동이 이뤄진 건 어제오늘일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관객수 급감, 투자 위축, 제작 무산으로 영화 사업 자체가 타격을 입게 되면서 드라마로 더욱 활발하게 눈을 돌리는게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 영화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이 상태면 다 죽는다"며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털어 놓았다.

영화관 안가는 코로나19 시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해 극장가는 역대 최저 관객수 기록을 경신했다. 방학 특수, 명절 특수도 사라졌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인 CJ CGV의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했고, 누적 영업적자는 3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3년 내 전체 매장 30% 문을 닫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CJ ENM과 법인이 분리된 CJ CGV와 달리 롯데시네마를 갖고 있는 롯데컬처웍스, 씨네Q의 NEW도 극장 운영 직격탄을 맞았다. 영화 시장 위축으로 직면한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드라마에 더욱 집중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쇼박스의 경우 '극장 공동화' 현상으로 지난해 3분기까지 25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JTBC에서 방영된 '이태원 클라쓰'가 성공을 거두지 않았다면 쇼박스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됐을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신생 투자배급사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도 오는 17일 방영되는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안녕?나야!'의 공동 제작에 참여하며 드라마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거대 자본과 다양한 IP, 강점"


엔터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유명 투자배급사들은 이전의 드라마 제작사보다 대형 자본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다년간 축적한 IP(지식재산권)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멀티 콘텐츠 제작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등 기존 OTT 플랫폼 뿐 아니라 쿠팡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했고, 디즈니+(디즈니플러스), 애플TV+(애플티비플러스), 아이치이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의 한국 시장 진출도 본격화될 예정인 만큼 영화를 전문적으로 했던 이들이 보여줄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록버스터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시작으로 드라마 제작을 시작한 NEW는 이후 영화로 사랑받은 작품을 드라마화한 '뷰티인사이드'를 비롯해 '보좌관' 시리즈, '날아라 개천용'까지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 왔다. 올해엔 500억 대작 '무빙'을 비롯해 5편 이상의 드라마를 선보일 계획이다.

롯데컬처웍스 역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와 협업, 대지진 이후의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유쾌한 왕따' IP를 활용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및 추가 드라마를 기획 개발하는 등 다양한 포맷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시도 중이다.

쇼박스는 유명 웹툰 '대세녀'를 비롯해 영화를 포함해 올해 10여 편의 작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들도 줄줄이 드라마로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영화 감독들의 드라마 외도도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에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모비딕', '특별시민' 박인제 감독이 연출자로 발탁됐을 때에도 영화 감독의 드라마 연출이 생소하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2시간 동안, 대형 스크린에서 이야기를 선보이는 영화와 달리 시리즈로 이어지는 드라마에 영화감독들이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감독들의 외도는 올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박인제 감독의 차기작은 NEW가 제작하고 JTBC에서 방영되는 '무빙'으로 결정됐고, '조용한 가족', '밀정' 김지운 감독 역시 애플티비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미스터 로빈'(가제)의 메가폰을 잡는다. '덕혜옹주', '천문' 허진호 감독 역시 올해 전도연, 류준열 주연의 '인간실격'을 선보인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는 해외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영화감독을 신뢰하는 경우가 많고, 연출 의뢰도 우선적으로 가는 것으로 안다"며 "코로나19로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이 사실상 중단된 만큼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영화 감독들의 드라마 진출도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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