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옥시콘틴 사건', 美 '새클러 가문'의 탐욕이 낳은 비극
최근 들어 암환자 등 중증환자를 위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늘고 있다. 이에 따른 부작용 사례가 증가하면서 마약성 진통제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미국 제약회사 퍼듀파마(Purdue Pharma)의 ‘옥시콘틴 사건’이다. 1990년대 후반 퍼듀파마는 마약성 진통제 중 하나로 중증환자에게만 처방해야 하는 오피오이드 성분 진통제(옥시콘틴)를 적극 홍보하면서 적용 범위를 대폭 늘렸다.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퍼듀파마의 마케팅 전략에 세계적 컨설팅회사 매킨지와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가 동원됐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20년 동안 거의 50만 명의 미국인이 오피오이드 진통제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13일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고통의 제국(Empire of Pain)》은 ‘옥시콘틴 사건’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책이다. 퍼듀파마는 최대 100억달러(약 11조원) 규모의 합의안을 받아들인 뒤 파산했다. 판매 촉진 전략을 수립해준 매킨지와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으로 남용을 조장한 월마트 등은 막대한 배상금을 물었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옥시콘틴 사건', 美 '새클러 가문'의 탐욕이 낳은 비극
하지만 ‘뉴요커’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패트릭 라든 키프는 《고통의 제국》을 통해 마약성 진통제의 광범위한 사용을 부추겨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주범, 퍼듀파마의 억만장자 오너인 ‘새클러(Sackler) 가문’의 오랜 탐욕과 오만을 추적해 고발한다. 법적 책임과 함께 그들의 사회적·도덕적 책임도 묻는다. 3대에 걸쳐 교묘하면서도 지속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희생을 발판 삼아 막대한 부와 명예를 챙겨온 새클러 가문의 추악함이 책에 드러나 있다.

새클러 가문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자선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하버드대 등 여러 유명 기관과 단체 기부자 명단에 ‘새클러’라는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사업을 통해 번 돈을 예술과 과학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명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한 가문이 쌓은 부와 명예치고는 그 대가와 희생이 너무 막대했다.

책은 대공황과 반유대주의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레이몬드, 모티머, 아서 의사 형제 이야기로 시작한다. 신경안정제인 ‘발륨’부터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에 이르기까지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개발하고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보급한 새클러 가문의 성공과 실패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발륨의 대성공과 제약회사 인수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형제들은 사치스러운 삶을 즐겼다. 레이몬드의 아들 리처드가 가족 소유 제약회사를 운영하면서 가문의 영향력은 의사업계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발륨에 이어 출시된 옥시콘틴의 약물중독 위험성은 간과됐고, 이 약품이 350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하는 동안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옥시콘틴 사건', 美 '새클러 가문'의 탐욕이 낳은 비극
《고통의 제국》은 새클러 가문의 영욕을 추적해 공개하며, 그들이 세상에 남긴 분명한 표식을 보여준다. 양심의 목소리 대신 탐욕을 좇은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알려준다.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