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 회고전 '사물의 뒷모습', 심오함과 유머 사이 '예술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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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회 II' 등 40여점 전시
부산 국제갤러리 7월4일까지
부산 국제갤러리 7월4일까지
일곱 켤레의 구두가 둥글게 늘어서 있다. 각 구두는 뒤꿈치로 다른 구두의 앞코를 밟고 있는 동시에 다른 구두에 앞코를 밟히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맺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의미를 담은 설치작품 ‘2/3 사회 II’(사진)다.
눈을 돌리니 육중한 기계장치에 연결된 빗자루가 바닥을 쓸고 있다. 허공을 가르는 비질에 헛웃음이 나오지만 가만히 빗자루가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인간이 허드렛일을 하며 마음을 갈고닦는 과정을 표현한 ‘아직 쓸어야 할 마당’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핵심 작가 중 한 명인 안규철(66)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 ‘사물의 뒷모습’이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처럼 일상적인 물건들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설치작품과 회화, 드로잉 등 40여 점이 전시돼 있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월급 받는 ‘교수 작가’로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며 살아왔어요. 앞을 보느라 바빠서 회고전을 할 겨를이 없었지요. 하지만 지난해 정년퇴임과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이제는 뒤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그가 199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 재학 시절 만든 작품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이다. Kunst(예술)라고 쓰인 문에는 손잡이가 다섯 개 달려 있다.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 수없이 많은 철학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반면 Leben(인생)이 적힌 문에는 손잡이가 없다. 1980년부터 7년간 다니던 ‘계간미술’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나 직장인의 삶으로도 돌아가기 어려운 막막한 상황을 표현했다.
한편 두 문 사이 놓인 화분에는 한쪽 다리만 긴 의자가 불안한 자세로 꽂혀 있다. 자신은 예술과 인생 중 어떤 것도 택하지 못하고 그 사이의 애매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예술이라는 문을 열어야겠다는 의지가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이 작품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지요.”
심오하고 난해한 작품만 전시에 나온 건 아니다. ‘모자 II’는 모자 앞에 유머러스한 드로잉을 전시한 작품이다. 드로잉에는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마주친 다른 사람에게 먹혀 모자만 남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전시된 모자는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물이 되는 셈이다. “흔히 현대미술가라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저도 엉뚱한 생각을 즐겨 하고 웃음을 좋아합니다.”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설명도 재치 넘친다. 전시는 오는 7월 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눈을 돌리니 육중한 기계장치에 연결된 빗자루가 바닥을 쓸고 있다. 허공을 가르는 비질에 헛웃음이 나오지만 가만히 빗자루가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인간이 허드렛일을 하며 마음을 갈고닦는 과정을 표현한 ‘아직 쓸어야 할 마당’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핵심 작가 중 한 명인 안규철(66)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 ‘사물의 뒷모습’이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처럼 일상적인 물건들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설치작품과 회화, 드로잉 등 40여 점이 전시돼 있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월급 받는 ‘교수 작가’로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며 살아왔어요. 앞을 보느라 바빠서 회고전을 할 겨를이 없었지요. 하지만 지난해 정년퇴임과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이제는 뒤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그가 199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 재학 시절 만든 작품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이다. Kunst(예술)라고 쓰인 문에는 손잡이가 다섯 개 달려 있다.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 수없이 많은 철학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반면 Leben(인생)이 적힌 문에는 손잡이가 없다. 1980년부터 7년간 다니던 ‘계간미술’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나 직장인의 삶으로도 돌아가기 어려운 막막한 상황을 표현했다.
한편 두 문 사이 놓인 화분에는 한쪽 다리만 긴 의자가 불안한 자세로 꽂혀 있다. 자신은 예술과 인생 중 어떤 것도 택하지 못하고 그 사이의 애매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예술이라는 문을 열어야겠다는 의지가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이 작품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지요.”
심오하고 난해한 작품만 전시에 나온 건 아니다. ‘모자 II’는 모자 앞에 유머러스한 드로잉을 전시한 작품이다. 드로잉에는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마주친 다른 사람에게 먹혀 모자만 남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전시된 모자는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물이 되는 셈이다. “흔히 현대미술가라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저도 엉뚱한 생각을 즐겨 하고 웃음을 좋아합니다.”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설명도 재치 넘친다. 전시는 오는 7월 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