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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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 모씨(46세)는 중학생 딸이 친구들과 유튜브를 보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뭔가 하고 봤다가 기겁했다. 옷 입는 취향으로 이상형을 찾는 이른바 '룩개팅'을 고등학생들이 하고 있었는데, 수 백만원 짜리 명품 옷과 가방을 걸치고 서로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구찌 부츠, 루이비통 가방, 알렉산더왕 바지, 발렌시아가 후드티 등 서로 입고 있는 명품 브랜드를 맞추는 게임도 했다. "2000만원 플렉스, 명품만 입은 고딩 소개팅"으로 제목이 달린 이 유튜브 동영상의 조회 수는 350만회에 달했다.

회사원 박 모씨(50세)는 69만원짜리 메종마르지엘라 운동화를 사달라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크게 혼냈다. 아들은 "친한 친구 무리 중에서 자기만 이 운동화가 없다"면서 아버지와 말다툼을 한 뒤 밖으로 뛰쳐 나갔다. 박 씨는 혹시나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거나 엇나가지 않을까 걱정돼 결국 운동화를 사주기로 했다. 아들이 사달라는 브랜드 매장에 갔더니 아들이 원하는 스니커즈는 다 팔렸다며 예약을 하라고 했다. 매장 직원은 요즘 10대가 좋아하는 청자켓은 어떻겠냐고 권했다. 자켓에는 160만원이 적힌 가격태그가 붙어있었다.

"명품, 부자들만 사라는 법 있나요?"

명품 쇼핑 바람이 10대에까지도 불어닥치고 있다. 일부 소득 상위 가정의 자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평범한 10대들 사이에서도 명품이 일상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코로나19로 등교를 하지 않는 날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명품백을 사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런'을 하는 아이, 같은 반에 명품으로 휘감은 친구를 추종해 명품을 한 개 또는 두 개라도 갖겠다며 부모님을 조르는 아이, 친구들끼리 '계 모임'을 만들어 용돈이나 저축한 돈을 한 명에게 몰아주고 돌아가며 명품을 사는 아이들...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에 명품 브랜드를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에 명품 브랜드를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말하는 '10대 명품 쇼핑'에 대한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한 반에 한 두명 정도는 명품으로 휘감고 오기도 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명품 1개라도 몸에 걸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부자만 명품을 사라는 법은 없잖아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친구들은 비싼 옷과 가방말고, 카드지갑이나 키링 같은 작은 소품을 사기도 해요." 한 고등학생 2학년 학생은 "명품 구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10대의 명품 쇼핑 열풍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명품 온라인쇼핑몰인 머스트잇의 연령별 명품 구매 건수를 살펴보면 20대와 30대가 각각 63%와 48% 늘었고, 10대의 증가율이 67%로 가장 높았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지난 4~5월 명품 소비자 가운데 MZ세대(10대 후반~30세) 비중이 45.2%에 달했다. 2019년 같은 기간(25.6%)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아이들이 명품 브랜드 신상 모델명과 출시 날짜까지 줄줄 외는 것을 보고 "도대체 이런 것은 어디서 알게 됐냐"고 물으니 바로 그 자리에서 유튜브를 찾아 보여줬다. 유튜브엔 '명품 하울(대량으로 구매한 물건을 품평)', '명품 언박싱(구매한 상품을 개봉)' 영상이 넘쳐났다.

'왜 10대들이 고가의 명품을 사고 싶어할까?'라는 질문에 고등학생 박 모양은 이렇게 답했다. "어른들은 왜 명품을 사나요? 우리도 똑같아요.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고급지잖아요."

내 아이 모방소비·충동소비 줄이려면

명품 쇼핑에 빠진 아이들을 보고 혀를 차고 혼을 내기 전에 어른들의 행동을 먼저 살펴보자. 아이는 어른을 모방한다. 틈 나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쇼핑몰에 나가는 습관을 가진 부모, 홈쇼핑과 온라인몰에서 주문한 택배가 쉴 새 없이 배달되는 가정.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소비 관념은 어떻게 형성될까?

25세 이하의 뇌는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아 스스로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거나 통제하기가 어렵다.(출처「왜 젊은 뇌는 충동적일까」제시 페인) 아이들이 모방소비와 충동소비, 과소비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어른보다 약한 이유다. 특히 사춘기에는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더욱 떨어진다. 유행을 따라 남을 모방하고 동조하는 사회적 현상인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는 유독 10대들을 강타한다.

사방에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유혹이 널려있고 지름신은 쉴 새 없이 강림하는데 아이들이 모방소비, 충동소비, 과소비에 빠지지 않도록 막을 방법이 있을까?

여러가지 행동강령이 있긴 하다. 쇼핑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계획을 짜는 '계획 소비'를 할 것, 일정 금액 이상의 물건을 사고 싶을 때는 하루 밤을 묵힌 뒤 다음 날 최종 결정할 것 등 이다.

의외의 해법도 있다. '대한민국 부모의 멘토'로 불리는 오은영 박사는 과소비하는 아이들에게 "침묵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했다. 오 박사는 온갖 미디어와 SNS에 노출되며 쉴 새 없이 소음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충동과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다그치고 야단치고 경쟁 속에 내몰기만 하면 아이들이 소비를 참고 만족을 지연시킬 줄 아는 능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고 오 박사는 진단했다.

심리학자들은 "올바른 소비 습관을 기르는 근본적 해답은 바로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약할수록 소비를 통해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려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평생 노동과 저축만으로는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젊은이들이 부와 성공에 대한 허기(虛飢)를 명품 소비로 표출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의 자존감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라 치부하며 포기할 필요는 없다. 심리학자들은 즉각적이고 쉽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칭찬'이다. 자아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사춘기의 경우 자존감을 높여주는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물질주의 성향이 절반 이하로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사물의 심리학』, 아네테 쉐퍼).

명품을 사달라는 자녀때문에 골치아픈 부모라면, 자녀에게 올바른 소비관념을 심어주고 싶은 부모라면, 오늘 밤 아이와 마주 앉아 대화하며 그동안 공허했을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위로해 주는 것은 어떨까.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넌 진짜 멋져. 니가 명품이니까."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