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SNS 등 온라인 언급량 31% 증가
'군침이 싹' 이미지 '밈'으로 자리 잡아
제페토·와디즈와 캐릭터 협업 잇따라
"동글동글하니 귀엽게 생겼잖아요. 평소에는 귀여운데 갑자기 음흉한 표정을 짓는 게 너무 웃기지 않나요? 일상에서 얌전히 있다가 한편에서는 음흉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해요." (32세 직장인 김모씨)유아동 대상 인기 애니메이션 '뽀로로'에 등장하는 분홍색 비버 캐릭터 루피가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뜻밖의 인기를 끌고 있다.
"몸이 핑크색인데다가 원피스까지 입어 엄청 여성스러운 캐릭터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온라인에서 활용되는 이미지를 보면 완전 반전이거든요. 매력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25세 취업준비생 윤모씨)
이른바 '잔망스러움'을 더한 뒤 인기가 극대화됐는데 이는 기존 뽀로로 애니메이션 속 왕자를 기다리는 모습 등의 여성적 설정과는 대조적이다.
24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7월23일부터 이달 22일까지 1년간 커뮤니티·인스타그램·블로그·트위터 등 온라인상 '루피' 언급량은 31만775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늘었다. 뽀로로 제작사인 아이코닉스가 지난해 11월부터 운영하는 '잔망 루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수도 이달 23일 기준 7만명에 육박했다.
'잔망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는 '태도나 행동이 자질구레하고 가벼운 데가 있다',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서 공주놀이와 요리를 좋아하고 운동신경도 둔한 모습과는 다소 상반되는 캐릭터로 바뀐 셈이다.
일례로 카카오톡의 '잔망 루피' 이모티콘에서 루피는 입에 장미를 물고 카사노바처럼 나타나거나 누군가에게 심한 욕을 뱉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때려치겠다"며 거침없이 불만을 표하는가 하면 군복을 입고 군인 말투를 사용하기도 한다. 루피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계기로는 '군침이 싹(군싹)' 이미지가 꼽힌다. 이 이미지 속 루피의 눈꼬리와 입꼬리는 과하게 올라가 있어 다소 음흉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인다. 뽀로로 애니메이션 속 천진난만한 모습과는 다르다.
최근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나섰던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5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군싹 이미지를 올리며 국민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나 전 의원은 한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는 모습이 담긴 인증샷을 올리며 "칼국수를 먹은 다음엔 밥까지 말아먹는 게 '국룰(전 국민적인 규칙)'이죠"라는 문장과 함께 '군침이 싹 도노'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잔망 루피의 인기에 힘입어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잇따라 콜라보(협업)를 진행하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는 아이코닉스와 콜라보해 잔망 루피 캐릭터를 꾸밀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여러 종류의 잔망 루피로 아바타를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지난 20일 지식재산권(IP)을 가진 브랜드 소유권자와 메이커를 연결해 라이선스 제품 개발, 펀딩까지 지원하는 종합 IP 매칭 프로그램 '팬즈 메이커'를 론칭한다고 밝혔다. 이 팬즈 메이커의 첫 콜라보 대상이 바로 잔망 루피. 와디즈는 잔망 루피가 글로벌 캐릭터 IP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잔망 루피가 단순한 유아동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넘어 폭넓은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취향과 통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상냥한 모습만 보여줬던 것에 비해 잔망 루피는 음흉하고 터프한 이미지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며 "다중적 정체성을 갖고 상황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는 MZ세대의 '멀티 페르소나'적 취향과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