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브레이커' 숏패딩, 떡볶이코트도 인기 부활
오래전 사용하던 제품 장농에서 꺼내기도
"숏패딩·어그부츠·떡볶이 코트…10년 전에나 유행하던 아이템들 아닌가요. 촌스러운데 20대가 많이 입는다고요?" (40대 직장인 A씨)패션업계에 불고 있는 뉴트로(뉴+레트로) 열풍을 두고 나온 10대와 40대의 엇갈린 반응이다.
"패딩 길이가 길면 오히려 더 촌스럽지 않나요? 긴 패딩 입으면 친구들이 '여의도 직장인'이라면서 놀려요." (10대 고등학생 B군)
10여년 전 유행하다 한동안 잊혔던 패션 트렌드들이 1020 세대 사이에서 다시 소환되면서다. 3040 세대는 당혹스러워하지만, 10대나 20대는 숏패딩이나 어그부츠, 떡볶이코트 같은 뉴트로 디자인 아이템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블랙핑크 제니나 아이유, 수지 등 MZ(밀레니얼+Z)세대에게 인기 높은 연예인들이 즐겨 입는 모습이 노출된 점도 인기 요인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등골브레이커' 숏패딩의 귀환
24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최근 3040 세대에게는 오래전 유행인 숏패딩이 1020세대에겐 새로운 트렌드로 인식되면서 매출도 함께 상승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이달 1~18일 겨울 패딩 등이 포함된 아웃도어 상품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6% 늘었다. 특히 스포츠 상품군의 경우 숏패딩을 중심으로 20% 이상 많이 팔린 것으로 파악된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스토어에선 10월 한 달간 롱패딩과 패딩 베스트 거래액이 전년 대비 약 70% 늘어난 반면 숏다운은 두 배(156%) 이상 증가했다.올해 유행하는 패딩의 특징은 숏패딩 중에서도 크롭(허리 위로 올라오는 짧은 길이) 기장의 짧은 재킷이 많다는 점이다. 크롭은 엉덩이를 채 덮지 않을 정도로 짧은 기장을 뜻한다. 올 들어 시작된 짧은 상의 유행이 패딩에까지 적용됐다. 숏패딩은 발랄한 느낌을 줘 캐주얼한 스타일을 구현하기에 좋다.
숏패딩은 10년 전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비싼 옷이라는 의미로 '등골브레이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인기였다. 가격대별 모델에 따라 '패딩 계급도'까지 등장했었다. 최근 제니, 아이유 등 인기 아이돌이 입는 모습이 노출되면서 다시 관심 받고 있다. 실제로 숏패딩은 인터넷 패션 커뮤니티의 단골 화제 중 하나다. "숏패딩을 입으면 어떤 하의를 착용하는 게 어울리나요" "요즘 학생들은 어떤 숏패딩을 입나요. 애가 사고 싶어해요" 같은 글이 숱하게 올라온다.
의류업계에선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아이더는 지난달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최종 우승팀 홀리뱅과 진행한 화보에서 '엘로이 여성 다운 재킷'을 선보였다. 해당 제품은 민트, 연핑크 등 파스텔 톤의 숏패딩으로 친환경 다운 충전재를 사용한 것이 특징. 블랙야크는 최근 'bcc 부스터 푸퍼' 시리즈를 출시하고 가수 아이유·엑소 카이를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이 시리즈는 모두 짧은 기장의 패딩으로 지난해보다 물량을 10배 늘렸다. K2는 전속모델 수지를 앞세워 '씬에어 다운'을 선보였다. K2는 올해 전체 다운 제품 중 숏다운 스타일을 60% 늘리고 물량은 200% 가까이 확대했다.
그 시절 '임수정 부츠'도 다시 주목
레트로 열풍을 타고 돌아온 건 숏패딩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유행했던 어그부츠도 1020 세대 사이에선 주목받는 패션이다. 2004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배우 임수정이 신었던 어그부츠는 당시 패션업계를 강타했던 히트상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지만 최근 다시 선호도가 높아졌다.어그는 호주의 신발 브랜드명으로 양털 부츠를 총칭한다. 어그부츠 유행이 이전과 다른 포인트는 발목 기장으로 짧아진 디자인이 유행한다는 점이다. 최근 유행인 숏패딩, 숏재킷 등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기장이 짧아지면서 어떤 옷에도 편하게 신을 수 있어 인기를 끈다고 업계는 분석했다.
직장인 윤수연 씨(36)는 "고등학생인 10대 조카가 어그부츠를 사고 싶어 용돈을 모으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오래전 신발장에 넣어두고 잘 신지 않았던 신발을 최근 다시 꺼냈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떡볶이코트'라는 이름으로 중고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더플코트 인기도 부활했다. 개점 전부터 주요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던 유니클로와 질 샌더의 올해 협업 컬렉션에서 판매 시작 한 시간 안에 대부분 사이즈가 매진된 대표 아이템도 남성용 더플코트였다. 커버낫, 서스데이 아일랜드, 빈폴 같은 국내 캐주얼 브랜드들도 이미 더플코트를 선보였다.
한 의류 브랜드 디자이너는 "3040 세대 사이에선 '복고 코스프레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나간 유행으로 인식되는 레트로 패션이 1020 세대에게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이라며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과거 유행했던 옷차림을 다시 공부하는 등 레트로 열풍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