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언제나 명랑한 친구, 늘 잘난 척하는 친구,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읊조리는 진지한 친구까지. 각각 유채꽃과 수선화, 그리고 벚꽃의 꽃말이다. 코로나19로 바다 건너 멀리 가지 못하지만 봄 손님들이 곳곳에서 성찬을 마련한다.

봄의 여왕 벚꽃의 군무

봄을 일깨워주는 손님으론 단연 벚꽃이 뽑힌다. 지근거리에서 즐길 수 있어서다. 매해 4월이면 회색 콘크리트 범벅인 도시를 화사하게 바꿔놓는다.
유채꽃 노란파도 몰아치네…반가운 '봄 친구' 보러 가자
서울 대표 벚꽃 명소인 여의도 여의서로와 잠실 석촌호수에선 손님 맞이가 한창이다.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폐쇄했던 꽃길이 3년 만에 열린다. 서울의 대표 벚꽃 명소로 꼽히는 여의도 국회 뒤편 벚꽃길은 9일부터 17일까지 개방된다. 1.7㎞에 달하는 길에 왕벚나무 1800여 그루가 즐비하다. 잠실 석촌호수도 2.5㎞에 걸쳐 벚꽃이 만개한다. 길 양쪽에 있는 1000여 그루 벚나무가 줄기를 뻗어 ‘벚꽃 터널’을 연출한다.

서울 강남 양재천도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양재천 영동1교부터 영동2교까지 2.5㎞ 벚꽃으로 그득하다. 꽃의 향취는 인근에 있는 양재꽃시장까지 이어진다. 국내 최대 꽃도매시장으로 튤립, 카네이션 등 전국 화훼농장에서 보내온 꽃들이 모여 있다. 시끌벅적한 곳을 벗어나 호젓하게 벚꽃을 즐기고 싶은 여행객들은 흑석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간다. 다른 곳과 달리 왕벚나무 사이에 수양벚나무를 심었다. 버드나무처럼 땅을 향해 늘어진 줄기에서 벚꽃잎이 흩날린다.

충남 청양군에 있는 벚꽃길은 청양 읍내와 주정삼거리부터 장곡사 입구까지 6㎞에 달한다. 흔히 ‘장곡사 벚꽃길’로 불린다. 도로 양편에 줄지은 왕벚나무에 꽃이 피면 벚꽃이 춤추듯 흩날린다. 2006년 국토해양부(옛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뽑히기도 했다.

무릉도원에서 꽃의 바다까지

유채꽃 노란파도 몰아치네…반가운 '봄 친구' 보러 가자
벚꽃을 시샘하듯 유채꽃, 수선화, 철쭉 등도 4월에 만개한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공곶이에선 바다와 수선화가 어우러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공곶이는 바다로 뻗은 ‘곶(串)’과 엉덩이 ‘고(尻)’의 합성어로, 바다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일컫는다. 바다와 맞닿아 찾아가는 길이 험하지만 다채롭다. 동백나무 숲과 종려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끝자락에 수선화 꽃밭이 나온다.

경북 영덕군 지품면에 있는 복사꽃마을은 매년 4월이면 무릉도원으로 바뀐다. 벚꽃이 지고 낙원을 상징하는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한 곳에 몰리지 않았고 마을 전역에 퍼져 있다. 황장재를 기점으로 지품면사무소 인근에서 삼화2리 영덕복사꽃마을과 옥계계곡까지 복숭아 꽃길이 이어진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성은 고즈넉한 꽃길로 유명하다. 길이 1.6㎞인 성곽 둘레를 따라 붉은 철쭉길이 이어진다. 멀찍이서 바라보면 바위에 불이 붙은 듯 보인다. 흥미로운 전설도 여행객들의 흥미를 끈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돌면 무병장수한다는 ‘답성 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이청준 작가가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으로 쓴 전남 장흥군 회진면에 있는 유채꽃마을은 봄이 되면 곳곳에서 노란 파도가 몰아친다. 2000년대 초 보리 수매가 중단되자 보리밭을 유채밭으로 바꾸며 유채꽃 명소로 거듭난 마을이다. 너른 구릉 1.5㎢(약 4만5375평) 전역에 유채꽃이 피어 있다. 곳곳에 설치된 오두막에 앉으면 유채꽃밭과 득량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