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경연 모습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경연 모습
폴란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와 함께 클래식음악계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WFIMC)에서 퇴출됐다.

유네스코 산하기구로 전 세계 116개 국제 콩쿠르가 가입한 WFIMC는 지난 13일(현지 시간) 긴급 총회를 열고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고 19일 공식 발표했다.
WFIMC의 피터 폴 카인라드 의장과 플로리안 리엠 사무총장은 이날 공동 이름으로 낸 입장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혹한 전쟁과 인도주의적 잔학 행위에 직면해 WFIMC는 러시아 정권이 자금을 지원하고 홍보 도구로 사용하는 콩쿠르를 지원하거나 회원으로 가질 수 없다”며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퇴출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항상 젊은 예술가, 특히 지금은 우크라이나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모든 러시아인에 대한 전면적인 제재와 국적에 따른 개별 예술가의 차별 및 배제에 반대한다는 이전 성명을 재차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WFIMC는 지난 13일 긴급 총회를 열어 러시아 국제 콩쿠르 자격 박탈 여부를 표결에 부쳤고, 회원의 약 90%가 자격 박탈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인라드 의장은 “차이콥스키 콩쿠르 측도 총회에 참석을 해서 입장을 밝혔지만 푸틴 대통령의 논리와 다르지 않았다”며 “우리는 그들을 더는 연맹 회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총회에 참석한 차이콥스키 콩쿠르 측은 "전 세계적인 음악 공동체가 정치적인 이유로 분열됨으로써 뛰어난 러시아 음악가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부당하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는 러시아 태생의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를 기념해 1958년에 처음 열렸다. 모스크바에서 4년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성악, 목관악기 및 금관 악기 분야에서 개최된다. 지금까지 반 클라이번(958년 피아노 1위),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존 오그던(1962년 피아노 공동 1위), 기돈 크레머 (1970년 바이올린 1위), 다비드 게링가스 (1970년 첼로 1위), 다닐 트리포노프 (2011년 피아노 1위), 드미트리 마슬레예프 (2015년 피아노 1위)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이 콩쿠르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한국 수상자로는 정명훈(1974년 피아노 2위), 박종민(2011년 남자 성악 1위), 서선영(2011년 여자 성악 1위), 손열음 (2011년 피아노 2위), 조성진 (2011년 피아노 3위) 등이 있다.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는 지난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연 데 이어 20일 대구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친(親) 푸틴’ 성향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위원장을 맡아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WFIMC의 이번 퇴출 결정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서구를 비롯해 전 세계 유망한 젊은 음악가들이 당장 내년에 열리는 대회부터 참가를 보이콧할 수 있는 명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WFIMC가 음악가들뿐 아니라 서구의 유수한 피아노 제조 메이커 등이 내년에 열리는 대회의 후원을 거부할 수 있는 계기를 먼저 마련한 것”이라며 “대회를 ‘클래식판 러시아 전국체전’으로 고립시켜 대회 수상자들이 게르기예프가 주는 일자리 이외에 서구에서 사실상 활동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경고하는 의미도 있다“고 분석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