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사람 자체를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이용자의 마음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죠.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은 그런 고민의 총집합체였다고나 할까요.”

지난 15일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에서 양명석 건축가(간삼건축 상무·사진)를 만났다. 등 뒤로 보이는 오색찬란한 파크와 대비되는 차분한 단색 카디건을 입었지만 밝은 미소가 테마파크와 잘 어우러졌다. 수백 아니 수천 번 들여다봤을 테지만 파크를 둘러보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애정이 가득했다.
양 상무는 지난달 31일 새로 문을 연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의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다. 2016년부터 6년간 롯데월드와 함께 마스터 플랜, 현장 설계 지원 등 디자인 업무를 했다. “모든 공정이 끝났으니 이제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할 때인데, 마음은 아직 롯데월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인터넷에 올라오는 후기 하나에 울고 웃는 것 같아요.” 이제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테마파크는 철저히 허구의 세계 속에 존재해야 하는 자족적 공간이에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지 못해 이용자들이 ‘이거 밖에서 봤던 건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의미가 퇴색돼 버립니다.”

파크는 모험심 많은 로티가 마법에 걸려 성에 갇힌 로리 여왕을 구한다는 스토리로 채워졌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이야기 같지만, 핵심은 ‘내가 직접 로티가 된다’는 데 있다. 파크에 입장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대형 나무 ‘토킹 트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 말하는 나무는 로리 여왕을 구하기 위해 6개 존에서 수행할 미션을 준다. 광산 마을인 ‘언더랜드’ 존에서는 왕국의 에너지원이 되는 광물을 캐야 하고, ‘조이풀 메도우’ 존에서는 강력한 힘을 주는 ‘포스 쿠키’를 얻어와야 하는 식이다. 모든 미션을 성공하면 ‘로얄가든’에서 파티를 즐기게 된다.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를 올리는 장치는 파크 곳곳에 설치됐다. ‘자이언트 디거’의 내부 벽에는 오우거(괴물)들과 함께 광산 트레일을 타고 떠나는 로리의 모습이 재생된다. 입장객들은 1~2시간 줄을 서는 동안 이 영상을 본다. 실제 광산 속에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어트랙션 내부의 작은 자재와 소품 하나에도 꼼꼼히 신경 썼다. 어트랙션 밖으로 나오면 로티와 로리가 등장하는 퍼레이드와 스테이지쇼가 진행된다. 파크 내를 걷다가 동화 속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면 한 발 뒤로 비켜줘야 한다.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은 입장객이 로리의 왕국이라는 세계관에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획한 공간이에요.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겨야 했어요.”
사진 = 김병언 기자
간삼건축 제공
이승무 작가
사진 = 김병언 기자 간삼건축 제공 이승무 작가
이렇게 마련된 공간에서 입장객들은 동심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이날도 교복을 빌려 입고 온 30~40대 무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해외에는 어트랙션만을 전면에 내세운 테마파크가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테마파크가 단순히 놀이기구를 타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 소비되는 측면이 더 강합니다.” 해외 트렌드를 좇기보다 우리 문화에 맞는 공간을 만들게 된 데는 양 상무의 건축 철학에 대한 영향도 컸다. 대학 시절 공모전에서 입상한 그는 스리랑카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현지에서 스리랑카 대표 건축가 제프리 바와의 건축물을 마주했다. “그는 토속적인 건축 스타일에 서구 양식을 더하고 열대우림의 자연까지 담았어요. 그야말로 ‘거기 있을 법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축물이었어요. 우리나라 건축업계는 지금까지도 해외 트렌드가 즉각 반영되곤 해요. 일부에서는 비판적 사고 없이 흡수해 버리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나름대로의 해석과 논리에 따라 건축물을 짓고 싶다는 게 저의 목표예요.”

그는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이 입장객 스스로가 소중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예전에는 세련된 디자인에 눈이 갔다면 요즘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정화되는 분위기를 가진 공간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요.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 유한한 존재잖아요. 그런 존재가 스스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좋은 건축물 아닐까요.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도 방문객들에게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부산=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