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글 라벨도…" 美 나파밸리 유일 한국 여성 와인메이커의 포부 [황정수의 인(人)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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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실 박 와인포니아 창업자
자연의 맛 재현한 와인 제조
"와인은 사람과 자연 연결"
혁신과 도전으로 나파에서 명성
"한국 전통 농법 미국에 도입
한글 라벨 와인도 제조 가능"
자연의 맛 재현한 와인 제조
"와인은 사람과 자연 연결"
혁신과 도전으로 나파에서 명성
"한국 전통 농법 미국에 도입
한글 라벨 와인도 제조 가능"
세실 박 와인포니아 창업자는 미국 나파밸리의 유일한 한국인 여성 와인메이커다. 2007년 와인 제조업체 와인포니아를 설립한 이후 와인 디자인, 맞춤형 와인 주문 제작, 빈야드(포도밭) 및 와이너리(와인 제조 시설) 관리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본업인 와인 제조와 관련해선 라틴어로 '혁신'이란 뜻을 담은 '이노바투스' 와인을 앞세워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도 명성을 쌓고 있다.
세실 박의 주무대인 나파밸리는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로 유명하다. 와이너리의 92%가 가족경영으로 운영될 정도다. 한국 출신, 여성이란 핸디캡까지 갖고 있는 세실 박이 나파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뭘까. '좋은 모든 것은 이미 네 주위에 있다'는 박 창업자의 좌우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와인업계에선 제품의 질과 맛에 와인메이커의 마음가짐이 반영된다는 말이 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이 '성공에 대한 갈망' 같은 조급함을 가지면 와인의 질과 맛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박 창업자는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한다"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고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박 창업자가 권한 비오니에 품종의 와인을 시음했을 때 꽃향기와 함께 풍부한 맛이 느껴졌다.
박 창업자는 자신의 와인에 이민자로서의 도전 정신이 녹아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표 중 하나도 '한국의 정체성'을 와인에 담는 것이다. 우선 한국의 전통 농법을 나파밸리의 와인 제조에 도입해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한국산 포도를 활용한 세계적인 와인 제조는 불가능할까. 레드와인 등과 관련해선 한국 포도의 달콤한 맛이 갖는 한계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게 박 창업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 등은 충분히 생산 가능하다고 박 창업자는 강조했다. 그는 "언젠가는 한글 라벨을 붙인 와인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나파 밸리에서 유일한 한국인 여성 와인메이커입니다. 한국인 와이너리 오너는 있지만 와인메이커는 제가 유일합니다. 이밖에 와이너리도 갖고 있고 포도밭 농장 관리인, 와이너리 디자이너 등으로도 일합니다.”
▶나파에서 왜 좋은 와인이 나올까요
“나파밸리 사이즈는 캘리포니아의 4%에 해당하는 좁은 지역입니다. 나파가 특별한 이유는 지중해성 기후 때문입니다. 지중해성 기후는 캘리포니아 면적의 2%만 누릴 수 있습니다. 나파는 기후적으로 우월한 ‘천상의 땅’이죠. 올리브오일, 토마토, 포도가 생산이됩니다. 관리도 엄격합니다. 나파에선 상업빌딩도 짓기 어렵고 물도 함부로 못 씁니다. 스타벅스도 간판 색깔을 바꿔야할 정도죠.” ▶나파 안에서도 지역마다 특성이 다를 것 같습니다
“나파에서도 포도를 만드는 특별한 지역이 있고, 부속 지역(AVA)도 16개로 세분화됩니다. 16개 지역별로도 포도의 특징이 다릅니다.”
▶나파엔 몇 개의 와이너리가 있나요
“500~600개 정도 됩니다. 이 중 92%가 가족 경영이죠. 작은 와이너리가 많습니다.”
▶시음 와인의 품종인 비오니에는 어떤 AVA에서 생산된거죠(박 대표는 이날 자신이 생산한 화이트 와인의 시음을 권했다)
“비오니에 품종은 나파에서도 2%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귀한 품종입니다. 욘트빌 AVA에서 온 것입니다. 흙에 물기가 많은 곳이죠. 화이트와인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나파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와인은 까르베네소비뇽이고 그 다음이 샤도네이, 멜롯 순입니다.”
“어릴 때부터 ‘끝가지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오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공대를 갔죠. 식품회사 연구소에 지원했는데 마케팅으로 보내더라고요. 저는 공대 출신에 마케팅에 대해서 잘 몰라서 ‘오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MBA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미국에 왔습니다.”
▶와인에 관심은 언제부터 가졌나요
“미국에 와서 와인을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전공(식품생명공학)을 감안할 때 와인 생산과 관련해 할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MBA를 접고 와인업계로 들어갔습니다. 직업의 영속성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 안에 무궁무진한 세상이 있더라고요.” ▶회사를 설립한 계기는요
“2007년이었어요. 땅도 없었고 교육 받은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와이너리 연구소에서 생산 관련 데이터를 만들고 시음하고 샘플을 만드는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나파와인컴퍼니란 회사였는데 포도밭이 없는 와인메이커들이 협업하는 그런 회사였어요. 그런 것을 보면서 ‘포도밭이 없는 나도 와인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와인포니아란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어요
“와인 제조는 배웠는데 영업이나 사업을 모르니까 처음 한 게 고객이 주문한 와인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고객이 늘어서 2008~2010년엔 LPGA, PGA 경기에 와인을 공급했습니다. 이밖에 웨딩 와인, 아기탄생와인, 회사기념일 와인 등 다양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와인은 만들겠는데 대화가 안 되는 게 문제였죠. 5~6년 정도 일하고 UC데이비스의 와인프로그램에 갔어요. 네트워크와 언어(와인업계에서 주로 쓰는 영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빈야드 파밍을 배웠습니다. 음식(와인)에서 중요한 게 재료(포도밭과 포도)잖아요. 재료를 이해 못하면 와인에 한계가 있죠. 이후로 본격적으로 빈야드(포도밭) 운영관리쪽으로 진출했습니다.” ▶와이너리 컨설팅 사업도 하신다고요
“처음에 나파하고 소노마지역의 작은 포도밭 관리를 했습니다. 포도밭 오너들은 과거에 포도를 와인 생산업자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와이너리’를 지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요. 또 나파지역에 와이너리를 갖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 와이너리에 적당한 땅을 찾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처음에 자신을 와인디자이너라고도 했는데요
“일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표현은 아니죠. 프라이빗한 레벨의 와인만들때, ‘그분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와인을 만듭니다. 이것을 ‘와인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 UC데이비스를 졸업하면서 ‘이노바투스(innovatus, 혁신)’이란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나파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다른 ‘와인 신대륙’으로 혁신적인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이 와서 일궈놓은 땅, 혁신스토리죠. 이미지 상으론 프랑스가 최고의 평가를 받지만 나파도 프랑스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나파가 폐쇄적일 것 같았는데 어려움이 없었나요
“물론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난 10년 간 걸음마 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큰 기대를 안 했습니다. 경쟁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외부적으로 괴롭힘을 받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10년 후에 보자고 다짐했죠. 혼자 다 해야한다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자기 단련을 더 했습니다.” ▶이노바투스 와인엔 어떤 혁신이 숨어있나요
“유일한 한국인이 만든 와인이죠. 프리미엄와인의 유행이 굉장히 ‘센’ 와인 진한 와인들인데 이노바투스는 섬세한 와인입니다. 음식하고 어울리면서 향이 훌륭한 것을 선호합니다. 좀 더 호기심이 가는, 대중을 위한 와인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브로드웨이 오르페움 극장의 공식 선정 와인이 되기도 했습니다.”(이노바투스는 현재 한국, 중국,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이노바투스의 다른 특징이 있다면요
“제 와인은 '치유와 화해를 위한 와인'입니다. 와인을 마시면서 자연스러워졌을 때 모두 다 친구가 됩니다. 제가 긴장을 하고 너무 잘 하려고 하면 와인도 그 모습이 반영이됩니다. 제가 여유를 갖고하면 와인에서도 그 모습이 나오죠. 제 몸을 치유하면서 제 몸에 도움이 되는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참고로 박 대표는 암에 걸렸지만 가족의 도움, 와인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암을 극복했다고 한다.)
“조금 더 성숙해지면 한국으로 가서 한국 고유의 농작물 재배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한국엔 자연비료를 개발한 농장들이 많죠. 한국의 기법을 나파로 가져와 상업화하고 싶습니다.”
▶한국산 포도로 만드는 와인 생산은 어려울까요
“일단 기후가 달라요. 나파는 농익은, 맛이 깊은 블루베리 사이즈의 포도가 나오는데, 한국에선 이런 포도가 안 나옵니다. 단 맛 중심이죠. 그래서 레드와인은 어렵고 스파클링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배운 와인메이킹 기술로 한국에서 한국의 품종과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제쯤 가능할까요
“지금은 나파에서 쌓아갈 게 많고 여기서 더 자리를 잡고 싶습니다. 한국 사람의 아이디어로 만든 와인을 더 하고나서, 차츰 한국과 교류하면서 한국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한글 라벨을 붙인 와인도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파에서 와인을 만들어서 ‘한국을 알리고자’ 하는 뜻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와인을 만들 것입니다. 계속 고민 중이고 언젠가는 나올겁니다.” *아래 질문과 답변은 와인 관련 상식에 대한 것이다.
▶코르크마개와 스크루캡 와인중에 어떤 게 와인 보존에 좋은가요
“스크루캡이 보존성이 좋습니다. 하지만 와인이라는 게 완벽한 걸 원한다기보다는 스토리와 변하는 걸 즐기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코르크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입니다.”
▶와인병에 적혀 있는 연도는 생산 연도인가요 포도를 딴 연도인가요
“빈티지는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이야기합니다. 2018년 빈티지면 2018년 수확한 해고요 와인은 1~2년 뒤에 나옵니다.”
▶나파 와인 중에 질 좋은 포도로 만든 해가 있을까요
“2018년 수확한 포도는 질이 좋았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시작이 좋았죠. 하지만 빈티지별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와인메이커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캘리포니아 화재 때 만든 와인도 괜찮을까요
“2017년 나파 인근에 엄청난 화재가 있었습니다. 생산량이 반 이하로 줄었고요 일부 빈야드는 포도 생산을 하지 않았죠. 2020년에 또 불이 났죠. 화재에서 나온 ‘재’가 아무래도 포도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텐데, 나파에선 재가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실리콘밸리·한국 스타트업 관련 뉴스레터 한경 긱스(GEEKS)를 만나보세요! ▶무료 구독하기 hankyung.com/newsletter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
세실 박의 주무대인 나파밸리는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로 유명하다. 와이너리의 92%가 가족경영으로 운영될 정도다. 한국 출신, 여성이란 핸디캡까지 갖고 있는 세실 박이 나파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뭘까. '좋은 모든 것은 이미 네 주위에 있다'는 박 창업자의 좌우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와인업계에선 제품의 질과 맛에 와인메이커의 마음가짐이 반영된다는 말이 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이 '성공에 대한 갈망' 같은 조급함을 가지면 와인의 질과 맛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박 창업자는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한다"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고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박 창업자가 권한 비오니에 품종의 와인을 시음했을 때 꽃향기와 함께 풍부한 맛이 느껴졌다.
박 창업자는 자신의 와인에 이민자로서의 도전 정신이 녹아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표 중 하나도 '한국의 정체성'을 와인에 담는 것이다. 우선 한국의 전통 농법을 나파밸리의 와인 제조에 도입해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한국산 포도를 활용한 세계적인 와인 제조는 불가능할까. 레드와인 등과 관련해선 한국 포도의 달콤한 맛이 갖는 한계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게 박 창업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 등은 충분히 생산 가능하다고 박 창업자는 강조했다. 그는 "언젠가는 한글 라벨을 붙인 와인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2%...지중해성 기후 '천상의 땅' 나파
▶나파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나파 밸리에서 유일한 한국인 여성 와인메이커입니다. 한국인 와이너리 오너는 있지만 와인메이커는 제가 유일합니다. 이밖에 와이너리도 갖고 있고 포도밭 농장 관리인, 와이너리 디자이너 등으로도 일합니다.”
▶나파에서 왜 좋은 와인이 나올까요
“나파밸리 사이즈는 캘리포니아의 4%에 해당하는 좁은 지역입니다. 나파가 특별한 이유는 지중해성 기후 때문입니다. 지중해성 기후는 캘리포니아 면적의 2%만 누릴 수 있습니다. 나파는 기후적으로 우월한 ‘천상의 땅’이죠. 올리브오일, 토마토, 포도가 생산이됩니다. 관리도 엄격합니다. 나파에선 상업빌딩도 짓기 어렵고 물도 함부로 못 씁니다. 스타벅스도 간판 색깔을 바꿔야할 정도죠.” ▶나파 안에서도 지역마다 특성이 다를 것 같습니다
“나파에서도 포도를 만드는 특별한 지역이 있고, 부속 지역(AVA)도 16개로 세분화됩니다. 16개 지역별로도 포도의 특징이 다릅니다.”
▶나파엔 몇 개의 와이너리가 있나요
“500~600개 정도 됩니다. 이 중 92%가 가족 경영이죠. 작은 와이너리가 많습니다.”
▶시음 와인의 품종인 비오니에는 어떤 AVA에서 생산된거죠(박 대표는 이날 자신이 생산한 화이트 와인의 시음을 권했다)
“비오니에 품종은 나파에서도 2%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귀한 품종입니다. 욘트빌 AVA에서 온 것입니다. 흙에 물기가 많은 곳이죠. 화이트와인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나파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와인은 까르베네소비뇽이고 그 다음이 샤도네이, 멜롯 순입니다.”
LPGA, PGA 토너먼트 전용 와인도 공급
▶나파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어릴 때부터 ‘끝가지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오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공대를 갔죠. 식품회사 연구소에 지원했는데 마케팅으로 보내더라고요. 저는 공대 출신에 마케팅에 대해서 잘 몰라서 ‘오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MBA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미국에 왔습니다.”
▶와인에 관심은 언제부터 가졌나요
“미국에 와서 와인을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전공(식품생명공학)을 감안할 때 와인 생산과 관련해 할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MBA를 접고 와인업계로 들어갔습니다. 직업의 영속성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 안에 무궁무진한 세상이 있더라고요.” ▶회사를 설립한 계기는요
“2007년이었어요. 땅도 없었고 교육 받은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와이너리 연구소에서 생산 관련 데이터를 만들고 시음하고 샘플을 만드는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나파와인컴퍼니란 회사였는데 포도밭이 없는 와인메이커들이 협업하는 그런 회사였어요. 그런 것을 보면서 ‘포도밭이 없는 나도 와인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와인포니아란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어요
“와인 제조는 배웠는데 영업이나 사업을 모르니까 처음 한 게 고객이 주문한 와인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고객이 늘어서 2008~2010년엔 LPGA, PGA 경기에 와인을 공급했습니다. 이밖에 웨딩 와인, 아기탄생와인, 회사기념일 와인 등 다양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와인은 만들겠는데 대화가 안 되는 게 문제였죠. 5~6년 정도 일하고 UC데이비스의 와인프로그램에 갔어요. 네트워크와 언어(와인업계에서 주로 쓰는 영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빈야드 파밍을 배웠습니다. 음식(와인)에서 중요한 게 재료(포도밭과 포도)잖아요. 재료를 이해 못하면 와인에 한계가 있죠. 이후로 본격적으로 빈야드(포도밭) 운영관리쪽으로 진출했습니다.” ▶와이너리 컨설팅 사업도 하신다고요
“처음에 나파하고 소노마지역의 작은 포도밭 관리를 했습니다. 포도밭 오너들은 과거에 포도를 와인 생산업자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와이너리’를 지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요. 또 나파지역에 와이너리를 갖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 와이너리에 적당한 땅을 찾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처음에 자신을 와인디자이너라고도 했는데요
“일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표현은 아니죠. 프라이빗한 레벨의 와인만들때, ‘그분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와인을 만듭니다. 이것을 ‘와인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혁신' 의미 담은 이노바투스 와인
▶와인 브랜드는 어떤 계기로 론칭하셨나요“2014년 UC데이비스를 졸업하면서 ‘이노바투스(innovatus, 혁신)’이란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나파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다른 ‘와인 신대륙’으로 혁신적인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이 와서 일궈놓은 땅, 혁신스토리죠. 이미지 상으론 프랑스가 최고의 평가를 받지만 나파도 프랑스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나파가 폐쇄적일 것 같았는데 어려움이 없었나요
“물론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난 10년 간 걸음마 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큰 기대를 안 했습니다. 경쟁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외부적으로 괴롭힘을 받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10년 후에 보자고 다짐했죠. 혼자 다 해야한다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자기 단련을 더 했습니다.” ▶이노바투스 와인엔 어떤 혁신이 숨어있나요
“유일한 한국인이 만든 와인이죠. 프리미엄와인의 유행이 굉장히 ‘센’ 와인 진한 와인들인데 이노바투스는 섬세한 와인입니다. 음식하고 어울리면서 향이 훌륭한 것을 선호합니다. 좀 더 호기심이 가는, 대중을 위한 와인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브로드웨이 오르페움 극장의 공식 선정 와인이 되기도 했습니다.”(이노바투스는 현재 한국, 중국,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이노바투스의 다른 특징이 있다면요
“제 와인은 '치유와 화해를 위한 와인'입니다. 와인을 마시면서 자연스러워졌을 때 모두 다 친구가 됩니다. 제가 긴장을 하고 너무 잘 하려고 하면 와인도 그 모습이 반영이됩니다. 제가 여유를 갖고하면 와인에서도 그 모습이 나오죠. 제 몸을 치유하면서 제 몸에 도움이 되는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참고로 박 대표는 암에 걸렸지만 가족의 도움, 와인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암을 극복했다고 한다.)
"와인으로 한국에 도움되는 일 할 것"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조금 더 성숙해지면 한국으로 가서 한국 고유의 농작물 재배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한국엔 자연비료를 개발한 농장들이 많죠. 한국의 기법을 나파로 가져와 상업화하고 싶습니다.”
▶한국산 포도로 만드는 와인 생산은 어려울까요
“일단 기후가 달라요. 나파는 농익은, 맛이 깊은 블루베리 사이즈의 포도가 나오는데, 한국에선 이런 포도가 안 나옵니다. 단 맛 중심이죠. 그래서 레드와인은 어렵고 스파클링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배운 와인메이킹 기술로 한국에서 한국의 품종과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제쯤 가능할까요
“지금은 나파에서 쌓아갈 게 많고 여기서 더 자리를 잡고 싶습니다. 한국 사람의 아이디어로 만든 와인을 더 하고나서, 차츰 한국과 교류하면서 한국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한글 라벨을 붙인 와인도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파에서 와인을 만들어서 ‘한국을 알리고자’ 하는 뜻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와인을 만들 것입니다. 계속 고민 중이고 언젠가는 나올겁니다.” *아래 질문과 답변은 와인 관련 상식에 대한 것이다.
▶코르크마개와 스크루캡 와인중에 어떤 게 와인 보존에 좋은가요
“스크루캡이 보존성이 좋습니다. 하지만 와인이라는 게 완벽한 걸 원한다기보다는 스토리와 변하는 걸 즐기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코르크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입니다.”
▶와인병에 적혀 있는 연도는 생산 연도인가요 포도를 딴 연도인가요
“빈티지는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이야기합니다. 2018년 빈티지면 2018년 수확한 해고요 와인은 1~2년 뒤에 나옵니다.”
▶나파 와인 중에 질 좋은 포도로 만든 해가 있을까요
“2018년 수확한 포도는 질이 좋았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시작이 좋았죠. 하지만 빈티지별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와인메이커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캘리포니아 화재 때 만든 와인도 괜찮을까요
“2017년 나파 인근에 엄청난 화재가 있었습니다. 생산량이 반 이하로 줄었고요 일부 빈야드는 포도 생산을 하지 않았죠. 2020년에 또 불이 났죠. 화재에서 나온 ‘재’가 아무래도 포도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텐데, 나파에선 재가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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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