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도 은퇴한 60대도 "피카소 그림 100만원만 구입"…깜깜이 미술거래 판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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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모험가들
미술품 공동투자 개척자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
'미술 공동구매'란 말도 없던 시절
숱한 반대에도 200만원으로 창업
낙찰률 70% 이상 블루칩만 다뤄
'그림=똘똘한 자산' 인식 퍼져야
미술품 공동투자 개척자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
'미술 공동구매'란 말도 없던 시절
숱한 반대에도 200만원으로 창업
낙찰률 70% 이상 블루칩만 다뤄
'그림=똘똘한 자산' 인식 퍼져야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구사마 야요이가 1990년 그린 ‘무제(호박)’. 18×14㎝의 손바닥만한 이 그림의 가격은 지난해 11월 10일 6억원이었다. 그로부터 247일이 지난 올해 7월 15일 7억8000만원에 팔렸다. 8개월 만에 30%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의 1999년 작 ‘번트 엄버& 울트라마린 블루’ 120호. 작년 11월 17일 3억8000만원이었던 이 그림은 지난 15일 4억6000만원에 팔렸다. 240일간 가격 상승률은 21.1%.
이 그림의 주인은 고액자산가가 아니다. 각각 244명, 159명의 사람이 공동 소유하다가 되팔았다. 이 거래를 가능하게 한 건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 2018년 10월부터 지금까지 162점의 그림이 아트앤가이드에서 거래됐다. 누적 공동구매 금액은 약 412억원. 이 중 90점이 매각됐고, 평균 가격 상승률은 30.5%를 기록했다. 국내에 미술품 공동구매라는 개념조차 없던 2016년 혁신적 플랫폼을 만든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41)를 서울 역삼동 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그림을 좋아하는 회계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화실을 다녔는데, 부모님 반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해 회계사가 됐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과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를 다니며 아트펀드 투자보고서를 쓰고 미술 시장을 분석하면서 “왜 좋은 그림들은 항상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사고 팔릴까”라고 생각했다. 보고서로는 알 수 없는 미술 현장이 궁금했다. 30대 초반 잘나가던 회사를 관두고 간송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 기획과 운영, 계약과 재무 회계 등을 총괄하며 대구 간송미술관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아트 딜러들을 쫓아다녔다. 폐쇄적인 거래 문화, ‘주먹구구식 유통’이 관행이던 미술계 안에서 어떤 그림이 좋은 것이고, 누가 사고파는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신진작가 판화 등을 직접 사며 “아트 딜링에도 어떤 로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눈엔 미술시장의 문제들이 보였다. ‘컬렉터들은 돈을 버는데, 작가들은 왜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들까.’
좋은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의 이미지 저작권을 사서 판화로 찍어 판로를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 이 일은 아트앤가이드의 씨앗이 됐다.
공동구매 플랫폼을 만들 당시 창업 자금은 200여만원.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첫 공동구매할 그림을 샀다. 미술계는 물론 금융계에서도 그의 창업 아이템에 대해 “미쳤다”고 했다. “분명 곧 망할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간송에서의 경험, 딜러들을 보며 학습한 결과는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의 성공적 안착으로 이어졌다. 2018년 10월 공동구매 첫 작품은 김환기의 산월(1963). 4500만원짜리 작품을 올리자마자 19명의 투자자가 모여 7분 만에 팔려나갔다. 이 그림은 한 달 뒤 유럽 컬렉터에게 5500만원에 매각됐고, 22%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한 사람당 최대 5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는데 2년 내 목표 수익률 20%를 달성하면 매각합니다. 보통은 1년, 짧은 건 한 달 만에도 매각하고요. 공동구매 참여자는 대부분 일반 직장인이거나 은퇴한 자산가입니다.”
“회사가 소유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공동구매자로 참여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이익 극대화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리스크도 함께 떠안는 셈이죠.”
공동구매 가격과 매도 가격을 정하는 구조도 다르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작가와 작품의 평균 거래 가격을 책정하고, 매수와 매도 시점을 정한 뒤 수익률이 그 이상일 때 판다. 회사엔 개발자만 20명이 넘는다. 매일 국내외 경매 정보 등을 분석해 데이터로 만든다. ‘부르는 게 값’이던 미술품 가격을 정확한 정보와 추이로 마치 주식 시황처럼 분석한다는 얘기다.
문형태의 ‘다이아몬드(2017)’는 지난해 7월 공동구매해 최고 가격 상승률(600%)을 기록했다. 구사마의 ‘튤립Ⅰ(2000)’은 20초 만에 팔려 최단 시간 판매 작품이 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새끼 염소와 관중이 있는 바쿠스 축제(1959)’는 19일 만에 되팔아 최단 위탁 기간 기록을 갖고 있다.
“그림을 사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지, 만약 그림을 샀는데 언제 어디서 팔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지금도 많습니다. 한 번 구매하면 되팔기 어려울 것 같아 ‘환금성’ 문제가 컸지요. 블루칩 작가들의 그림은 낙찰률이 70%에 달해 상가(20~30%), 오피스(50%)보다 높아요.”
김 대표는 스스로 컬렉터이기도 하다. 소유한 그림을 골프장이나 일반 상업공간에 소액의 대여료만 받고 빌려준다.
“멋진 그림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습니다. 미술 작품을 투자 대상으로만 본다는 비판도 있지만, 미술 작품 자체가 재테크 수단이자 똘똘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야 전체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이 그림의 주인은 고액자산가가 아니다. 각각 244명, 159명의 사람이 공동 소유하다가 되팔았다. 이 거래를 가능하게 한 건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 2018년 10월부터 지금까지 162점의 그림이 아트앤가이드에서 거래됐다. 누적 공동구매 금액은 약 412억원. 이 중 90점이 매각됐고, 평균 가격 상승률은 30.5%를 기록했다. 국내에 미술품 공동구매라는 개념조차 없던 2016년 혁신적 플랫폼을 만든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41)를 서울 역삼동 전시장에서 만났다.
10억원짜리 그림, 10분 만에 팔린다
전시장과 수장고에는 공동구매 예정이거나 매각이 확정된 작품들이 빼곡했다. 블루칩 작가의 그림을 누구나 살 수 있게 한 그는 “미술이 특정 계층의 향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금융시장처럼 만드는 게 문화예술 선진국으로 가는 시작”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림을 좋아하는 회계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화실을 다녔는데, 부모님 반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해 회계사가 됐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과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를 다니며 아트펀드 투자보고서를 쓰고 미술 시장을 분석하면서 “왜 좋은 그림들은 항상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사고 팔릴까”라고 생각했다. 보고서로는 알 수 없는 미술 현장이 궁금했다. 30대 초반 잘나가던 회사를 관두고 간송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 기획과 운영, 계약과 재무 회계 등을 총괄하며 대구 간송미술관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아트 딜러들을 쫓아다녔다. 폐쇄적인 거래 문화, ‘주먹구구식 유통’이 관행이던 미술계 안에서 어떤 그림이 좋은 것이고, 누가 사고파는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신진작가 판화 등을 직접 사며 “아트 딜링에도 어떤 로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눈엔 미술시장의 문제들이 보였다. ‘컬렉터들은 돈을 버는데, 작가들은 왜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들까.’
좋은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의 이미지 저작권을 사서 판화로 찍어 판로를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 이 일은 아트앤가이드의 씨앗이 됐다.
공동구매 플랫폼을 만들 당시 창업 자금은 200여만원.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첫 공동구매할 그림을 샀다. 미술계는 물론 금융계에서도 그의 창업 아이템에 대해 “미쳤다”고 했다. “분명 곧 망할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믿고 투자하는 미술시장 만들고 싶었다”
“사람이 중요했어요. 미술시장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직원을 꾸렸어요. 온미술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금융상품을 사고파는 것처럼 접근하면 위험이 크죠. 수십억원짜리 작품을 거래해본 사람, 그 거래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인공지능(AI)의 데이터와 만났을 때 시너지가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간송에서의 경험, 딜러들을 보며 학습한 결과는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의 성공적 안착으로 이어졌다. 2018년 10월 공동구매 첫 작품은 김환기의 산월(1963). 4500만원짜리 작품을 올리자마자 19명의 투자자가 모여 7분 만에 팔려나갔다. 이 그림은 한 달 뒤 유럽 컬렉터에게 5500만원에 매각됐고, 22%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한 사람당 최대 5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는데 2년 내 목표 수익률 20%를 달성하면 매각합니다. 보통은 1년, 짧은 건 한 달 만에도 매각하고요. 공동구매 참여자는 대부분 일반 직장인이거나 은퇴한 자산가입니다.”
AI와 빅데이터가 알려주는 ‘그림의 가격’
조각 투자, NFT(대체불가능토큰) 등 미술시장에 ‘투자 바람’이 불고 있는 요즘 아트앤가이드가 후발 업체들과 다른 점은 명확하다. 최초의 미술품 온라인 공동구매를 만든 곳, 소위 ‘돈이 되는’ 블루칩 작품들만 다룬다는 점, 한 작품을 다수의 구매자끼리 같은 시점에 사고 같은 시점에 판다는 점,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회사가 모든 작품에 5~10% 함께 투자하는 점이 그렇다.“회사가 소유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공동구매자로 참여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이익 극대화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리스크도 함께 떠안는 셈이죠.”
공동구매 가격과 매도 가격을 정하는 구조도 다르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작가와 작품의 평균 거래 가격을 책정하고, 매수와 매도 시점을 정한 뒤 수익률이 그 이상일 때 판다. 회사엔 개발자만 20명이 넘는다. 매일 국내외 경매 정보 등을 분석해 데이터로 만든다. ‘부르는 게 값’이던 미술품 가격을 정확한 정보와 추이로 마치 주식 시황처럼 분석한다는 얘기다.
낙찰률 70%↑‘블루칩’만 다루는 이유
아트앤가이드의 혁신은 미술시장을 환금성이 좋은 금융시장으로 만드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옥션에서 낙찰률 70% 이상인 유명 작가들만 골라 지금까지 제프 쿤스, 구사마 야요이, 살바도르 달리, 장 미셸 바스키아, 이중섭,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등의 작품이 공동구매 대상에 올랐다. 기록도 많다.문형태의 ‘다이아몬드(2017)’는 지난해 7월 공동구매해 최고 가격 상승률(600%)을 기록했다. 구사마의 ‘튤립Ⅰ(2000)’은 20초 만에 팔려 최단 시간 판매 작품이 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새끼 염소와 관중이 있는 바쿠스 축제(1959)’는 19일 만에 되팔아 최단 위탁 기간 기록을 갖고 있다.
“그림을 사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지, 만약 그림을 샀는데 언제 어디서 팔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지금도 많습니다. 한 번 구매하면 되팔기 어려울 것 같아 ‘환금성’ 문제가 컸지요. 블루칩 작가들의 그림은 낙찰률이 70%에 달해 상가(20~30%), 오피스(50%)보다 높아요.”
김 대표는 스스로 컬렉터이기도 하다. 소유한 그림을 골프장이나 일반 상업공간에 소액의 대여료만 받고 빌려준다.
“멋진 그림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습니다. 미술 작품을 투자 대상으로만 본다는 비판도 있지만, 미술 작품 자체가 재테크 수단이자 똘똘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야 전체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