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겨냥한 전통 양조장의 변신
지난달 말 방문한 서울 송파구 문정동 한식주점 ‘푼주(PUNJU)’. 1925년 설립한 경기 양평의 ‘지평주조가 최근에 문을 연 식당이다. 1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막걸리 회사에서 개점한 식당이지만, 젊은 세대의 세련된 입맛을 사로잡는 트렌디한 음식이 메인이다. 전, 탕 등 보수적인 전통 한식이 대다수였던 기성 막걸리 식당들과 달리 양식과 일식 등을 골고루 접목한 퓨전 한식 음식을 다수 마련했다
푼주는 대한민국 요리명인 김세진 셰프(요리사)가 그날그날 알아서 특선요리를 제공하는 '맡김차림'(오마카세) 레스토랑이다. 전통공예작가 전상근의 4단 주병합을 활용한 시그니처 메뉴 ‘주병합 타파스’가 대표적이다. 타파스는 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소량의 한입거리 음식을 뜻한다. 스페인 요리인 타파스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개발한 메뉴다. 김부각과 아귀간, 단새우를 활용한 타파스와 문어 타파스, 참치육회 타파스, 파인애플 칩 등이 포함됐다.
지평주조는 최근 선보인 ‘석탄주’, ‘부의주’, ‘백화주’ 등 프리미엄 막걸리 3종을 푼주에서 한정 판매 중이다. 알코올 도수는 8.5도에서 12도까지 다양하다. 푼주는 이 회사의 신제품을 알리기 위해 식당과의 협업으로 진행하는 '푸드 페어링' 마케팅의 일환이다. 재미와 새로운 맛, 세련된 분위기를 탑재한 차별화된 식당과 ‘색다른 술’을 찾는 2030세대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다고 지평주조는 설명했다. ‘막걸리는 중장년층의 술’이라는 기존 인식을 깨는 접근이다. 오랜 기간 ‘서민의 술’ 막걸리를 빚어온 전통 양조장들의 마케팅이 젊어지고 있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막걸리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자 ‘아재 술’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 층에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근 막걸리 증흥은 20~30세대(MZ세대)가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MZ세대가 전통 막걸리 대신 이색적이면서 고급스러운 막걸리를 선호하면서 막걸리 산업이 활성화하고 있다. GS25가 막걸리를 구매하는 고객 구성비를 분석한 결과 2030세대가 2020년 6월 27.1%에서 2021년 6월 33%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16년 이전까지 3000억원대에 그쳤던 국내 막걸리 소매시장 규모는 지난해 5000억원을 돌파했다. 이에 막걸리 업체들은 MZ세대 소비자들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MZ세대가 막걸리 시장의 주축으로 떠오르자 다양한 미식 경험을 추구하는 이들의 취향에 맞춘 마케팅과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1957년 경기 포천에 설립한 ‘이동주조’는 올 초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젊은 세대를 공략한 막걸리 펍 ‘디이막’을 열었다. 디이막에서는 ‘치맥’(치킨+맥주)과 같이 막걸리에 치킨을 먹을 수 있는 ‘막후’(막걸리+후라이드 치킨)와 함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스파클링 막걸리를 선보인다.
국내 1위 막걸리 업체인 ‘서울장수’는 이달 초 주력 제품 ‘장수막걸리’를 12년 만에 새로 단장했다. 장수막걸리를 상징하는 초록색과 함께 제품명을 전면에 배치해 젊은 감각을 입히는 데 집중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막걸리 업계가 재료와 서비스 등으로 차별화를 꾀하면서 저변이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