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535만명 유튜브의 '숨은 주역'
고지현·박영훈 더키트 대표
3주 뒤 고기 불판은 토트넘의 현역 최고 선수들이 뛰고 있는 훈련장으로 옮겨 갔다. 최상급 한우 꽃등심을 손흥민과 에릭 다이어 등이 상추에 싸서 먹는 이 영상의 조회수는 1139만 회. 전 세계 축구팬들은 물론 유튜브 먹방을 즐겨 보는 사람들까지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이 콘텐츠들의 주인공은 535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9년차 유튜버 ‘영국남자’다. 영국남자는 2013년 런던의 길거리에서 한국식 커피 믹스를 길거리 사람들에게 맛보라고 건네며 ‘한국 음식 전도사’로 나선 조쉬 대럴 캐럿(33)이다. 지금은 한국의 식품과 외식 기업들이 자사의 제품을 알리기 위해 함께 제작하는 ‘브랜디드 콘텐츠’를 수없이 요청하고, 한국관광공사 등의 협업 요청도 끊이지 않는 ‘한국 음식 문화 대사’가 됐다.
9년째 500만 구독자가 보는 남다른 ‘먹방 채널’
음식을 주제로 하는 이른바 ‘먹방’이 흔한 세상이다. 유튜브 채널에서 음식을 주제로 다루는 인플루언서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영국남자는 조금 다르다.세계인에게 한국의 음식을 알리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진짜’ 한국 음식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영국남자는 오래됐다. 9년째 5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최장수 유튜버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파워 유튜버들의 할아버지’로 불린다.
영국남자의 뒤엔 9년간 ‘콘텐츠 실험’을 함께해온 든든한 한국인 친구들이 있다. 1986년생 동갑내기 고지현, 박영훈 더키트 대표다. 이들은 어느 유튜브 이벤트에서 만났다. 고 대표는 “영국남자를 통해 세상에 없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세 명의 크리에이터는 축구 선수들에게 불닭볶음면을 소개하고, 유명 배우들에게 인삼주에 족발, 막국수를 차려주기도 한다.
이들은 이제 유튜브 밖에서도 돈을 벌기 시작했다. 캔김치 피키위키를 만들자마자 곧 바로 아마존과 자사몰을 통해 전세계 180개국 소비자에게 판매를 시작했다. 미국 월마트 등 바이어들이 먼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제품을 알게 됐는데 입점할 수 있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영국에 한국식 길거리 토스트 가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 음식을 ‘콘텐츠 킬러’로
조쉬는 영국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중국으로 건너가 6년간 칭다오의 국제학교에 다녔다. 당시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와 음식을 접했다. 조쉬는 “중·고생 때 한국인 친구들과 시간을 주로 보내며 한국인의 정서가 내 정체성 중 하나가 됐다”며 “1년간 고려대 교환학생으로 있던 시절에 진짜 한국을 더 잘 알게 됐고 특히 전국 곳곳에 지역마다 다른 음식들이 뿌리 깊은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했다.영국에 돌아가 그는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친구 올리와 함께 길거리의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한국의 음식을 선보였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한국에 데리고 와 현지 한국 음식 문화도 체험하게 했다. 이 기획에 고지현 대표와 박영훈 대표가 힘을 보태며 가속도가 붙었다. 고 대표는 2012년 CJ ENM의 DIA TV 설립 멤버로 참여했고, 박 대표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한국 문화 알리기에 나선 경험이 있다.
고 대표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단지 일회성으로 휘발하는 것이 많았는데, 더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지속가능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식은 언어 장벽이 없어 세계인에게 다가가기에 최적의 아이템이라고도 생각했다고. 그는 “TV, 영화 등 정해진 틀 안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조직에서 일했지만 디지털 플랫폼이 열리는 시기에 ‘새로운 세계가 오고 있구나’ 깨달았다”며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돈도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캔김치 만들어 월마트로…런던 토스트 팝업도 대박
영국남자와 더키트에도 위기는 있었다. 다른 경쟁자들이 비슷한 채널을 만들어 따라왔다. 상당수 채널은 마구잡이로 콘텐츠를 급조해 광고를 붙이는 비즈니스 모델로 단기 수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국남자와 더키트는 수년간 ‘장비와 콘텐츠 재투자’에 힘썼다. 쓸데없는 광고는 배제하고 영국에 사는 현지인의 시각에서 진짜 궁금한 콘텐츠만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돈이 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대상을 고민하지 않고 공급자 마인드가 중심이 되면 유튜브 콘텐츠는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에 몰입하고, 그 콘텐츠의 질을 높여가 커뮤니티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결국 자연스럽게 돈도 벌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거지요.”(고지현 대표)
조쉬는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영국남자 채널을 운영해오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하지만 곧 기회가 됐다. 수많은 한국 식품 기업이 찾아와 영국에서 우리 제품으로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런던에서 연 ‘길거리 토스트 팝업’과 ‘토스트 레스토랑’도 대박이 났다. 현지인들이 긴 줄을 서서 먹는 영상은 550만 명 이상이 조회했다.
“K푸드의 잠재력은 엄청납니다. 여러 조사에서 ‘코로나 이후 가고 싶은 나라’에 한국은 항상 압도적 1위를 하고 있지요. 영국남자가 오래된 장수 채널이라고요? 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