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어령 손끝에서 어느덧 600호…<문학사상> 50년 역사를 빚어내다
“문단의 문학을 철저히 파괴해 만인의 문학이 될 수 있게 하겠다.”

1972년 10월, 30대의 ‘젊은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사진)은 문예지 <문학사상> 창간호에 이 같은 문장을 적었다. 기성 작가들의 글을 단순 소개하지 않고, 신인을 적극 발굴하며 새로운 문학의 장을 열겠다는 선언이었다. ‘모두의 문학’을 표방한 <문학사상>은 창간호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표지는 구본웅 화백이 그린 ‘천재시인’ 이상의 초상화. 발행 1주일 만에 초판 2만 부가 소진돼 부랴부랴 재판을 찍었다.

[책마을] 이어령 손끝에서 어느덧 600호…<문학사상> 50년 역사를 빚어내다
이렇게 시작된 <문학사상>이 600호를 맞았다. 1972년 10월 첫 호를 낸 지 50년 만이다. 국내에서 월간 문예지가 600호를 발행한 건 <현대문학>에 이어 두 번째다.

50년간 <문학사상>은 창간 일성대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설가 강석경, 성석제, 윤대녕과 시인 정끝별 등이 이 잡지 신인상을 통해 문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1970~1980년대 <문학사상>은 문단의 ‘특종’ 매체로도 이름이 났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소실된 문학 관련 자료를 대거 발굴하면서다. <문학사상>은 자체 자료조사연구실을 두고 윤동주, 이상, 김소월의 미발굴·미발표 작품을 찾아 소개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작가나 문학 연구자를 ‘특파원’으로 임명해 해외 문단 소식을 전하도록 한 것도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영문학자 고(故) 최월희 뉴욕대 명예교수, 불문학자 고(故) 유평근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한때 <문학사상> 특파원을 지냈다.

화가들이 문인의 얼굴을 그린 특유의 표지도 유명하다. 이제는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요즘은 매달 문인 한 사람의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한다.

마침내 <문학사상>은 반세기의 금자탑을 쌓았지만 앞길은 녹록지 않다. 출판 시장 위축으로 문예지를 찾는 독자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여서다. 2020년에는 <문학사상>을 발행하는 문학사상사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저작권 부당 계약 논란에 휩싸였고, 작가들이 <문학사상> 기고를 ‘보이콧’하는 일까지 겪었다.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권영민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번 600호에 실은 글 제목은 ‘새로운 50년을 위한 도전’이다. 권 주간은 “우리 문학을 이끌어 온 순수 문예지가 대부분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며 “우리 문학의 위상은 문학에 대한 사회문화적 지원과 관심과 참여로 더욱 높아지고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학사상>은 600호 첫 페이지에 창간호의 창간사를 다시 실으며 발행 취지를 되새겼다. “상처진 자에게는 붕대와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폐를 앓고 있는 자에게는 신선한 초원의 바람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역사와 생을 배반하는 자들에겐 창끝 같은 도전의 언어, 불의 언어가 될 것이다.”

<문학사상>은 앞으로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른 작가와 독자의 실시간 연결, 한국문학의 세계화 등 문학과 사상에 대한 폭넓은 고찰을 담아내겠다는 계획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