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관 여행에 미치다 대표가 페루 와라즈에 있는 ‘파론 호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곳을 “잊지 못할 여행지” 중 하나로 꼽았다.  /여행에 미치다 제공
조병관 여행에 미치다 대표가 페루 와라즈에 있는 ‘파론 호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곳을 “잊지 못할 여행지” 중 하나로 꼽았다. /여행에 미치다 제공
“여행에 미쳐 무작정 떠난 세계일주, 중남미에서만 정처 없이 8개월을 돌았어요. 그 작은 모험이 오늘날 ‘여미(여행에 미치다)’의 시작이 됐습니다.”

얼마 전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조병관 여미 대표는 “여행에 미쳐서 여행가 외엔 다른 직업을 가져 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 38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여행 커뮤니티 ‘여미’를 이끌고 있다. 그와 함께하는 팀원은 총 17명이다. 그는 “제가 말만 대표지, 사실은 모두 커뮤니티의 시작부터 봐 온 오랜 친구들”이라며 웃었다.

그는 ‘블로그 글’ 하나가 자신의 삶을 뒤집어 놓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교 졸업 전에 기나긴 취업준비생 생활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공모전에 참가할 참고 자료를 얻으려다 우연히 어떤 블로그를 보게 됐어요. 블로그 주인이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했는데, 그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더군요.” 그는 취업 준비를 하다 말고 무작정 휴학계를 냈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잠재울 수 없었다.
블로그 보고 훌쩍 떠나 380만 구독자 모은 '여행에 미친 남자'
무작정 호주로 훌훌 떠났다. 시간은 넘쳐나는데 없는 게 있었다. 돈이 없었다. ‘무일푼’의 여행자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대형 화물트럭 세차를 했다. 그는 “몸은 힘들었지만 말 그대로 여행에 미쳤던 시절이라 돈을 벌어 어디론가 떠날 생각만 하면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지구촌 곳곳을 흘러 다녔다. ‘세계일주에 성공했느냐’는 질문엔 “자발적으로 실패시켰다”는 답을 내놨다. “첫 목적지가 남미였는데, 발을 딛는 순간부터 ‘아 여기서 나가기는 글렀다’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결국 남미에서만 8개월 동안 떠돌며 지냈다”고 했다.

그는 남미 생활을 매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일기처럼 시작한 글은 여행자들에게 퍼지고 퍼져 그는 어느새 ‘남미 여행 전도사’가 됐다. “그 무렵 수많은 여행자에게 연락받았어요. 여행 커뮤니티를 같이 만들자는 제안이었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여미’팀입니다.” 여미는 페이스북 속 작은 커뮤니티로 시작했다. 팀원들이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회원들 또한 직접 다녀온 여행지의 사진과 감상을 남기는 창구였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미가 선보인 여행 영상, 사진, 그리고 여행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을 합한 구독자가 순식간에 38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청춘유리, 박막례 할머니 등 스타 여행작가와 인플루언서도 함께 성장했다. 이들의 인기 비결은 ‘다른 것’에 있었다. 접하기 어려웠던 오지, 각종 소도시 등 다른 이들이 보여주지 않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조 대표는 “‘나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며 “타인의 경험을 소개해주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게 목표였고, 나름 성공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블로그 보고 훌쩍 떠나 380만 구독자 모은 '여행에 미친 남자'
조 대표가 말하는 여미가 가진 가장 큰 차별성은 바로 ‘시작점’이라는 데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여행 자체를 ‘가고 싶게 만드는’ 커뮤니티라는 것.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 때도 이미 예약이나 검색을 도와주는 플랫폼은 수없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들은 모두 여행을 결정한 뒤에 도움을 주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후 커뮤니티들은 활성 이용자가 많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정보를 얻고 그 이후 바로 그 플랫폼을 이탈하기 때문이지요.”

사업의 위기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해외여행 콘텐츠를 만들던 이들은 갈 길을 잃었다. 그때 조 대표는 국내 지방 도시들로 눈을 돌렸다. “지방의 여러 도시가 방문객이 없어 점점 소멸 도시가 돼 간다는 걸 알게 됐다”는 그는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국내에도 보석 같은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여미는 여러 지방 도시와 협업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첫 번째 주자는 경남 하동군이었다. 관계자들과 한 달 넘게 머리를 맞대고 콘텐츠를 구상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매체에 걸쳐 하동의 숨은 놀거리를 영상, 퀴즈, 이벤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보였다.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협업 이후 방문객이 한 해 30% 이상 급증했다. 하동군 여행인구 사상 최다 인원(연인원 520만 명)이었다.

그 이후 러브콜이 쏟아졌다. 지방자치단체들과 크고 작은 도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협력 제안서를 보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주춤해지자 해외 관광청까지 줄을 섰다. “여미가 가진 트래픽과 이용자 수의 힘을 활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 대표는 협업하면서 아쉽고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다. 국내 여행지들이 그저 유행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는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싶은 도시나 기관은 단순히 머릿수만 늘리겠다는 목표만 있고 왜 이곳으로 여행을 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거 같다”며 아쉬워했다.

여미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 ‘국내 여행 홍보대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조 대표는 “특산물이나 명소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리는 게 중요하다”며 “우리는 지역마다 갖고 있는 강점을 키워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자체 플랫폼 커뮤니티를 열고, 지역 관광자원을 콘텐츠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브랜드들과도 폭넓게 손잡을 계획이다. 국내 각 지역에 여미 이름을 내건 숙소와 여행상품을 개발하고 빵이나 식당 같은 식음료 협업도 이뤄낸다. 조 대표는 “여미와 함께 각 지역이 여행산업 자생력을 키워갈 수 있고, 더 나아가 관광 인프라도 구축하게끔 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