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무엇을 위해 청새치와 싸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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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서의 이유 있는 고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살아온 모든 삶을 몽땅 쏟아 낚싯줄을 당긴다!”
이 강렬한 문장은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페스티벌에서 9~10일 소리꾼 이자람이 선보인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의 한 대목이다.
이자람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바탕으로 직접 노랫말을 쓰고 가락을 붙였다. 그가 부채를 낚싯줄처럼 거머쥔 채 혼신의 힘으로 끌어올리는 이 대목에 접어들면 관객의 눈에는 텅 빈 무대도 망망대해 위 고깃배처럼 보인다.
이자람이 쓴 노랫말은 소설의 주제를 관통한다. <노인과 바다>는 고기잡이 노인 산티아고의 고독한 사투를 다룬 작품이다.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를 낚지 못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먼 바다로 나아간다. 마침내 낚싯줄에 그의 조각배보다도 크고 힘센 청새치 한 마리가 걸린다. 노인의 몸으로 사흘 밤낮 사투를 벌인 끝에 청새치를 낚지만, 배에 청새치를 묶고 마을로 돌아오다가 상어떼의 습격을 받는다. 기진맥진 돌아온 그의 배에 남은 건 청새치의 앙상한 뼈뿐이다.
<노인과 바다>는 미국의 종군기자이자 소설가 헤밍웨이가 1952년 발표한 작품이다. 헤밍웨이가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걸작이다. 살아서 마지막으로 출간한 작품이라 ‘헤밍웨이 문학의 결정판’으로 통한다.
헤밍웨이가 평소 주장한 ‘빙산이론’대로 작품은 8분의 1만 모습을 드러내고 나머지 대부분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빙산 같다. 작품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해석을 하게 만든다.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절제된 문장도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산티아고와 청새치의 대치는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보여주고, 삶의 터전에서 날마다 생존 경쟁을 치르는 인간의 비애를 묘사한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애쓰는 노인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기독교적 상징도 깃들어 있다. 주인공 산티아고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어부 ‘야고보’의 스페인어식 표기다.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다가 손바닥에 상처를 입는 장면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평생의 자랑이 될 청새치를 낚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산티아고의 모습과 고뇌하는 예술가 헤밍웨이도 겹친다. 전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출간한 이후 헤밍웨이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종말을 맞았다고까지 했다. 마치 젊은 어부들이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산티아고를 비웃었듯이. <노인과 바다>를 통해 헤밍웨이는 자신이 아직 예술적으로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인생은 넓은 바다처럼 아득하다. 산티아고는 평생 바닷일을 해왔지만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치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저 날마다 도전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년 한 해에 우리에게 어떤 파고 혹은 순풍이 밀려올지 지금은 짐작할 수 없다. 청새치와의 사투를 통과한 산티아고의 독백은 그래서 잔잔한 물결처럼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이 강렬한 문장은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페스티벌에서 9~10일 소리꾼 이자람이 선보인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의 한 대목이다.
이자람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바탕으로 직접 노랫말을 쓰고 가락을 붙였다. 그가 부채를 낚싯줄처럼 거머쥔 채 혼신의 힘으로 끌어올리는 이 대목에 접어들면 관객의 눈에는 텅 빈 무대도 망망대해 위 고깃배처럼 보인다.
이자람이 쓴 노랫말은 소설의 주제를 관통한다. <노인과 바다>는 고기잡이 노인 산티아고의 고독한 사투를 다룬 작품이다.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를 낚지 못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먼 바다로 나아간다. 마침내 낚싯줄에 그의 조각배보다도 크고 힘센 청새치 한 마리가 걸린다. 노인의 몸으로 사흘 밤낮 사투를 벌인 끝에 청새치를 낚지만, 배에 청새치를 묶고 마을로 돌아오다가 상어떼의 습격을 받는다. 기진맥진 돌아온 그의 배에 남은 건 청새치의 앙상한 뼈뿐이다.
<노인과 바다>는 미국의 종군기자이자 소설가 헤밍웨이가 1952년 발표한 작품이다. 헤밍웨이가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걸작이다. 살아서 마지막으로 출간한 작품이라 ‘헤밍웨이 문학의 결정판’으로 통한다.
헤밍웨이가 평소 주장한 ‘빙산이론’대로 작품은 8분의 1만 모습을 드러내고 나머지 대부분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빙산 같다. 작품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해석을 하게 만든다.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절제된 문장도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산티아고와 청새치의 대치는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보여주고, 삶의 터전에서 날마다 생존 경쟁을 치르는 인간의 비애를 묘사한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애쓰는 노인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기독교적 상징도 깃들어 있다. 주인공 산티아고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어부 ‘야고보’의 스페인어식 표기다.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다가 손바닥에 상처를 입는 장면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평생의 자랑이 될 청새치를 낚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산티아고의 모습과 고뇌하는 예술가 헤밍웨이도 겹친다. 전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출간한 이후 헤밍웨이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종말을 맞았다고까지 했다. 마치 젊은 어부들이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산티아고를 비웃었듯이. <노인과 바다>를 통해 헤밍웨이는 자신이 아직 예술적으로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인생은 넓은 바다처럼 아득하다. 산티아고는 평생 바닷일을 해왔지만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치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저 날마다 도전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년 한 해에 우리에게 어떤 파고 혹은 순풍이 밀려올지 지금은 짐작할 수 없다. 청새치와의 사투를 통과한 산티아고의 독백은 그래서 잔잔한 물결처럼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