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원 2층 상설전시장에 필립 콜버트의 ‘셀카를 찍는 랍스터’(2019·왼쪽)와 함명수의 ‘빈센트 반 고흐’(2007·오른쪽) 등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하나은행 제공
하트원 2층 상설전시장에 필립 콜버트의 ‘셀카를 찍는 랍스터’(2019·왼쪽)와 함명수의 ‘빈센트 반 고흐’(2007·오른쪽) 등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하나은행 제공
부자들은 어디에 돈을 쓸까. 먹는 데 쓰는 건 한계가 있다. 부(富)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명품과 자동차에도 관심이 시들해진다.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공산품이라서다. 부동산은 세금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무한정 모으기 어렵다. 결국 이들이 마지막으로 눈을 돌리는 건 미술품이다. 희소가치가 있어 개성과 품격을 과시할 수 있으면서 수익률도 좋은 투자처가 미술 작품이라는 게 부자들의 얘기다. 지난해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자금이 미술 시장에 몰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나은행은 이런 사실을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파악하고 움직인 곳이다. 1995년 국내 최초로 프라이빗뱅킹(PB)을 시작할 때부터 고객들의 미술품 투자를 도우며 노하우를 쌓았고, 2020년에는 서울옥션과 협업해 시중은행 최초로 미술품 전담 PB센터를 열었다. 지난달 9일에는 서울 ‘힙지로(힙하다+을지로)’에 보유한 4층짜리 알짜 건물에서 미술품 자산관리·보관·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H.art1(하트원)’을 열었다. 폐점포인 을지로기업센터지점을 리모델링했다.

서울 을지로 하트원 외관.  /하나은행 제공
서울 을지로 하트원 외관. /하나은행 제공
하트원의 핵심은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3층 공간이다. 콘셉트는 ‘보이는 수장고’. 수장고 느낌을 살리기 위해 문을 은행 금고 입구와 똑같이 제작했다. 이곳에 소장품을 맡긴 고객은 언제든지 찾아와 작품을 볼 수 있다. 다른 고객들과 서로의 소장품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직원들에게 관련 투자 자문 및 소장 작품 평가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김창수 자산관리지원부 팀장은 “서울 시내 다른 수장고들이 모두 포화 상태여서 작품을 맡기고 싶다는 고객 문의가 빗발친다”고 했다.

일반 방문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건 2층이다. 하나은행이 보유한 3000여 점의 미술품 중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취향에 맞춰 엄선한 110여 점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 역시 수장고 콘셉트로 인테리어를 꾸몄다.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 ‘카르마’, 필립 콜버트의 ‘셀카를 찍는 랍스터’ 등 시장에서 각광받는 작품이 즐비하다. 상설 전시는 평일 은행 영업시간(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에 열리며 휴일에는 쉰다.

1·4층과 옥상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간이다. 1층에는 카페가, 4층에는 서울옥션을 비롯한 미술 관련 기업이 발굴·육성 중인 신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신진 작가들이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공헌 차원”이라고 했다. 5층은 루프톱 식당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하트원 개관을 지렛대로 ‘아트 뱅킹’을 대폭 강화해 나가겠다는 게 하나은행의 포부다. 자산가들이 고가의 미술품에 공동으로 투자할 수 있는 ‘하나 파인아트 신탁’ 출시를 준비 중인 게 단적인 예다. 은행이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큰 작품을 선정해 투자자를 모으고 운용한 뒤 수익을 나누는 방식의 투자 상품이다. 은행이 미술품 신탁 상품을 출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미술 시장에 본격 진출하게 되면 막대한 돈이 유입돼 한국 미술시장이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