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의 신"…다빈치 이긴 '국민 화가' 그림 어떻길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떼먹은 돈 갚아라”
황제에 큰소리친 알브레히트 뒤러
탁월한 실력, '자기PR'로
당대 다빈치·미켈란젤로보다 인기 높아
황제에 큰소리친 알브레히트 뒤러
탁월한 실력, '자기PR'로
당대 다빈치·미켈란젤로보다 인기 높아
“그때 그 식당에서 팁을 너무 많이 냈군. 그래도 상대방이 밥을 샀으니…. 계산해보니 이득이야. 아니다, 내가 준 선물값을 생각하면 손해인가. 아쉽다 아쉬워….” 그때 남자의 아내가 침대에서 벼락같이 일어나 소리를 칩니다. “지긋지긋한 양반아, 쪼잔하게 이 밤중까지 그런 거나 계산하고 앉아있어? 빨리 잠이나 자!”
밤늦게 가계부의 자잘한 내용을 챙기던 이 사람, 꼼꼼한 장사꾼인가 싶지만 사실은 예술가였습니다. 그것도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였죠. 그는 이때 ‘떼인 돈’을 받아내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돈을 떼먹은 사람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네덜란드·이탈리아 왕 카를 5세였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세계 최강자’에게 돈을 떼였을 때 ‘똥 밟았다’ 생각하고 참았을 겁니다.
가난해야 예술가? 돈과 미술은 ‘불가분의 관계’
‘진정한 예술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유로운 그의 예술혼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가난하지만 돈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고집하고, 약간 미쳐 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죽은 뒤 재평가를 받고 전설이 되는 그런 인물이지요. 반면 돈에 연연하는 화가들은 ‘속물’이라는 얘기를 듣기가 십상입니다.
사실 미술과 돈은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미술의 본질이 사치품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밥을 굶는 사람들에게 그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 덩어리죠. 하지만 돈이 넘쳐나는 사람에게 미술품은 ‘개성과 품격을 과시할 수 있으면서 수익률도 좋은 투자처’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미술 강국은 상업이 발달한 곳, 미술품 수요자인 부자와 귀족이 많았던 곳, 그래서 그림만 그리고도 먹고 사는 게 가능했던 곳이었습니다. 경제 전성기 베네치아와 스페인, 플랑드르, 프랑스에서 찬란한 미술이 꽃피웠던 것처럼요.
다빈치·미켈란젤로보다 인기 높았던, 뒤러
이런 ‘미술 변방’에서 뒤러는 역사에 남을 만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보다도 인기가 높았을 정도입니다. 이건 그림 실력만 뛰어나다고 거둘 수 있는 성과가 아닙니다. 뒤러의 천재적인 ‘기업가 정신’이 이런 업적을 가능케 했습니다. 요즘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뒤러의 전략은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그의 삶과 성공 비결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너무도 뒤러다운’ 최후
안타깝게도 막시밀리안 1세는 뒤러가 초상화를 완성하기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기사 앞머리에서 언급했던, 그의 손자 카를 5세가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됐습니다. 문제는 중간에 일이 꼬이면서 뒤러가 약속한 보상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 호락호락하게 돈을 떼먹힐 뒤러가 아니죠. 그는 카를 5세의 대관식까지 찾아가 약속했던 돈을 기어이 받아내고야 맙니다.하지만 이 여행은 공교롭게도 뒤러가 죽음을 맞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행 중 뒤러는 근처 해안에 죽은 고래가 떠밀려 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평생 내륙 지방에 살던 뒤러, 고래를 한번 보고 싶어서 헐레벌떡 달려가는데요. 도착해 보니 아쉽게도 고래는 파도에 떠밀려가 있었고, 너무 열심히 뛰어가서 그랬는지 열병에 걸립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 후유증에 계속 시달리다가 8년 뒤인 1528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하지만 뒤러의 유산은 미술사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화가들은 뒤러 이후 적극적으로 자기 작품을 알리고 브랜드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뒤러가 선진 미술을 전파한 덕분에 독일을 비롯한 중북부 유럽에서 새로운 미술 사조가 꽃피기 시작했고요. 수준 높은 판화를 제작한 덕분에 유럽에서 시각예술이 대중화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최근 네이버 구독자 1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덕분입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