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망쳐도 된다고 하니까 20대때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하태임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제 작품을 잠깐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21년 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2002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이동재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 앞에 한 작가가 불쑥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20대 신진작가’ 하태임(50·사진)이었다. 이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하도 간절해 보여 하 작가의 부스로 들어갔다. 그는 팔짱을 끼고 작품을 한참 바라보다가 명함 한 장을 주며 말했다. “저희 갤러리 한 번 찾아오세요.” 하 작가와 아트사이드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하 작가는 2004년을 시작으로 아트사이드에서만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달 2일 개막한 ‘그린 투 그린’은 아트사이드에서 여는 네 번째 전시다. 20여 년이 흐르면서 하 작가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작품이 없어서 못 판다’는 상황이다. 그의 작품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컬러 밴드(색띠)’ 작품은 전시가 열릴 때마다 완판 행진을 기록한다. ‘진정한 소통은 문자가 아닌 색에 있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하 작가는 ‘마음의 고향’ 아트사이드에 돌아오니 이동재 대표에게 거침없이 자신을 알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니 불안정하고 어려웠으면서도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이곳에 돌아오니 그런 용기가 다시 생겼어요.”

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여러 가지 도전을 펼쳤다. 이동재 대표의 딸인 이혜미 대표가 옆에서 “모든 걸 시도해봐도 괜찮다” “망쳐도 된다”고 북돋아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천장에 알루미늄 막대와 섬유 밴드를 매달아서 만든 ‘비트윈 그린 앤 그린’(2023)이 대표적이다. 회화작품을 주로 선보인 하 작가로선 새로운 시도다. 2차원의 캔버스 안에 갇혀 있던 컬러 밴드가 3차원의 공간으로 뛰쳐나온 모습으로 역동성을 표현했다. 작품에 우연성을 더한 것도 새롭게 바뀐 점이다. 그동안은 한 치의 오류도 없는 깨끗한 색띠를 그려왔지만, 이번엔 우연히 캔버스에 떨어진 물감, 여러 겹의 색깔을 덧칠한 흔적 등을 그대로 내보였다. 전시는 4월 1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