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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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시간이다. 침체장을 뜻하는 ‘베어마켓’은 곰의 앞발에 짓눌린 듯 주식 등 자산 가격이 하락한 상황을 뜻한다. 널뛰는 환율과 급격히 오른 금리, 지정학적 갈등…. 최근 코스피지수가 8개월 만에 간신히 종가 기준 2500선을 회복했지만, 주식시장을 둘러싼 불안감은 여전하다.

주식 아는 사람들은 하락장을 더 사랑한다 [책마을]
‘셀 인 메이(sell in may)’를 앞둔 것도 투자자들을 잠 못 들게 한다. ‘5월엔 주식을 털고 떠나라’라는 증시 격언은 통계적으로 5~10월 주식시장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생겨났다. 이처럼 과거는 불확실한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근거다.

세계적 금융시장 전략가이자 금융 역사가인 러셀 내피어는 <베어마켓>에서 과거 사례를 통해 침체장 대응 전략을 모색한다. 1921년 8월, 1932년 7월, 1949년 6월, 1982년 8월. 미국 증시 역사 속 네 번의 침체장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 7만 건과 당시 시장의 각종 데이터를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그는 경제신문 1면을 “정보의 금맥”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투자전략서다. 침체장의 패턴을 알면 바닥, 즉 가장 싼 가격에 주식을 주워 담을 시점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침체장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까?> 정도가 될 것이다. 침체장이란 주가가 낮아졌다는 의미다.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입장이라면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을 마다할 리 없다. 마찬가지로 투자자도 싼 가격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침체장을 피하면 자산을 보호할 수 있지만 주식시장의 장기 실질수익률을 고려할 때 침체장에서 싸게 사면 훨씬 더 높은 수익률로 자산을 늘릴 수 있다.”

내피어는 ‘바닥을 알리는 신호’로 크게 다섯 가지를 꼽는다. 토빈의 Q비율, 자동차 판매량, 미국 중앙은행(Fed)의 지속적인 금리 인하, 물가 안정, 그리고 채권시장 회복이다.

Q비율은 제임스 토빈 예일대 교수가 제시한 지표다. 기업의 시장 가치를 기업의 실질 순자산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책에서 분석한 네 번의 반등 시기에는 모두 Q비율이 0.3 이하로 떨어졌다. 자동차 판매량은 많이 알려진 선행지표다. 경기가 침체하면 자동차 가격이 내려가고 금리도 떨어져 구매비용이 낮아지는데, 이에 따라 수요가 늘어난다.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떠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 번의 역대 침체장을 분석하는 과정 틈틈이 투자에 써먹을 만한 전술이 녹아들어 있다. 500쪽 넘는 ‘벽돌책’을 꼼꼼히 읽어야 투자 전략을 얻을 수 있다. 물고기 낚는 법을 스스로 익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고 대단한 인내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일단 읽는 맛이 있다. 네 번의 역대 침체장에 대한 이야기가 한 장씩, 네 장에 걸쳐 이어진다. 각 장은 <위대한 개츠비> 등 20세기 고전 작품을 인용하며 문을 연다.

책의 끈질긴 생명력이 ‘과거에서 배운다’는 책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책은 베어마켓 때마다 독자들이 집어드는 ‘침체장 투자 바이블’로 자리 잡았다. 200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세 차례 개정됐다. 책을 찾는 독자가 꾸준히 이어졌고, 저자도 부지런히 책 내용을 업데이트하며 독자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의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그해 개정판으로는 드물게 해마다 미국 증시의 패턴을 분석하는 권위 있는 책 <주식투자자연감>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국내에선 2009년 출간됐다가 절판됐다. 이후 중고책 시장에서 정가의 10배가 넘는 30만원 안팎에 거래될 정도로 이 책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는 누락된 원고와 새로운 서문을 넣었다. 번역도 다시 다듬었다. 내피어는 새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이 미래에 곰(침체장)이 숲에서 갑자기 나올 때 안전하게 피할 자리를 마련해준 뒤,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돕는 좋은 안내서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