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배우 이태성 "미술에 대한 진심 보여줄 것"
미국 뉴욕은 1년 내내 세계 미술 애호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열리기 때문이다. 작년 9월, 그중 하나인 어포더블아트페어에서 국내 화가가 출품한 그림 두 점이 오픈하자마자 팔렸다. 작품의 주제는 ‘숨’. 코로나19 시기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활동인 숨쉬기가 서로를 아프게 한다는 점에 착안한 독특한 작품이었다.

작품을 그린 사람은 21년차 배우 이태성(38·사진)이다. 영화 ‘사랑니’, 드라마 ‘9회말 2아웃’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9년째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달 30일까지 서울 논현동 아트인사이드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이 작가는 “연예인이 명성을 앞세워 미술 영역을 넘본다는 지적이 많은데, 내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국에서 오직 작품으로만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미술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군대에 있을 때다. 군복무 기간 연기를 하지 못하는 갈증을 풀기 위해 우연히 잡은 4B연필이 계기가 됐다. 떨어지는 낙엽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 풍경을 스케치하다 보니 우울한 마음이 진정되는 듯했다. 휴가 때면 온종일 화방을 돌아다니며 색연필, 파스텔 등을 사들이기도 했다.

모든 건 독학이었다. 수시로 유튜브를 통해 유명 화가의 인터뷰와 작업 과정을 찾아봤다. 그는 “중간중간 ‘일시정지’를 눌러가며 영상 끄트머리에 살짝 잡힌 도구나 재료도 모조리 구해서 써봤다”며 “시중에 나온 물감과 붓은 다 써봤을 정도”라고 했다.

시작은 연기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서였지만, 곧 그림은 ‘본업’만큼 그에게 중요한 일이 됐다. “드라마 촬영이 없을 땐 하루 12시간씩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고, 촬영이 있을 때도 짬을 내서 3~4시간씩 그려요. 그림은 배우일 땐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통로거든요. 드라마는 정해진 각본 안에서 연기해야 하지만 그림은 제가 100%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할 수 있잖아요.”

이번 개인전은 그가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감독의 마음으로 준비한 전시다. 전시 제목인 ‘이너 모놀로그’(내적 독백)는 드라마 각본에서 쓰는 용어다. 모놀로그가 배우가 혼잣말을 하듯 대사를 하는 것이라면, 이너 모놀로그는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배우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인물의 진짜 속마음을 괄호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제목처럼 전시를 준비하면서 계속해서 스스로 되물었다고 했다. ‘왜 그림을 그릴까?’ ‘왜 이 색깔을 썼을까?’…. 자신의 속마음을 들으며 새롭게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선보인 ‘포워드’ 시리즈는 그 결과다. 우선 캔버스부터 바꿨다. 황마 특유의 거친 질감을 제대로 내기 위해 구하기 힘든 이탈리아산 황마 캔버스를 꼬박 1년을 기다려 샀다. 그 위에 금박을 입힌 뒤 100번 넘게 붓질을 올렸다. 검정에 가까운 진한 보라색, 투명한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이 층층이 겹쳐 어우러진다.

“각기 다른 색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삶을 완성해 나간다고 생각해요. 제 그림이 사람들에게 각자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