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사는 것보다 좋아요"…MZ세대 지갑 연 의외의 물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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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키덜트족'서 '고전 문구' 인기
기존 대비 10배 넘는 가격에 판매
'희소성' 중시하는 가치관 반영돼
기존 대비 10배 넘는 가격에 판매
'희소성' 중시하는 가치관 반영돼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서 만난 이모 씨(33)는 최근 "명품 사는 것보다 '고전 문구' 사는 게 더 행복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헬로키티 탁상시계, 아바타 스티커 북, 포켓몬 피규어(모형 인형) 등 이 씨가 이날 구매한 '고전 문구'만 총 5개. 이 씨는 3개월 전부터 옛 추억에 빠져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문구류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이 씨와 같이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어릴 적 감성과 분위기를 간직하고 싶어 하는 '키덜트족(kidult)'들이 '고전 문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전 문구'는 1990년~2000년대 초반 감성의 문구류로, 오래전 생산돼 지금은 생산되지 않거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문구를 뜻한다. '뉴트로(new+레트로)' 열풍에 더해 최근엔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MZ(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졌다.

MZ세대의 옛 추억을 자극한 소비를 이끈 키덜트 시장의 성장세는 수치로도 증명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 6000억원으로 3배 이상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키덜트 시장이 향후 최대 1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올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내세우기도 했다. '네버랜드'는 피터팬과 친구들이 늙지 않고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곳을 뜻한다. 어린 시절을 동경하면 '철없다'는 취급받던 이전과 달리, 키덜트가 하나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창신동에서 문구류를 판매하는 홍모 씨(55)는 "최근 아가씨들이 아이들보다 더 헬로키티 상품을 많이 찾는 느낌이다"라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만 파는 '희귀 문구'를 사러 왔다고 하는 어른들도 많아졌다. 예전에 안 팔려서 창고에 넣어뒀던 문구를 다시 꺼내뒀더니 어른들 반응이 더 좋다"고 귀띔했다.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보다 대학생, 20~30대 성인들이 더 많은 분위기였다. 자신을 자칭 '문구 수집가'라고 소개한 이모 씨(27)는 "올해 생긴 취미가 어린 시절 봤던 만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 상품을 모아서 진열대에 보관해두는 것"이라며 "추억이 깃든 물건을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고모 씨(24)는 "어릴 적 비싸서 부모님이 사주지 않던 문구를 이젠 돈을 직접 벌어서 직접 살 수 있어 뿌듯하고 좋다"고 말했다.

고전 문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중고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당근마켓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정가 5000원가량 하던 캐릭터 다이어리가 1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세로 20배 넘는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다. 동네 문구점에서 1000원이 넘지 않았던 콤파스 세트는 5000원에, 과거 1000원에 팔렸던 종이 인형이 10만원에 판매되는 등 기존 가격에서 기본 10배 이상 넘는 가격에 매물이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키덜트족들이 고전 문구에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현상은 '희소성'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에서 나온다고 해석했다. 과거에만 판매돼 현재 생산이 중단되고, 희소가치가 있는 문구류를 소지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물건들은 희소가치가 높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이런 물건들은 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끼리 연결되기 쉬운 온라인상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