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짧은 문장이지만, 여운이 긴 명언이다. 역사도 길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기원전 400년께 남긴 말이니 2400년이 넘는다. 그의 <잠언집> 첫머리에 실려 있다. 당시에는 ‘예술’이 오늘날의 예술과 의술, 각종 기술을 아우르는 용어였다.

그리스어 원문에 “인생은 짧고, 테크네(techne)는 멀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불완전하며, 판단은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앞뒤 문맥상 ‘테크네’는 ‘의술’을 뜻한다. ‘우리 인생은 짧은데, 의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이때의 테크네가 라틴어 아르스(ars), 영어 아트(art)로 번역됐다.

이 명언을 널리 알린 사람은 따로 있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다. 그가 저서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에서 “히포크라테스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Vīta brevis, ars longa)’며 인생의 짧음을 얘기했다”고 언급한 뒤 유명해졌다.

여기에 쓰인 아르스(ars)와 영어 단어 아트(art)는 ‘예술’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술’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트(art)가 광범위한 기예(技藝)에서 순수예술을 뜻하는 것으로 세분화된 건 18세기 미술(fine arts)의 개념이 정립된 이후다.

한때 이 명언 속 ‘예술’이 작품의 영원성을 뜻하는 것으로만 쓰이기도 했지만 ‘예술’의 뿌리는 이렇게 깊고 넓다. 19세기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역시 ‘인생 찬가’에서 ‘예술은 길고, 시간은 덧없이 빠르다(Art is long, and Time is fleeting)’고 했다. 할 일은 많은데 삶은 짧다는 것이다.

세네카도 “배움에는 평생이 걸린다”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언을 거울에 비춰 보면 ‘인생은 짧고 배움은 길다’는 문장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흥미롭게도 이 명언을 거꾸로 뒤집은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어느 날 가야금 명인 황병기를 만난 자리에서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말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첨단기술 매체의 ‘광속(光速)’이 인간의 삶만큼이나 덧없음을 갈파한 것이었으리라.

하긴 과학과 기술의 수명 주기는 날로 짧아지고 있다. 반면 인간의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길고 짧은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예술’과 ‘인생’의 잣대가 바뀌는 시대를 살아가려면 2400년 전의 교훈과 함께 젊은 역발상의 지혜까지 체득해야 할 것 같다.

고두현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