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에 입장하려는 관객들이 줄을 서 있다. /리움 제공
리움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에 입장하려는 관객들이 줄을 서 있다. /리움 제공
“그 시절 그 땐 그렇게 갈 데가 없었는지/언제나 조조할인은 우리 차지였었죠/돈 오백원이 어디냐고 난 고집을 피웠지만/사실은 좀 더 일찍 그대를 보고파….”

1996년 나온 이문세의 ‘조조할인’ 가사입니다. 아침 일찍 영화관에서 만나 데이트했던 옛 기억을 노래한 히트곡이지요. ‘영화관 데이트’에 대한 추억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지난 수십년간 영화관은 최고의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영화표 값이 그리 비싸지 않았고, 어색함 없이 1~2시간씩 옆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데다, 영화관을 나와 함께 본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으니까요. 청춘남녀가 갈 만한 다른 데이트 코스가 많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밥을 먹고, 두번째 만남에서 영화관을 가는 식의 ‘공식’이 생겨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남녀들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영화관 데이트 대신 ‘미술관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얘긴데요. 수십년간 ‘대세 데이트코스’의 위치를 유지해왔던 영화관이 미술관에게 자리를 내준 이유가 뭔지, 종합 정리해 봤습니다.

①코로나19, 그리고 티켓값 급등

2020년 코로나19사태 극초기, 확진자가 다녀간 뒤 방역조치를 위해 휴업한 영화관 전경. /한경DB
2020년 코로나19사태 극초기, 확진자가 다녀간 뒤 방역조치를 위해 휴업한 영화관 전경. /한경DB
시작은 코로나19였습니다. 확진자가 늘어나고 방역 조치가 강화되면서 극장에 가는건 부담스럽고 어려워졌습니다. 반사이익은 넷플릭스 등 OTT와 유튜브가 누렸습니다. ‘집콕’ 시간이 늘어난 덕분이었지요.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보다 가성비가 훨씬 좋은데?’

여기에 영화관들의 급격한 티켓값 인상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코로나19로 크게 확대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1만1000원 수준이었던 티켓값이 1만5000원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사람들의 소비 심리도 얼어붙었지요. 반면 영화관들이 비용을 이유로 직원을 대폭 줄이면서 서비스 품질은 급락했습니다.

코로나19에, 표값 인상에, 시원찮은 서비스에…. 사람들이 가성비 좋은 OTT로 돌아선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말의 무게는 다르지만, “그 영화 봤어?” 대신 “우리 집에서 넷플릭스 볼래?”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게 됐습니다.

②급격히 저변 넓어진 미술, 영화를 넘보다

그렇다고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썸남·썸녀’를 마구 집에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무리 코로나19 시대가 왔어도 데이트 장소는 필요한 법입니다. 그 틈을 파고들어온 게 미술관입니다.

영화가 인기를 잃어가던 시기, 공교롭게도 미술은 ‘역대급 호황’을 맞게 됐습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미술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고, 시중에 풀린 막대한 돈이 미술시장으로 향하면서 열기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영화관 데이트' 지고, '미술관 데이트'가 대세 된 까닭
마침 좋은 전시도 많이 열렸습니다. 코로나19로 해외 유수의 미술관이 문을 닫거나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여러 작품을 대여해줄 수 있게 된 영향도 있었지요. 방역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했습니다. 말이 많이 하는 분위기가 아닌지라 감염 우려가 크지 않은 데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니 가만히 앉아 있는 영화관보다 위험이 덜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미술관에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지만, 막상 한 번 가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고 많은 젊은이들은 말합니다. 티켓 값은 영화관과 비슷하거나 저렴한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작은 소리로 가끔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고, 중간에 휴대폰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을 가볍게 걷고 난 뒤 작품 얘기를 나누면 왠지 공부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지요. 실제로도 교양이 늘어났을 테고요.

③젊은 세대 ‘문화 소비 습관’에 딱

이는 젊은 세대의 문화 소비 습관에도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먼저 인스타그램. 영화관에서와 달리 미술관에서는 작품 근처에서 자유롭게 인증샷을 찍어 SNS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안팎에 정원이나 각종 설치작품 등 ‘포토 스팟’도 많지요.

또 하나는 ‘콘텐츠의 호흡’입니다. 웬만한 영화는 모두 한시간이 넘고, 세 시간 넘는 대작도 간혹 있지요. 하지만 이 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튜브 쇼츠나 틱톡 등으로 짧은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젊은 층의 문화 소비에서 이 같은 ‘미술관 대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아쉽기도 합니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추억이 있으니까요. ‘조조할인’ 노래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 함께한 순간/이젠 주말의 명화 됐지만….”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