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천명관 "왜 소설을 쓰느냐? 인간은 실패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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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국제도서전 북토크 무대에 올라
"사람들이 '왜 작가가 됐느냐' '왜 소설을 쓰게 됐느냐' 묻곤 해요. 그럴 때 저는 '제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소설가 천명관은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고래> 북토크'에서 "소설은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은 오는 18일까지 닷새간 진행된다.
천장편소설 <고래>는 최근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약 20년 만에 재주목받았다.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부커상의 한 부문이다. 영어 외 언어로 쓰인 뒤 영어로 번역된 문학작품에 수여한다. 최종 수상은 불발됐지만 <고래>가 약 20년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역주행' 인기를 끌었다.
2004년 출간된 이 소설은 국밥집 노파, 금복, 춘희 세 여성의 3대에 걸친 거친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 그 성취와 몰락을 그려낸 소설이다. 김지영 번역가가 영어로 옮겨 올해 1월 영국 출판사 유로파 에디션스에서 출간됐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작가인 그는 이날 무대 위에서 '성공'이 아닌 '실패'에 대해 말했다. 그는 "제가 영화감독과 소설가라는 직업을 오가고 있는 건 한 분야에서 확실하게 성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이 나이에도 여전히 방랑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실패'는 그가 생각하는 문학 작품의 본질이다. 천 작가는 "현실은 부조리하다"며 "사람이 착한 일을 했다고 복을 받지 않고, 나쁜 일을 했다고 반드시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이어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나는 살아가야 하는데, 그건 괴로운 일이라 평소엔 잊고 살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며 "작가들은 이 파탄난 세계를 붙잡고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의 역할과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 천 작가는 이날 자신의 작품 <나의 삼촌 부르스 리>에 썼던 '작가의 말' 일부를 낭독하기도 했다.
"실패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생략) 왜 누군가는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걸까요. 불행을 즐기는 변태적 가학 취미일까요? 그건 우리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구원이 보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책이 훌륭한 작품이라면,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천 작가는 "<죄와 벌> <이방인> 등 소위 세계 고전이라는 작품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문학의 위대함은 그렇게 우리가 책을 통해 연대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커상 후일담도 나눴다. 천 작가는 "에이전시와 통역가 등이 혹시 모르니 며칠 전부터 수상소감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상도 안 받았는데 수상소감을 먼저 쓰기가 멋쩍었다"고 했다. "통역가에게 수상소감을 주면서 '만약 상을 못 받으면 반드시, 그 즉시 삭제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내 휴지통에는 무수한 수상소감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것도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또 천 작가는 "부커상 심사위원들이 '한국인들에게는 한(恨)이라는 정서가 있는데, 당신 소설에도 그 한이 있는 거 같다'고 해서 저는 '그건 착각'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리에게만 한이 있는 걸까요? 인간은 누구나 한이 있습니다."
북토크의 묘미는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을 작가에게 직접 물을 수 있다는 것. 작가를 꿈꾼다며 조언을 구하는 한 독자의 말에 그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안 읽은 분들이 많아요. 요즘은 타인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천 작가는 "저는 작가이기 이전에 충직한 독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당신의 인생 책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천 작가는 <삼국지>를 꼽았다. 그 이유로는 "숭고한 관계들, 운명적 절망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신작 계획에 대해서는 "창비에서 연재하다 중단했던 소설이 있는데 마무리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소설가 천명관은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고래> 북토크'에서 "소설은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은 오는 18일까지 닷새간 진행된다.
천장편소설 <고래>는 최근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약 20년 만에 재주목받았다.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부커상의 한 부문이다. 영어 외 언어로 쓰인 뒤 영어로 번역된 문학작품에 수여한다. 최종 수상은 불발됐지만 <고래>가 약 20년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역주행' 인기를 끌었다.
2004년 출간된 이 소설은 국밥집 노파, 금복, 춘희 세 여성의 3대에 걸친 거친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 그 성취와 몰락을 그려낸 소설이다. 김지영 번역가가 영어로 옮겨 올해 1월 영국 출판사 유로파 에디션스에서 출간됐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작가인 그는 이날 무대 위에서 '성공'이 아닌 '실패'에 대해 말했다. 그는 "제가 영화감독과 소설가라는 직업을 오가고 있는 건 한 분야에서 확실하게 성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이 나이에도 여전히 방랑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실패'는 그가 생각하는 문학 작품의 본질이다. 천 작가는 "현실은 부조리하다"며 "사람이 착한 일을 했다고 복을 받지 않고, 나쁜 일을 했다고 반드시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이어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나는 살아가야 하는데, 그건 괴로운 일이라 평소엔 잊고 살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며 "작가들은 이 파탄난 세계를 붙잡고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의 역할과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 천 작가는 이날 자신의 작품 <나의 삼촌 부르스 리>에 썼던 '작가의 말' 일부를 낭독하기도 했다.
"실패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생략) 왜 누군가는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걸까요. 불행을 즐기는 변태적 가학 취미일까요? 그건 우리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구원이 보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책이 훌륭한 작품이라면,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천 작가는 "<죄와 벌> <이방인> 등 소위 세계 고전이라는 작품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문학의 위대함은 그렇게 우리가 책을 통해 연대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커상 후일담도 나눴다. 천 작가는 "에이전시와 통역가 등이 혹시 모르니 며칠 전부터 수상소감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상도 안 받았는데 수상소감을 먼저 쓰기가 멋쩍었다"고 했다. "통역가에게 수상소감을 주면서 '만약 상을 못 받으면 반드시, 그 즉시 삭제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내 휴지통에는 무수한 수상소감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것도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또 천 작가는 "부커상 심사위원들이 '한국인들에게는 한(恨)이라는 정서가 있는데, 당신 소설에도 그 한이 있는 거 같다'고 해서 저는 '그건 착각'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리에게만 한이 있는 걸까요? 인간은 누구나 한이 있습니다."
북토크의 묘미는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을 작가에게 직접 물을 수 있다는 것. 작가를 꿈꾼다며 조언을 구하는 한 독자의 말에 그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안 읽은 분들이 많아요. 요즘은 타인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천 작가는 "저는 작가이기 이전에 충직한 독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당신의 인생 책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천 작가는 <삼국지>를 꼽았다. 그 이유로는 "숭고한 관계들, 운명적 절망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신작 계획에 대해서는 "창비에서 연재하다 중단했던 소설이 있는데 마무리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