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이전에 '이것'이 있었다…세상 가장 비싼 분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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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보름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유물들
분청사기조화기하문편병
분청사기조화기하문편병
올 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백자 달항아리 한 점이 나왔다. 훌륭한 상태에 45cm가 넘는 큰 키로 경매 전부터 이목을 끌던 작품이었다. 결과도 놀라웠다. 추정가를 훨씬 넘는 60억원 정도에 낙찰되었다. 둥그렇고 탐스러운 외형과 담백한 색감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도 통한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동글 납작한 모양에 안정적인 구연과 굽이 달려있고, 온 몸을 가득 채운 기하학적 문양이 인상적인 담청빛의 분청사기 편병, 이 작품은 원래부터 매우 유명했다.
이 편병의 존재는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져 있었다. 태생부터 유명인이랄까? 어떤 이유에선가 1938년 일본 오사카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시에 출품된 이 편병은 1939년 한 일본인의 소유가 되었다. 그렇게 계속 일본에 있었던 이 작품은 한국에 한 번, 199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조선전기국보전》 전시를 위해 들어왔었다. 다 나열할 수 없어 요약해보자면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 편병은 거의 매 10년마다 큰 전시에, 중요한 도록에 나오면서 꾸준히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작품이 일본에 있었기에 실물을 볼 기회는 적었지만 분청사기나 조선초 백자, 또는 편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이 작품을 참고자료로 자주 언급해왔다. 그러다 들린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 출품 소식은 정말 놀랄 일.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는 대단했다. 낮은 추정가 15만 달러의 스무 배가 넘는 한화 약 35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일반적인 편병의 문양 구성은 대칭과 반복을 기본으로 한다. 앞면과 뒷면에 대부분 같은 무늬를 넣고, 양 측면도 서로 대칭으로 배치한다. 원형의 넓은 면에 새겨지는 문양을 주(主)문양이라고 하는데, 분청사기의 경우는 길상적 의미가 담긴 물고기나 모란, 연꽃 문양을 많이 쓴다. 좁은 측면을 장식하는 문양은 종속 문양이라고 해서, 주문양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간단한 선으로 도안화된 당초문, 연판문, 잎사귀 무늬 등을 대칭으로 반복해서 활용한다.
이 유물의 매력은 문양에 있다. 문양 사이에 드러난 검은 태토와 따듯한 백토의 대비, 담청색의 유색도 물론 아름답지만, 이 작품이 한 세기에 걸쳐 수작으로 손꼽히는 데에는 문양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 편병의 주문양은 서로 대칭, 반복되지 않는다. 둥근 면 두 개 중 하나에는 유영하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일반적이라면, 다른 면에도 물고기가 나오겠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물고기 대신 선과 점, 단순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런 기하문은 주로 종속 문양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크리스티 경매의 작품 해설처럼, ‘이 작품의 정면은 과연 어느 쪽인가?’ 하는 의문과 혼란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조화(彫花) 분청사기가 제작되던 15세기 후반은 백자 생산을 위한 관요가 설립되면서 백자 선호 현상이 강해지고, 분청사기의 영향력이 약화되던 시점이다. 그 말은 곧, 주문자의 통제는 느슨해지고, 제작자의 의도와 개성이 마음껏 반영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분청사기의 문양이 간략해지고, 추상적, 기하학적으로 변형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이 편병의 탄생도 그 흐름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도자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평상시엔 관심이 1도 없다가 이런 뉴스라도 나오면 세상이 도자기 얘기로 잠시나마 와글와글해지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이 달항아리 이전의 슈퍼스타, 아직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분청사기 타이틀을 가진 “분청사기조화기하문편병”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분청사기조화기하문편병, 조선 15세기 후반, 20×13×23.5(h)cm, 개인소장
이 편병의 존재는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져 있었다. 태생부터 유명인이랄까? 어떤 이유에선가 1938년 일본 오사카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시에 출품된 이 편병은 1939년 한 일본인의 소유가 되었다. 그렇게 계속 일본에 있었던 이 작품은 한국에 한 번, 199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조선전기국보전》 전시를 위해 들어왔었다. 다 나열할 수 없어 요약해보자면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 편병은 거의 매 10년마다 큰 전시에, 중요한 도록에 나오면서 꾸준히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작품이 일본에 있었기에 실물을 볼 기회는 적었지만 분청사기나 조선초 백자, 또는 편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이 작품을 참고자료로 자주 언급해왔다. 그러다 들린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 출품 소식은 정말 놀랄 일.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는 대단했다. 낮은 추정가 15만 달러의 스무 배가 넘는 한화 약 35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일반적인 편병의 문양 구성은 대칭과 반복을 기본으로 한다. 앞면과 뒷면에 대부분 같은 무늬를 넣고, 양 측면도 서로 대칭으로 배치한다. 원형의 넓은 면에 새겨지는 문양을 주(主)문양이라고 하는데, 분청사기의 경우는 길상적 의미가 담긴 물고기나 모란, 연꽃 문양을 많이 쓴다. 좁은 측면을 장식하는 문양은 종속 문양이라고 해서, 주문양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간단한 선으로 도안화된 당초문, 연판문, 잎사귀 무늬 등을 대칭으로 반복해서 활용한다.
반대면에 새겨진 자유로운 물고기와 파도
이 유물의 매력은 문양에 있다. 문양 사이에 드러난 검은 태토와 따듯한 백토의 대비, 담청색의 유색도 물론 아름답지만, 이 작품이 한 세기에 걸쳐 수작으로 손꼽히는 데에는 문양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 편병의 주문양은 서로 대칭, 반복되지 않는다. 둥근 면 두 개 중 하나에는 유영하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일반적이라면, 다른 면에도 물고기가 나오겠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물고기 대신 선과 점, 단순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런 기하문은 주로 종속 문양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크리스티 경매의 작품 해설처럼, ‘이 작품의 정면은 과연 어느 쪽인가?’ 하는 의문과 혼란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조화(彫花) 분청사기가 제작되던 15세기 후반은 백자 생산을 위한 관요가 설립되면서 백자 선호 현상이 강해지고, 분청사기의 영향력이 약화되던 시점이다. 그 말은 곧, 주문자의 통제는 느슨해지고, 제작자의 의도와 개성이 마음껏 반영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분청사기의 문양이 간략해지고, 추상적, 기하학적으로 변형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이 편병의 탄생도 그 흐름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대담한 표현이 놀라운 기하문
하지만 이 글의 주인공 “분청사기조화기하문편병”처럼 이렇게 추상적인 문양이 전면에 대담하게, 시문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이 편병의 이름에 ‘기하문’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무렇게나 삐뚤게 그려진 선에서는 거침없이 내려 그은 속도감이 느껴지고, 여기저기 빈 공간과 아래쪽에 갑자기 등장한 원형 무늬에서는 대충 그린듯한 무심함도 엿보인다.
이름없는 그릇에 분청사기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한국 미술사학계의 시조 우현 고유섭 선생은 우리 미술의 특징에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도자기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파격이, 우리 현대인들이 오백년 전 분청사기에서 현대의 미감을 느끼고,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유물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안다. 세상의 관심은 낙찰이 되던 그 순간이 정점이었다.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백자 전시 《군자지향》에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 흥행의 결과는 언젠가 곧 ‘분청사기’와 ‘청자’가 주제가 되는 큰 전시가 어디서든 기획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전엔 일본에 있어서 보기 어려웠다지만, 이제는 한국에 있는 이 ‘보물’, 다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이름없는 그릇에 분청사기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한국 미술사학계의 시조 우현 고유섭 선생은 우리 미술의 특징에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도자기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파격이, 우리 현대인들이 오백년 전 분청사기에서 현대의 미감을 느끼고,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유물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안다. 세상의 관심은 낙찰이 되던 그 순간이 정점이었다.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백자 전시 《군자지향》에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 흥행의 결과는 언젠가 곧 ‘분청사기’와 ‘청자’가 주제가 되는 큰 전시가 어디서든 기획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전엔 일본에 있어서 보기 어려웠다지만, 이제는 한국에 있는 이 ‘보물’, 다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